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다음달 1일부터 약정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인상하는 방안을 강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데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전방위 조사를 통해 고강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법안을 개정하고 이통3사의 협조를 요청하던 최근까지의 행보와 비교하면 공세의 수위를 강하게 끌어올린 모습이다. 약정할인율 인상은 고시·시행령·법 개정을 전제로 하지 않아 가장 빠르게 적용 가능한 통신요금 인하 방안인 만큼 속전속결로 매듭짓겠다는 정부의 속내가 엿보인다.

/사진=머니투데이 DB

당초 이통3사는 정부의 약정할인 인상 방침에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달 초 이통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통신사와 논의 없이 약정할인 인상을 강행할 경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로펌에 의뢰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법리적 검토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9일 공정위가 이통3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단행하는 등 고강도 대응에 나서자 당황하는 분위기다.
◆정부 “통신요금 인하 밀어붙인다”

지난 9일 진행된 공정위 조사는 통신요금 담합 의혹에 대해 실무자를 면담하고 요금제 산출자료 등을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5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이통3사 요금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뿐더러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도 거의 유사한 형식을 지닌다”고 신고한 데 따른 조치다. 당시 공정위는 ‘가격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유로 담합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통신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번엔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나서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통신업계는 “정부가 약정할인 강행을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며 긴장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도 이통3사를 향해 칼끝을 겨눴다. 지난 9일 과기정통부는 “약정할인율 인상과 관련한 이통사의 의견을 이메일로 받았다”면서도 “이르면 이달 16일 약정할인율 인상안을 최종 통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날 이통사들은 약정할인율 인상안과 관련한 단통법 해석 오류, 5G 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 필요성 등의 의견을 과기정통부에 전달했다. 약정할인율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업계의 입장을 드러낸 것.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다음달 1일 약정할인율 인하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보편요금제 도입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통신사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방통위도 통신요금 인하 압박에 나섰다. 방통위는 이통3사가 과기정통부에 입장을 표명한 9일 “이통3사가 약정할인이 만료되는 통신서비스 가입자들에게 약정할인에 대한 고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이달 25일까지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약정할인제는 요금할인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통3사는 소비자에게 이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 고지 방법은 법적으로 정해지지 않지만 이통3사는 약정할인 가입자들의 기간만료 전·후 또는 약정할인 재가입 시 휴대폰 문자메시지 혹은 요금고지서 등을 통해 약정 재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방통위의 이번 조치는 공정위·과기정통부의 방침보다 통신사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약 2주 동안 진행되는 이번 조사가 약정할인율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이통3사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조치여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머니투데이 DB

◆당황한 통신업계 "진퇴양난" 
정부 각 부처의 전방위적인 협공에 이통3사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압박은 약정할인율 인상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 시점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며 “이통사들이 법적 대응을 강행할 경우 정부는 국세청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소송전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통사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법률 검토를 하면서도 적폐세력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 눈치만 보고 있다”며 “정부의 통신비 인하 강행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경영진이 주주들로부터 배임소송을 당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셈”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업계는 정부와 이통3사의 공방이 결국은 ‘승자 없는 게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5G의 표준화를 위해 세계 유수의 기업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통신업계가 발목을 잡힐 경우 결과적으로 국민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통신요금 인하안이 그대로 수용될 경우 마케팅 예산이 급감해 전국의 휴대폰유통매장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이번 사안을 정부·여당 간 당정 협의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통신요금 인하 관련 사회적 논의기구를 상임위의 소위원회로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여야, 정부, 시민단체, 민간사업자가 얽혀있는 만큼 통신요금 인하 이슈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중장기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정부의 이번 움직임을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약정할인이 일반화되고 할인폭이 커지면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단말기를 구매하는 비중이 낮아질 것”이라며 “결국 단말기 판매와 통신서비스 판매가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져 사실상 단말기 자급제 도입과 유사한 방향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