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중국 베이징(北京)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이건희 전 회장은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비공개를 전제로 "한국 기업은 2류, 행정과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발언했다. 당시 정부의 규제에 대한 불편한 심리를 이렇게 표시했다.
이건희 전 회장의 베이징 발언은 곧바로 청와대로 전달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노를 샀다. 그는 1994년 삼성그룹에 특혜 논란에도 자동차 사업 허가를 내준 바 있어 후폭풍은 컸다.
이건희 전 회장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방미 수행단 기업인 명단에서 누락시키는가 하면 삼성자동차 기공식에 고위 공무원을 보내지 않는 등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권'을 놓고 경합을 벌였다가 보복을 당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정주영 전 회장은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해 세무조사와 설비자금 대출 중단, 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 불허, 기업공개 불허 등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후 현대그룹은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수세적 경영을 해야 했고 1995년 50개 계열사를 23개로 축소하는 등 계열사 정리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는 도리어 IMF 경제위기 때 사세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기업과 늘 대립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정주영·이건희 전 회장 등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제인들을 대거 특별 사면·복권해주기도 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 100억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지만 다음 해 개천절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정주영 명예회장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지만 1995년 광복 50주년 특사로 사면·복권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회장의 악연은 2001년에서야 끝을 맺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주영 전 회장이 타계하자 빈소를 직접 찾아가 조문했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에서 대업을 이룬 분인데 그런 발자취를 남긴 분이 가시니 아쉽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의 퇴임 직전인 지난 1997년에는 한보 사태를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그룹들이 잇따라 무너졌고 같은 해 11월에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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