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임한별 기자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금융감독원의 즉시연금 지급 분쟁조정안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당국에 반기를 들었다. 양사는 지난달 26일과 이달 9일 각각 당국의 즉시연금 민원에 대한 분쟁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약관해석에 차이가 있는 만큼 법원 판단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삼성과 한화가 당국의 판단에 강경대응으로 나선 것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는 2016년 '자살보험금 사태' 때 보험사들이 백기투항했던 모습과 딴판이다. 상품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법원 해석이 나오면 자칫 설명위무(보험업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물 수도 있는 두 보험사는 왜 당국에 반기를 든 것일까.

◆약관 법원 해석, 유리하게 봤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금감원의 조정을 거부한 것은 법적 다툼에서 승산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이사회는 지난달 26일 즉시연금 가입자 1건에 대한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했다. 하지만 전체 가입자 약 5만5000명에게 일괄 적용해 4300억원을 추가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권고는 거부하고 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이사회는 "법적인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밝혔다.

한화생명은 지난 9일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과소지급 여부에 대한 분쟁조정 결과를 거부하는 의견서를 금감원에 최종 제출했다. 한화생명이 거부한 분쟁조정건은 1건이다. 단, 추후 법리적 논쟁이 해소되는 즉시 동종 유형의 계약자들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일괄적으로 조치하기로 했다.


즉, 삼성생명은 분쟁이 된 1건에 대해서만 미지급금을 지급하고 다른 미지급액은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생명은 분쟁조정 1건에 대한 지급권고안은 수용할 수 없지만 법리적 논쟁이 해소되면 해당건을 비롯해 즉시연금 계약자들에게 이자까지 포함해 미지급분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보험사들이 상품약관에 없는 사업비(지급재원)를 임의로 제하고 가입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을 과소 지급한 점이다. 삼성생명은 상품설계서에 사업비가 차감돼 계산된 보험금이 기재돼 있다고 주장한 반면 분조위는 그 내용이 약관에 포함된 것이 아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화생명의 경우 약관상 "만기환급금을 '고려'해 사업비를 차감한다"는 문구가 담겨있으나 이 역시 명확한 고지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판단이다.

결국 삼성·한화생명은 문제가 된 약관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약관이 법리적 판단을 거치면 보험사에 유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크고 작은 분조위 조정에 비교적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금감원과 불필요하게 대립할 필요가 없어서다. 그럼에도 두 회사가 법원 해석을 받아보겠다는 것은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한화생명이 외부자문을 받는 대형로펌사 4곳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2008년 해당 상품에 대해 금감원이 약관을 간소화하라고 해서 축소 후 승인을 받은 적도 있다"며 "당국과 대립각을 세워 우리도 좋을 것이 없지만 이번 사안은 다퉈볼 만한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보험업계에서는 운용수익에서 만기 때 돌려줄 원금을 만들기 위한 재원(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따로 적립하는 것은 연금보험의 기본이라고 주장하며 보험업의 원리를 강조한다. 즉, 약관에 사업비를 따로 뗀다는 조항이 없어도 연금보험상품에서 이는 기본 원리라는 주장이다. 삼성·한화생명도 이 부분에 대한 당위성을 법원이 인정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일각에서는 삼성·한화생명이 법리적 해석을 받겠다고 결정한 배경에 이 사업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의 조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실상 사업비를 공제한다는 내용이 약관에 없는 모든 자사상품이 문제가 될 수 있어서다. 


◆당혹스런 금감원… 윤 원장, 무슨 얘기할까
금감원은 당혹스럽다. 윤석헌 금감원장의 소비자보호방침에 힘을 실어줘야 할 생보사들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보복성 검사는 없다고 밝혔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생보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즉시연금을 갖고 사태를 키우려 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즉시연금이 정말 큰 문제가 있는 상품이라면 어째서 16만명 전체 가입자가 아닌 몇명만이 분쟁조정을 원하고 있나"라며 "새 수장 취임 후 보여주기 식 행정결과를 내놓으려는 금감원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원장은 취임 후 소비자보호를 기조로 한 정책을 펼칠 것을 강조했다. 보험사의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에 관한 금감원의 단호한 조치는 윤 원장의 소비자보호 정책 기조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금감원은 '즉시연금 과소지급 보험금' 소송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민원인 소송지원제도를 8년 만에 가동한다. 소송지원제도 신청은 지금까지 6건 들어왔지만 금융회사가 소송을 취하하는 등의 사유로 실제 지원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금융분쟁조정세칙에 따르면 금감원은 분조위가 신청인(민원인) 청구를 인용했거나 인용 가능성이 큰 사건에 대해 피신청인(금융회사)의 조처가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소송을 지원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당국의 소송지원을 두고 보험사에 대한 경고라는 시각이다. 금감원의 소송지원으로 법정공방이 시작되면 당국과 보험사간 대리법정소송이 시작되는 셈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금융분쟁조정세칙의 소송지원 요건을 충족해 지원되는 것이지 보험사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담은 것이 아니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금감원도 당국의 결정에 반기를 든 두 보험사에 대해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는 16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가 예정된 윤 원장의 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