'전쟁을 극복하려면 전쟁을 알아야 한다. 전쟁을 알기 위해서는 전쟁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요란한 총포음과 사상자들의 비명과 흔적으로 전쟁을 제대로 알기란 요원한 일이다. 하물며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비즈니스에 적용해보면 특정한 시기에 행한 소비자조사 데이터, 시장점유율 추이의 변화, 품질조사의 결과 수치 등은 제각각 하나의 현상일 뿐 그것에 시각이 갇혀서는 업(業)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가 쓴 <전쟁론>은 전쟁에 관한 수많은 본질적 정의를 다룬다. 하지만 원저가 철학서에 가까울 정도로 내용이 심오하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하기에는 다소 벅찬 책이다. 때문에 해설서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이진우 교수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원저를 향해 질러가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전쟁은 단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다”를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의 “정치는 동지와 적의 구별”이라는 정의와 함께 언급한다. 또한 복합적인 자료들과 역사 사실로부터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그런 정의들을 자신의 상황과 결부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이상적’ 전쟁과 ‘현실적’ 전쟁으로 나눠 이상적 전쟁이 불가능한 이유를 세가지 명제로 표현했다. ▲전쟁은 결코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전쟁은 단 한번의 결전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전쟁의 결과는 절대적이지 않다.
이 명제를 비즈니스 세계에 맞춰 보자. ▲기업 활동에는 여러 관련자들, 곧 주주, 경쟁자, 기업 내외의 고객들이 있다.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한편의 광고나 한번의 프로모션이 영속적인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성과는 항상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수십년을 두고 성장만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바뀐 상황에 따른 대책이 있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 내재하는 세가지 경향을 언급했다. ‘증오와 적대감’, ‘우연과 개연성’, ‘정치적 목적’ 등 ‘기묘한 삼중성'이라고 명명한 것들이다. 비즈니스로 넘어오면 경쟁자를 이기려는 투지, 돌발변수, 매출과 수익 목표로 변형해 수용할 수 있다. 현대의 비즈니스 세계는 원래의 전투적인 ‘삼중성’에서 더 넓고 멀리 나가도록 촉구한다. 경쟁자를 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강구하라고 한다. 업계 내에서의 변수에서 글로벌한 정치·사회·문화 환경까지 추적해야 한다. 숫자로 나타내는 기업 실적에서 사회적 영향으로 기업이 언급하는 ‘목적’(purpose)의 범위는 확대됐다.
이런 복잡해진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클라우제비츠 시절이니 그나마 1000여쪽으로 정리가 될 수 있었다. 사실 그것도 클라우제비츠에게는 미완성이었지만 그의 사후에 부인이 정리해서 낸 것이다. 이 책에서 비교대상으로 삼은 <손자병법>은 독자 스스로가 맞는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뒀다. 전쟁에 관한 책인데도 싸우지 않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수차 강조한다. 물론 미리 준비하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피지기가 그것이다. 이도 사실 이기는 것도 아니고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지 않을 뿐이다. 길게 본다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불확실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벅찬 목표일지 모른다.
이진우 지음 | 흐름출판 펴냄 | 1만85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