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헬조선, 노오력’ 등 최근 생겨나는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한 단어가 많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갖고 기득권으로 태어나야 잘살 수 있고 사회계층 간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노오력’을 해도 성공하기 힘든 ‘헬조선’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청춘들의 한숨 섞인 단어는 존재했다. 미래를 꿈꿀 직장을 찾지 못해 연애·결혼·임신을 포기하는 3포세대나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4포세대가 청춘들의 애환을 나타내는 용어로 존재했다. 이후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전까지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란 용어도 나왔다.
이 단어들이 극단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에서는 고용을 늘리기 위해 일자리 창출정책을 발표하고 민간 기업들도 이에 호응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에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춘이나 노후의 웰빙을 보장받지 못하는 장년층이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1970~80년대만 해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해에 3만~4만명씩 이민을 갔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OECD를 넘어 G20에 들어갈 정도로 위상이 높아지면서 2010년 이후에는 이민이 수백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을 고려한다면 최근의 현상은 매우 특이하다.
◆자녀교육보다 삶의 질 위해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면서 관련 행사나 세미나가 주말마다 열린다.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이민·유학을 입력하면 국내에 이렇게 많은 이민박람회가 있었나 깜짝 놀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박람회 중 하나인 해외유학·이민박람회는 벌써 20년 넘게 매년 봄, 가을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개최된다.
2000년 중반부터 이민자 수가 다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최근 다시 이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박람회를 찾는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 물론 해외유학은 이민과는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해야 하지만 최근 박람회 관람객 중 유학 후 이민을 하나의 과정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민 관련 규정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일부 국가의 경우 대졸 이상의 학위는 물론 전문대학과정의 수료만으로도 영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따라서 학생 외에 직장인도 이민을 전제로 한 유학을 지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취업정보전문업체 사람인이 국내 성인남녀 165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78.6%가 ‘갈 수만 있다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답했다. 떠나고 싶은 이유(복수응답)는 ▲삶의 여유가 필요해서(56.4%) ▲근로조건이 열악해서(52.7%) ▲소득의 불평등 문제(47.4%) ▲직업 및 노후에 대한 불안감(47.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민을 희망하는 이유도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자녀교육을 위해 ‘무작정 이민’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던 윗세대와는 달리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을 희망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즉 현재의 이민 열풍은 본인 삶의 질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 설문조사에서 더 놀라운 점은 47.9%의 응답자가 이민을 위해 현재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언어공부를 한다는 응답이 62.8%로 절대비중을 차지하지만 더 구체적인 준비를 한다는 응답도 많았다. 이민자금을 마련하거나 현지의 생활양식·문화와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해외취업을 위해 기술을 미리 습득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실제 조리, 목공, 건축, 용접 등 실무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의 상당수가 해외취업이나 이민을 준비하는 학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특히 이민을 고민하는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40~50대의 가족단위가 많으나 현재는 30대와 20대가 더 많다. 앞선 설문조사에서도 30대의 82.1%, 20대의 80%가 기회가 되면 이민을 고려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만큼 청년들의 취업이 힘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젊은 층의 이민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대학에서도 관련 과정을 정규교과에 포함하는 추세다. 일례로 국내 한 대학교는 해외취업을 목표로 하거나 이민 후 해외생활 적응을 위한 일반교양과목을 편성했다.
◆세계적 추세… 취업 목적 많아
이민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요 이슈 중 하나다. OECD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매년 360만여명이 이민을 선택한다. 최근 논란이 된 전쟁난민처럼 사회적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해외로 탈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순수하게 취업을 위해 이민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빈번하다.
이민자의 60%는 이민 대상국으로 선진국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이민 선호도 선두권인 캐나다나 미국인은 이민을 가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OECD 통계에서 전세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이민을 선택한 수를 비교한 결과 미국과 캐나다가 각각 19위, 42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이민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인도다.
다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선진국 국민들이 이민을 선택하는 절대사유는 은퇴와 관련이 깊다. 주로 50~60대가 은퇴 후 보다 여유롭게 살기 위해 이민을 선택한다. 미국의 해외이주 전문지인 인터내셔널 리빙(International Living)이 주거비용과 비자발급과정, 생활비용, 문화여가, 헬스케어, 사회기반시설, 기후 등 총 10개의 기준으로 은퇴 후 이민 갈 국가를 선정했다. 이들 국가를 살펴보면 우리 국민의 이민과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파나마, 에콰도르, 멕시코가 1~3위로 나타났는데 미국인들이 중남미권으로의 이민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시아권에서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각각 5위와 7위로 10위권에 들었다.
유럽에서도 중남미권 이민이 큰 인기다. 국제이주기구 IOM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캐나다로의 이민이 중남미보다 2배가량 많지만 최근 중남미 국가로의 이민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중남미를 선택한 유럽의 이민자가 유럽을 선택한 중남미의 이민자보다 더 많다. 그만큼 창업·취업 등 중남미의 다문화 지원정책이 일반화됐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천편일률적인 캐나다·미국·호주 외에 중남미나 동남아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민을 준비할 때는 외무부나 국제이주기구(IOM), 영사관 등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