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는데 해열제가 없어 곤란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편의점에서 해열제를 비롯해 가정상비약을 판매하기 때문에 이 경우 당황할 필요가 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24일 발표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38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0.2%에 달하는 975명이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 구입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이 중에는 안전상비의약품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사실을 몰랐다는 답변이 11.6%로 나타났다.
편의점에서 비상약을 판매하는지 몰랐다는 답변은 3년 전(18.7%)보다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편의점에서 어떤 의약품을 판매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셈이다.


◆‘편의점 상비약’ 불안하다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약품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조사결과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로 ‘안전성을 믿을 수 없다’(10.9%)는 응답비율이 2013년 조사(5.3%) 때보다 훨씬 높아졌다. 소비자의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법을 준수하면 됨에도 막연히 불안감을 느끼는 일은 비합리적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품목을 올바른 사용법에 따라 복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보다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안전운행할 때 닥칠 수 있는 위험이 훨씬 더 크다. 위험이 크다고 해서 운전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상비약은 특정한 순간에만 필요로 하지만 매일 먹는 영양제는 과잉복용하면 장기적으로 몸에 안 좋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식품의약품안전관리원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 13개 품목에 대한 부작용 건수를 파악한 결과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정500mg'의 부작용 보고가 가장 많았다. 건수별로는 2013년 80건, 2014년 86건, 2015년 88건, 지난해 8월 기준 48건으로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어린이부루펜시럽’의 부작용 건수는 2013년 38건, 2014년 56건, 2015년 54건, 지난해 8월 기준 28건으로 집계됐다.
타이레놀은 편의점에서 소비자가 가장 많이 찾는 의약품으로 판매가 매년 늘어나는 경향을 감안한다면 판매량 대비 부작용 건수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부작용이 생긴 경우 의약품을 편의점에서 구입한 것인지, 약국에서 구입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보고서에서 최상은 고려대 약대 교수는 “판매빈도 대비 발생률이 명확하지 않으며 인과성을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의약품 오남용·이해도 교육 필요

기본상비약을 약국에서 구입해도 대부분의 사용자는 용기에 쓰인 설명서에 따라 복용한다. 상비약은 상비약일 뿐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의약품 처방은 병원 의사한테 받아야 한다.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사 먹느냐, 병원에 가느냐 여부는 각자 선택할 문제다. 한밤중에 증상에 따라 상비약을 먹는 대신 번거롭고 돈이 들더라도 응급실에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대형편의점의 안전상비의약품 판매현황을 보면 2015년 기준 연간 320억3438만원에 달한다. 13개 품목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타이레놀정500mg으로 115억9056만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판콜에이내복액이 59억3960만원으로 뒤를 이었고 ▲판피린티정 32억4271만원 ▲신신파스아렉스 31억5853만원 ▲제일쿨파프 15억6258만원 ▲훼스탈골드정 13억8416만원 ▲훼스탈플러스정 13억416만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에 부작용이 있음을 인지하는지’에 대해 무려 43.5%가 ‘아니오’라고 응답했다. 의약품은 어디에서 파느냐에 따라 부작용이 달라지지 않음에도 편의점에서는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약만 판매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오남용하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의약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부작용·오남용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예컨대 타이레놀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습관적인 음주자의 경우 음주 후 허용용량 이하를 복용하더라도 간독성, 신부전, 위장관 부작용으로 위장관계 출혈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삼가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타이레놀의 허용 용량은 성인이 1회 500~650mg으로 하루 총 3회, 2000mg 이며 통증이 심하면 최대 4000mg까지 복용이 가능하다.



종합감기약 등에도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있으므로 다른 약과 타이레놀을 함께 복용할 때는 다른 약에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경우 과다복용 시 간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경고문이 나와 있으며 실제로 국내 아세트아미노펜 중독진단 환자 중 간 손상과 신장 기능에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따라서 타이레놀 복용 후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간 독성 초기증상일 수 있으니 가급적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미국 FDA 조사에 따르면 아세트아미노펜 과다 용량 복용으로 매년 수만명이 응급실로 실려가거나 입원하고 최대 수백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편의점에서 감기약·소화제·진통제 등 가정상비약을 판매하는 것은 약사법 개정을 거쳐 2012년 11월15일 처음 시작됐다. 가정상비약을 팔겠다고 등록한 편의점은 당시 전국 편의점(2만3000개)의 절반이 넘는 1만2000여개로 이들 점포 직원은 대한약사회로부터 의약품 취급·판매교육을 받았다.
상비약을 취급하는 편의점은 ‘안전상비의약품’ 스티커를 출입문에 붙여놓는다. 편의점에서 판매가 허가된 총 13개 상비약의 공급 규모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24% 늘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병원처방전이 필요 없는 비타민이나 수면유도제 등도 편의점에서 판다.

◆내년부터 판매품목 20개로 확대

정부는 올 초 지난 4년간의 성과분석을 통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상비약을 20여개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확대품목이 결정돼 내년부터는 화상연고, 인공누액, 지사제, 알러지약 등도 판매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가 편의점 판매의약품 확대를 발표하자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판매관리의 허점과 불법적 판매행태를 개선하지 않고 계속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전국 각 지역의 약사회도 즉각 반발했다. 광주지부는 지난 2월25일 열린 정기대의원 총회에서 “편의점 상비약 품목수 확대는 국민건강의 안전성은 뒤로 한 채 얄팍한 편의성을 매개로 소수 유통자본의 배만 불려 주는 친재벌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편의점 의약품 판매는 1993년 한국슈퍼체인협회 등 유통단체가 “슈퍼마켓·편의점에서 일반의약품을 팔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요청한 이후 20년 만에 시행된 것이다. 편의점 의약품 전체 판매량의 43%가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집중됐는데 그만큼 대다수 약국이 문을 닫는 주말이나 심야에 상비약을 필요로 하는 시민의 불편함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편의점의 이익과 약국의 이익이 상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현재의 운영체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면서 시민이 원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합의해야 할 것이다. 또 심야공공병원, 심야공공약국 확대와 지원도 검토할 만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