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숙 여사가 있는 미도다방
이곳은 다방이다. '레지' 아가씨가 다리를 꼬고 앉아 껌을 짝짝 씹고 있는 옛날 찻집을 상상하는가? 아니다. 그건 오래된 영화와 보도가 만든 편견이다. 종로2가 진골목의 미도다방에선 차향과 함께 예향이 흐른다. 종로2가? 아, 탑골공원과 어학원이 밀집한 서울 종로가 아니라 근대문화거리로 유명한 대구의 진골목 얘기다.
‘다방’이란 것도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일제식민지 시절 다방은 문학과 예술의 사랑방이었다. 문인들은 출간발표회를 다방에서 열었으며 이곳에서 시와 음악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80년대엔 음악감상실 역할을 하는 뮤직다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어서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테이크아웃 커피체인이 나타나면서 차츰 ‘다방’도 옛날 영화에나 등장하는 구닥다리가 돼 버렸다. 이러한 세파에도 미도다방은 꾸준히 자리를 지켰고 이제는 진골목의 명물이 됐다.
다방 입구엔 시인 전상렬의 ‘미도다향’이란 시 한편이 보인다.
‘…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고…’
시인의 말처럼 다방의 주요 인사는 ‘노인’들이다. 여기에 언제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정인숙 여사가 있다.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니 들어오는 손님마다 하나같이 정인숙 여사부터 찾는다. 여사는 테이블마다 잠시 앉아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는 손님은 한명도 빼 놓지 않고 문 앞까지 나가 인사하며 눈을 마주친다.
이분은 흔히 말하는 ‘다방 마담’이다. 그녀는 한복 일곱벌을 마련하고 일찌감치 마담이 됐다. 당신 자신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내친 김에 가오마담에 일찍 도전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난 노숙한 외모라서 무난했다"고 한다. 대구에서 동국다방 2년과 남문다방 3년 세월을 지나 27세 때 독립해 백림다방을 열었다. 백림다방에서는 젊은이를 받지 않았다. 어르신만 입장이 가능했다. 이것은 정인숙 여사가 내내 지켜온 원칙이다. 지금 미도다방에는 누구나 입장할 수 있지만 젊은 사람은 한번씩 주춤하게 되는 묵직한 기운이 있다.
손님의 평균연령은 80세 이상이다. 이중에는 이름난 예인과 문사, 영남의 유림도 있다. 다방 벽면에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 빽빽하다. 다방이 아니라 갤러리라 해도 되겠다. 실제로 쟁쟁한 서예가·문필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맡기다 보니 정인숙 여사 자신도 배움의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10년 동안 소학, 명심보감, 사서삼경 등을 배웠고, 행초서를 쓰고, 문인화를 그리는 한학도가 됐다. 미도다방은 지역사회에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한다. 봉사회를 만들어 장학금을 주고, 독거노인을 돕고, 어버이날에는 돼지를 잡고, 떡과 술을 장만해 잔치를 벌인다. 동짓날 벌이는 팥죽잔치는 해마다 500~600명이 모인다.
미도다방은 단지 ‘3500원짜리 쌍화차에 과자까지 한접시 주는 옛날 다방’이 아니다. 어르신들의 추억과 정인숙 여사의 지혜와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학문과 예술이 흐르는 ‘노인들의 놀이터’다.
◆ 한국 최초의 음악감상실, 녹향
향촌문화관 지하에는 언제나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음악감상실, '녹향'이다. 로비 한쪽 편에는 음반이 빼곡히 꽂혀 있는 콘트롤 박스가 있다. 반대편 테이블엔 누렇게 바랜 갱지에 연필로 꼭꼭 눌러 쓴 학생들의 음악감상문이 파일에 가보처럼 보관돼 있다. 문을 열고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귀중한 LP판과 클래식 서적들이 있다. 앞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있고 줄줄이 소파가 놓여 있다. 주요 손님은 어르신들이다. 당연히 차나 음식물은 반입금지다. 이곳에서만큼은 음악이 공간의 주인이다.
녹향은 1946년에 오픈했다. 이창수 선생이 자신의 SP 레코드판 500여 장과 축음기 1대로 자택 지하에 문을 열었다. 한국전쟁 때 많은 예술인들이 대구로 피난을 왔고 녹향은 이내 그들의 사랑방이 됐다. 예육회, 향음회, 애향회 등 수많은 음악 모임이 이곳에서 시작됐고 양여문 시인의 ‘명태’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험난했던 세월과 함께 녹향의 행보도 녹록하지 않았다. 개인 스마트기기가 발달한 요즘, 한 공간에 모여 음악을 듣는 ‘음악감상실’은 젊은층에겐 어색한 공간이다. 게다가 대중가요도 아닌 클래식이니 찾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녹향은 대구시내 이곳저곳으로 13번이나 자리를 옮긴 후 지금의 자리, 향촌문화관 지하에 정착했다. 아흔이 넘은 나이까지도 음악을 틀었다는 설립자 이창수 선생은 2011년 타계했고, 아들 이정춘씨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 오래된 공구상의 변신, 카페 삼덕상회
대구는 볼 게 너무 많다. 근대 거리에 마음을 빼앗겨 배회하다 보면 어느새 다리도 아프고 당도 떨어지고…. 마침 북성로 공구 거리를 지나다 보니 오래된 일본식 가옥에서 솔솔 커피향이 난다. 카페 삼덕상회는 1930년대 지어진 건물을 개인이 매입해 수리했다. 철사와 로프를 팔던 작은 건물이 예쁜 쉼터로 변신한 것이다. 좁은 복도 끝에 작은 방과 테이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푹 퍼져 앉을 다다미방도 있고 아기자기한 야외 테라스도 있다.
커피가 나오는 동안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북성로는 일제시대 때 ‘모토마치’로 불리던 최고의 상권이었다. 북성이 있던 자리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신작로였기 때문에 일본상인들이 이곳에 모여 장사를 했다. 해방 후 미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이곳은 전국 최대의 공구 골목이 됐다. 지금도 상당수의 공구상회가 늘어서 있는데, 사장님 말마따나 ‘다 없어진 것’이 이 정도니 당시 규모는 어땠을까. 그때 말이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고 했단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살 수 있어 대구까지 공구를 사러 올 일도 흔치 않다.
그렇지만 이곳에 올 새로운 이유가 생겨나고 있다. 예쁜 카페 삼덕상회가 있고 근처에 공구박물관, 녹향, 향촌문화관, 근대역사관 등 전부 들르려면 하루가 모자라다. 언제나 ‘소기의 목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공구거리에서 공구를 사지 않아도 사람들은 셀카봉과 스파트폰을 들고 이 거리를 찾는다.
[여행 정보]
대구 미도다방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금호분기점 - 서대구IC에서 ‘신천대로, 서대구공단’ 방면으로 우측방 - 북비산로 - 달성네거리에서 ‘달성공원’ 방면으로 우측 방향 - 달성로 – 동산네거리에서 ‘시청’ 방면으로 좌회전 - 국채보상로 - 종로 - 중앙대로 77길
[대중교통]
동대구역 - 1호선 승차 후 중앙로역 하차 - 1번 출구로 나와 도보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미도다방: 검색어 ‘미도다방’ / 대구광역시 중구 진골목길 14
녹향: 검색어 ‘녹향’, ‘향촌문화관’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56-6
삼덕상회: 검색어 ‘카페 삼덕상회’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70
미도다방
문의: 053-252-9999
커피 2000원 / 쌍화차 3500원 / 강황꿀차 3500원 / 약차 3000원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 ~ 오후 10시
녹향 (대구향촌문화관)
문의: 053-424-1981 / http://hyangchon.jung.daegu.kr
입장료(향촌문화관과 통합 관람가능): 성인 1000원 / 경로·청소년 500원
감상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음악프로그램: 시간대별 영화음악, 성악 합창,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 등 감상(자세한 프로그램은 홈페이지 참고)
카페 삼덕상회
문의: 053-427-3332
에스프레소 3000원 / 카라멜 마끼아또 4500원 / 딸기스무디 4500원 / 와플 5500원
● 음식
국일따로국밥: 1946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새해에 70년이 되는 맛집이다. 무·파·육수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국물이 진하면서도 깔끔하다. 단일 메뉴로 승부하는 메뉴판만 봐도 이 집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따로국밥 6000원 / 따로국수 6000원 / 특따로국밥 7000원
053-253-7623 /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571
경희식당: 서문시장 칼국수 골목 근처에 있는 돼지갈비찜 전문점이다. 주요 메뉴는 양푼갈비찜과 청국장이며 출입국쪽 부엌에서 매일 청국장을 띄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운갈비찜: 7000원 (공기밥 1,000원 별도) / 청국장 6000원
053-253-3152 / 대구광역시 중구 큰장로28길 25
● 숙박
스마일게스트하우스: 살림집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민박집이다. 주인장이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 공간은 깔끔하고 편리하며 독립적이어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예약문의: 010-5572-547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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