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쇼가 아니라 모터쇼 같았다.” 2016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다녀온 기자마다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지난 2012년 CES조직위원회가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북관(North hall)에 자동차 전시관을 별도로 마련한 지 5년만에 ‘스마트카’ 관련 기술이 북관 전체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최근 산업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스마트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등 다양한 형태를 아우르는 말이다. 각 분야에서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가는 상황인데 아직 확실한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은 만큼 다양한 업체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단 하나 특징이 있다면 기존 완성차와 IT 등 업종 간 경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국기업, 소프트웨어가 없다
올해 CES에서는 완성차·부품·IT업체 115곳이 자율주행, 전기차, IoT 등 각 분야의 스마트카 기술을 공개하며 각축전을 벌였다. 포드·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 등 완성차제조사들이 자율주행차를 선보이거나 관련 기술을 뽐냈고 중국의 전기차제조사 패러데이 퓨처가 주목받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BMW i3 전기차를 전시하고 자사 IoT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통한 스마트홈과의 연동을 시연했다. LG전자는 폭스바겐 콘셉트카 ‘버디’와 스마트홈의 연동을 선보였다.
이런 모습에 국내 대다수 언론은 국내기업의 스마트카시장 선점 가능성을 논했다. 특히 전장사업부를 출범한 삼성전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카는 전분야의 기술이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은데 독보적인 스마트폰 기술역량을 지닌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자동차산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됐기 때문.
시점이 늦었다는 평도 있지만 반도체와 기존 가전에 사용하던 모터기술, 인포테인먼트시스템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와 SDI의 배터리기술 등을 고려하면 삼성의 부품들이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LG전자 또한 전장부품에서 성장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LG전자는 지난 2013년 VC(Vehicle Component)사업부를 만들었는데 그 이전부터 전장부품사업 비중을 꾸준히 키워왔다. 스마트폰시장에서 뒤처진 만큼 다른 경쟁력을 모색해온 것이다. 최근에는 전자뿐 아니라 화학, 디스플레이, 이노텍 등 전사적 역량을 결집해 전장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글로벌 자동차브랜드 GM과 돈독한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을 비롯해 이미 많은 완성차업계와 손잡고 인포테인먼트부터 모터,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품을 납품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점만 놓고 ‘한국기업들이 스마트카 시대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들 기업이 배터리, 디스플레이, 인포테인먼트시스템 등에서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것은 맞지만 이는 스마트카 하드웨어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 결국 시장지배력은 소프트웨어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혁신기술을 갖추지 않는다면 부품 하청을 통해 수익을 올리더라도 시장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애플과 구글의 경우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부품은 거의 없지만 ‘소프트웨어’를 통해 스마트카시장의 패러다임을 가져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 OS를 차량과 연동하는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이미 상용화했는데 스마트폰 OS 점유율을 스마트카시장으로 이어가기 위함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스마트폰시장과 마찬가지로 빅데이터를 선점해 정보와 기술을 모두 독점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이런 기류를 감지하고 자체적인 차량용 소프트웨어 확보에 나섰다. 애플과 구글에 자동차시장의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임러AG와 BMW,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노키아 지리정보서비스인 ‘히어’(HERE)를 공동인수했다. 토요타는 포드와 연합해 ‘스마트 디바이스 링크‘(SDL)시스템을 만들고 다른 완성차업체의 참여를 촉구했다.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인데 이런 합종연횡 속에 한국기업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자율주행차’도 따라가기 급급
한국은 스마트카 방향성의 정점을 찍는 자율주행차 기술분야에서도 뚜렷한 입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IT업계는 관련분야 실적이 전무하고 자동차업계는 현대차가 겨우 따라가는 수준에 그친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자율주행기술을 ‘일부기능 자동화→통합능동제어→제한적 자율주행→완전자율주행’의 단계로 구분한다.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일정속도를 유지토록 하는 기존의 ‘크루즈컨트롤’ 기능이 ‘일부기능 자동화’에 해당한다면 최근 출시된 현대차 EQ900에 탑재된 고속도로주행지원시스템(HDA)의 경우 차선유지와 앞차와의 간격조절 등 다양한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통합능동제어’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자동차부품사로서는 현대모비스가 이번 CES에서 운전지원시스템(DAS·Driving Assistance System)을 소개했다. EQ900에 탑재된 ▲긴급제동시스템(AEB) ▲스마트 크루즈컨트롤(SCC) ▲차선유지보조장치(LKAS) ▲후측방 추돌회피 지원시스템(Active BSD)을 비롯해 기존 지능형주차보조시스템(SPAS)에서 한 단계 진화해 운전자가 차량 밖에서도 자동주차할 수 있게 한 리모트 SPAS와 교차로 감지시스템(CTA) 등을 전시했다.
그럼에도 이는 글로벌시장에서 한참 뒤처진 수준이다. 독일·미국 등의 자동차업계는 수년 전 이정도 수준의 기술을 개발했고 지금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 보완한 상태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수집해 중앙장치에서 판단, 추월이나 차로변경 등을 가능케 하는 데까지 발전해 ‘제한적 자율주행’ 단계에 거의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마저도 자율주행차의 ‘대세’라고 볼 수 없다. 가장 이른 시점에 ‘완전자율주행차’를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구글인데 이 회사는 완성차업계가 밟아가는 4단계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사의 지도데이터를 이용, 초기부터 ‘완전자율주행차’의 기틀을 잡은 후 이를 세밀히 다듬어나가고 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제출한 데이터를 보면 8558km를 주행할 때 한 번 꼴로 오류를 겪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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