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규모 10억 불과… 경쟁력 키우기 '관건'
의결권 자문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문성과 독립성이다. 관련 업계는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자문시장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결권 자문활동이 활성화된 외국에 비해 국내 시장은 규모가 지나치게 작기 때문이다.
◆규제보다는 시장 활성화 절실
최근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일각에서는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문사 설립을 위한 자격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는 규제보다는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됐는데 완성도 안된 것을 놓고 부작용부터 우려해 싹을 잘라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 규모는 1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총액이 수백조원에 달하는 상장사의 기업인수나 합병 등 굵직한 사안을 자문해주고 받는 대가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공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수익 45억원 중 84%에 해당하는 38억여원을 한국거래소 등이 내는 회비로 충당했다. 다른 의결권 자문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를 산하에 둔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해 금융공학연구소를 통해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었다. 주식거래에 도움을 주는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신경제연구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국내 의결권 자문시장 규모가 커지지 않는 것은 아직 기관투자자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연기금이 의결권 자문을 받고 있으며 복수의 자문사에 의견을 구하기도 하는데 국내에서는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중에서 의결권 자문을 받는 곳 자체가 적다”고 지적했다.
의결권 자문사는 의결권을 보유한 회사가 주주총회에 상정한 안건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를 IR 활동이나 미팅 등을 통해 파악한다. 주총 시즌이 되면 ‘블랙 아웃’ 기간을 정해놓고 해당 회사와 직접적인 접촉을 삼간다. 주총에 상정된 의안에 대해 회사의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유선 통화를 한다. 이는 자문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의결권 자문사들이 주총 시즌에 사업보고서나 소집공고 내용만 보고 자문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수반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의결권 자문활동에 대한 업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은 편이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최근 의결권 자문사를 과대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외국을 기준으로 보면 안된다”며 “ 미국의 경우 ISS 외에도 지역별 의결권 자문사가 있을 정도로 활동이 활성화됐는데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자문사 관계자는 “과거 연기금 등의 의결권 행사는 반대가 1%도 안됐는데 의결권 자문사가 목소리를 낸 이후 반대 비율이 의미있게 상승했다”며 “최근 여론이나 언론보도를 보면 의결권 자문사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기관투자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로 관심이 커졌지만 여전히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받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대다수의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자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선진국과 대비된다.
아울러 의결권 자문사들이 건전한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의결권 자문 서비스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경쟁적인 자문시장 구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결권 자문사들도 권 교수의 지적에 대부분 공감했다. 한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백복인 KT&G 사장 재선임 당시 ISS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찬성의견을 내놨지만 글래스루이스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서스틴베스트는 반대의견을 냈다”면서 “의결권 자문사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시장이 건강하다는 것이고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30년 전 설립된 ISS는 글래스 루이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의결권 자문시장을 독점했다.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기관들의 주주총회 의안 반대율은 매우 낮았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며 “단순히 반대의견을 많이 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들의 소중한 자금을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하게 된 것이다. 정책적이고 사회적으로 의결권 자문사가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외국계인 ISS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부작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경우 해외주식에 대한 자문은 ISS에 맡기지만 다른 자문은 매년 국내 업체에 용역을 준다”며 “ISS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실제보다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3호(2018년 6월6~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