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작곡가. /사진=머니S DB

작곡가 박형준씨(29)는 자신을 ‘직업음악인’이라고 소개한다. 대학에서 순수예술(현대음악작곡)을 전공했지만 상업음악과 순수음악 모두를 지향한다. 곡을 전문으로 쓰는 그에겐 나름의 원칙이 있다. 곡 의뢰가 들어오면 작곡을 한다. 작곡분야도 다양하다. 각종 공연은 물론 영화·광고, 개인연주자가 의뢰하는 곡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실력이 없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영화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상업음악에 치중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돈이 안되는 순수연극에 참여한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술의 순수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박씨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속내를 들어봤다.

◆“작곡은 연주자와 관객 위한 선물”


그는 곡을 ‘선물’이라고 정의한다. 곡을 쓰는 과정은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는 것과 같다. 곡을 완성해 포장하기까지 1차 선물을 받는 사람은 곡 의뢰자이지만 최종적으로 포장을 뜯고 선물을 확인하는 사람은 관객이다. 연주자를 위해 쓰는 곡도 그 본질은 관객을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이 다른 작곡분야와 다소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대중가요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들을수록 음악의 가치가 올라간다. 반면 순수예술은 작곡가 개인의 음악성을 표현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박 작곡가는 이 두마리 토끼와 더불어 연주자의 특성까지 모두 반영해야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의 진짜 매력은 역설적으로 ‘나만의 음악’이 없다는 점입니다. 연주자가 의뢰한 곡을 쓰는 건 작곡가와 연주자가 힘을 합쳐 관객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음악은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어디에 가둘 수도 없죠. 내게 꼭 맞는 옷도 옷장에만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듯 함께 즐기고 공유하는 게 음악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곡을 맡기는 연주자 역시 곡을 ‘나만의 음악’, ‘내것’이라는 생각보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 ‘내게 잘 맞는 옷’처럼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처럼 박씨는 연주자와 관객을 위해 곡을 쓰지만 오히려 연주자로부터 선물을 받는다고 말한다. 연주자와 곡 방향에 대한 생각을 나눌 때 본인의 작곡 취지보다 나은 음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얘기다.

“한 피아니스트에게 곡을 의뢰받았어요. 곡을 완성한 후 연주자와 연습실에서 수정방향을 논의했는데 연주자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설명하더군요. 그게 저만을 위한 공연 같아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그 이전엔 단순히 연주자 혹은 그의 앨범을 위해 제가 곡을 쓴다고 생각했거든요. 연주자에게 작곡을 배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곡을 완성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진제공=박형준 작곡가

◆“좋은 음악은 좋은 사람으로부터”
박씨는 대학에서 현대음악작곡을 전공했다. 유학이나 콩쿠르에 나가 입상하는 등 순수예술 작곡가로서의 전형적인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졸업 후 바로 사회에 뛰어들었다. 영화·광고·연극음악 등 새로운 분야를 다시 공부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많은 수입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회에 발을 디딘 건 더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싶어서였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곡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물론 지금도 클래식, 현대음악을 즐겨듣지만 보다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가령 연주자가 곡을 의뢰하면 그에 대해 연구해요. 연주자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거나 공연장을 찾아 연주를 듣죠. 대화하며 그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알아가지만 결국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해요.”

순수예술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어서일까. 그는 순수연극에 참여해 곡을 쓰기도 한다. 특히 돈이 없어 힘들어하는 아마추어극단을 위한 작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을 선물받기 때문이다.

“연극은 음악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영화나 책과 달리 복사하고 찍어낼 수 없어요. 그 순간의 유일한 경험을 선물하죠. 대본(희곡)을 읽으며 무대를 상상하고 곡을 구상하는 즐거움, 다른 예술분야의 종사자를 만나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곡을 완성한 후 연주자가 초연하기 전까지 관객이 선물(곡)을 받을 때 느끼는 감정을 상상한다는 박씨. 문득 작곡가로서의 그의 목표가 궁금했다.

“누군가 제게 꿈이나 계획을 물으면 전 항상 ‘곡을 더 잘 쓰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잘’이라는 건 정답도 없고 추상적이에요.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런 제 자신을 곡에 잘 표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결국 좋은 음악은 좋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박씨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오늘도 반복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3호(2017년 8월30일~9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