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대학 입시 거부 시위 /사진=뉴시스 최동준 기자 수능은 국가의 폭력이다. 수능의 주체인 수험생과 학부모, 대학이 만족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부와 입시학원만 웃음짓는 ‘비정상의 적폐’가 이어진다. 수능은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뜻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줄인 말이다. 하지만 대학교수는 수능으로 입학한 대학생들의 ‘수학능력’이 떨어져 강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불평이다.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수능이 자신들의 학습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볼멘소리다.
해마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시험을 위한 수능’, ‘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바뀌는 수능’, ‘물 수능’, ‘불 수능’이란 말이 여러 언론매체를 장식한다. 오로지 ‘수능점수’를 위해 수년간 모든 것을 버리고 정신적, 재산적으로 희생한 학부모도 만족하지 않는다.
◆줄세우기 수능에 모두가 ‘루저’
종합적으로 볼 때 사람의 능력은 동등하다. 비록 학교 공부는 뒤처지더라도 음악이나 미술, 체육, 연예 등 다른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다.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한류열풍을 일으켜 한글 배우기 붐의 주인공이 된 방탄소년단(BTS)이 대표적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좌절에 빠져있을 때인 1998년 6월 US오픈에서 우승한 박세리,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일궈낸 박지성, 2008년 8월15일 북경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 광복절을 더욱 빛낸 박태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이들은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은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수능에서 테스트하는 지능(학습능력)은 동등하지 않다. 이른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지능지수(IQ)가 높고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노력’보다는 ‘지능’에 따라 점수가 좌우되기 때문에 수능을 보고 웃는 사람은 적고 우는 수험생이 절대 다수다. 학교공부(공부는 무술수련이나 운동선수처럼 반복적 습득의 뜻이 강하므로 공부보다는 학습이라는 말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를 잘하는 소수만 승자(위너)가 되고 대부분은 패자(루저)로 만드는 게 바로 수능이다.
게다가 ‘수능 만점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더라도 그들이 ‘공부’에서 세계 사람들과 경쟁해 이겼다는 소식을 좀처럼 듣기 어렵다. 해마다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혹시나하며 기다려도 ‘역시나’로 끝난 지 수십년째다.
공자는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有敎無類(유교무류), <논어> 위령공)”고 강조했다. 신분이나 경제력, 학습능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학습할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하는 ‘만민평등교육론’을 펼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한번 해서 할 수 있다면 나는 백번 하고 10번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천번 한다(<중용> 20장)”며 끊임없는 노력이 필수적임을 잊지 않았다.
◆입시학원만 웃는 ‘교원복합체’
교육평등론과 노력을 강조한 공자도 일방적 주입식 교육을 철저히 배제했다. “학생이 궁금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스스로 답답해하지 않으면 깨우치지 않는다”며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적극적으로 가르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발 나아가 “하나를 가르쳐 3개 이상 더 배우지 않으면 다시 가르치지 않겠다.(<논어> 술이편)”고도 했다.
이런 교육철학을 갖고 있던 공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들의 학습수준에 맞춰 답을 달리하는 ‘이병여약’(以病與藥) 방식으로 가르쳤다. 공부에 전념하는 안연에게는 수준 높은 인(仁)을 얘기하고 군인정신이 투철하지만 성급한 자로에게는 한발 뒤로 물러서는 지혜를 가르치고 말을 앞세우고 게으름 피우는 재아에게는 말뿐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따끔한 호통으로 이끌었다. 요즘말로 하자면 학생의 다양한 관심과 능력에 따른 ‘맞춤교육’을 실행한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수능은 어떤가. 교육의 주체인 학생의 처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가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예외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1등(급)부터 꼴찌(9등급)까지 한줄로 세워 뒤 등급에 머문 학생을 좌절에 빠뜨리는 폭력을 저지른다.
학생이 좌절하는 ‘루저’가 되는 폭력 속에서 입시학원은 날로 번창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을 ‘평등’이란 미명 아래 한 교실에서 가르치니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교실붕괴’가 현실이 됐다.
그 틈을 학원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똬리를 틀고 먹이를 기다리는 살모사처럼 수험생들을 낚아챈다. 내 아들을 ‘천재’로 아는(혹은 천재는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면 공부를 잘한다고 여기는) 학부모는 아들딸을 학원으로 내몬다. 아버지가 번 돈 대부분을 학원비로 쓰고 모자랄 경우엔 엄마가 돈벌이에 나서면서까지 학원을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잘하도록 하는 교육
공부나 학원가는 것보다 엄마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더 좋아하는(어렸을 때부터 학원으로 내몰렸기 때문에 그걸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학생들이 학원 다닌다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는 사례는 극소수다. 게다가 나만 학원 다닌다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모든 학생이 다 학원에 다니니 절대평가가 아니고 줄세우기 상대평가에서 앞서 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오로지 입시학원이 몰린 지역만이 소리없는 환호성을 지를 뿐이다(부동산값 대책의 근본대책은 바로 ‘교원복합체’를 깨는 것이다).
교육은 학생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도록 북돋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 교육제도를 패치워크(짜깁기, 접붙이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수능을 정점으로 한 대한민국 교육은 학생들이 공부를 싫어하도록 하고 원하지 않는 대학을 억지로 다닌 뒤 일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해 결혼마저 하기 힘들어 불행해지는 ‘루저’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실패로 점철된 교육을 계속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교육부와 입시학원만 살찌우는 ‘교원복합체’를 해체하고 학생과 학부모와 대학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수능을 마련하는 백년대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8호(2018년 11월28일~12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