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출범하고 통신비 인하방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알뜰폰업계가 혹한기를 맞았다. 알뜰폰은 올 상반기 700만 가입자를 넘어 당초 목표한 가입자(8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순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알뜰폰업계는 부가서비스와 설비투자를 게을리하며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여기에 2분기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보편요금제·단말기 완전자급제 등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이 쏟아지자 알뜰폰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가격경쟁력에서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0월1일부터 선택약정할인율이 종전 20%에서 25%로 오르면서 한계상황까지 내몰렸다.
◆고객 줄고 업체 분란… 총체적 난국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달 알뜰폰에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로 옮긴 가입자는 6만1913명으로 같은 기간 이통3사에서 알뜰폰으로 이동한 가입자 5만7270명보다 4643명 많았다.
알뜰폰 가입자 순감현상은 3개월째 이어졌다. 지난 9월 366명이 알뜰폰에서 이탈한 것을 시작으로 10월에는 1648명으로 전월대비 5배 늘었고 11월에는 그 폭이 더 늘었다. 이에 업계 내부에서는 알뜰폰 가입자의 이탈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분석한다.
최근 정부는 월 2만원대 비용으로 음성 200분, 데이터 1GB(기가바이트)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알뜰폰의 가격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어 업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KMVNO)는 보편요금제 도입 시 알뜰폰 사업자의 매출이 연간 46% 감소하고 영업적자가 지난해 317억원에서 415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윤석구 KMVNO 회장은 “보편요금제가 시행되면 알뜰폰 사업자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알뜰폰을 토사구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보편요금제 도입은 현실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올 말까지 일정을 맞춰 보편요금제를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 내부에서도 자중지란이 빚어졌다. 지난달 27일 알뜰폰업계 1위 CJ헬로비전은 KMVNO를 탈퇴하기로 했다. 이는 알뜰폰시장에 진출한 이통3사 자회사들과 이견을 보였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특히 최근 마무리된 망 도매대가 협의에서 이통3사의 자회사가 소극적인 협상태도를 보인 것과 LTE시장 진출을 두고 의견이 갈린 것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도매대가는 알뜰폰업체가 이통사의 망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을 일컫는다. 정부와 SK텔레콤이 매년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는데 올해 도매대가는 KMVNO가 요구한 인하율 10%보다 낮은 7.2%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알뜰폰업계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게 CJ헬로비전의 주장이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KMVNO 내부의 의견차가 커 조율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국내 이동통신 사용자에게 인기가 높은 프리미엄 단말기 수급의 어려움도 알뜰폰업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9월부터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등이 플래그십모델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알뜰폰은 이들 제품을 납품받지 못해 치열한 고객 유치전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정부 시장다변화 '바람직'
알뜰폰업계가 고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일각에서는 알뜰폰업계를 중심으로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통신비 인하의 주요 방안으로 꼽히는 보편요금제와 65세 이상 통신비 할인혜택 등은 이미 알뜰폰업계에서 시행하는 만큼 별도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녹색소비자연대(이하 녹소연)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대부분의 통신비 인하 방안은 알뜰폰이 노리는 틈새시장에 초점을 둔다”며 “이 시장에 이통3사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알뜰폰 지원 특별법’을 제정, 업계에 힘을 실어주면서 시장의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녹소연은 이어 “해외 주요국의 경우 알뜰폰 점유율이 11~13% 수준으로 국내 알뜰폰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할 경우 월 평균 가계통신비는 현재보다 2만원 하락한 12만원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으로는 풀MVNO의 도입이 거론된다. 풀MVNO는 자체 전산시설과 관련장비 등을 갖추고 독자적인 요금체계를 구성해 통신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는 사업자를 말한다. 이는 제4이동통신과 함께 가계통신비 인하와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사업자의 투자여력을 문제 삼으며 도입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알뜰폰 사업자의 실질적인 시장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며 “풀MVNO를 지향할 수 있는 정책 로드맵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도 “국내 알뜰폰업계의 성장은 자체적인 경쟁력 강화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알뜰폰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부는 ‘니치전략’으로 특화하고 대형사업자의 경우 풀MVNO를 도입하는 이원화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8호(2017년 12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