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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마지막은 이야기가 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문제 하나. ‘다산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방대한 학문체계를 쌓은 정약용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무엇일까. 힌트를 주자면 퇴계 이황과 북벌을 주창했던 효종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바로 <심경(心經)>이다.
심경이란 이름은 퍽 낯설다. <심경>은 이름 그대로 ‘마음’에 대해 다룬 고전이다. 편찬자는 중국 송 시대 학자인 진덕수로 동양 고전들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구절을 엄선해 엮은 후 간단한 해설을 덧붙였다. 퇴계는 서른 무렵 이 책을 접한 다음 마지막 순간까지 매일 새벽마다 읽었다. 정약용 또한 자신의 공부를 정리하며 <심경>을 인생의 마지막 책으로 여겼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심경>을 바탕으로 삼아 고전연구가 조윤제가 <천년의 내공>에 이어 고전이 전해주는 깊은 통찰을 소개한다. 이를 위해 진덕수가 선별한 마음과 관련된 명구 37가지에서 핵심을 뽑아 지금의 감각에 맞도록 다시 썼다. 독자가 어려운 문장에서 헤매지 않고 살아가며 놓친 마음을 쉽게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경전의 끝판왕’으로 불리지만 <심경>의 핵심은 일찍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모든 학자들이 도달한 마지막 경지의 핵심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떤 말보다 심오하고 어렵다. 즉 “마음은 내 것이지만 평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인생의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는 자각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취하기 마련인 행동은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심경>에서는 그러한 정리는 마음공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마음이란 살아내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다툰 끝에 결국에는 화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심경>이 그랬듯 고전 명구를 다루되 섣부른 조언보다 내 마음이 지옥 같은 때 펼쳐 읽고 기댈 수 있는 위로가 되고자 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왜 <심경>은 100여년 만에 완벽하게 잊힌 책이 되었을까. 한국인은 19세기 말 이후 100년 남짓한 시간을 1000년과 같이 가쁘게 보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며 당장의 현실을 넘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또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원하는 대부분을 얻었지만 내적으론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분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다.


쉽게 분노하고 서둘러 냉소하는 지금 <심경>을 다시 봐야 하는 까닭이다. <심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의 마음은 늘 휘청거리니 그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이 책은 격이 다른 마음공부의 고전으로 성큼 다가간다. 그럼으로써 ‘어느 날 문득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던’ 모든 분들께 위로가 되기를 기대한다.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펴냄 | 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S> 제569호(2018년 12월4~1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