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변한다. 대형마트의 확산으로 사라지던 시장이 문화라는 특색을 입고 ‘핫플레이스’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 시장이 우리 곁으로 온전히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머니S>가 전통시장에 부는 변화의 흐름을 살피는 한편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시장’의 재발견-④·끝] 이 시장은 ‘우리’가 책임진다
전통시장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 있듯 전통시장에는 그 시장만의 특색을 살린 음식이 가득하다. 한입거리 간식부터 든든한 식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은 손님들의 발길을 이끌며 시장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특별한 문화가 된다.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서울시내 유명 전통시장의 별미를 <머니S>가 찾아가 봤다.
통인시장. /사진=이한듬
◆특색 입은 시장음식
“오늘 잡채가 아주 맛있게 잘됐어. 제육도 괜찮고.”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을 찾은 지난 8월16일. 시장골목길 반찬가게의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형형색색의 음식에 기자의 시선이 머물자 상인이 반갑게 말을 건넨다. “아직 엽전을 구매하지 않았다”는 답변에 상인은 “고객센터에서 얼른 구매해 오라”며 발길을 채근한다.
통인시장은 뷔페처럼 시장 내에 위치한 반찬가게에서 개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 먹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현금대신 상평통보 모양의 엽전을 사용하는 점이다. 2012년 상인들의 아이디어로 엽전을 활용한 시스템이 도입됐는데 현재 통인시장을 서울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게 한 명물이 됐다.
시장 중앙에 위치한 고객센터에서 5000원을 내면 엽전 10개와 편의점 도시락만한 크기의 그릇을 준다. 대부분의 반찬은 한개에 엽전 두냥. 시장을 돌며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른 뒤 엽전을 지불하고 도시락 그릇에 담으면 된다. 통인시장의 명물인 ‘기름떡볶이’도 엽전 두냥에 맛 볼 수 있다. 도시락 그릇을 모두 채우면 고객센터에 마련된 식당에서 먹으면 된다.
판매하는 음식 자체는 평범하지만 엽전이라는 특색 있는 시스템을 활용한 덕분에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일본,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서툰 한국어로 시장상인들에게 각자 원하는 음식이름을 말하며 도시락 그릇을 채우는 장면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남대문 시장. /사진=이한듬
이어 방문한 서울의 대표 전통시장인 남대문시장은 ‘칼국수’와 ‘갈치조림’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칼국수골목을 방문했지만 별미를 맛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으로 골목 안이 가득 찼다.
인파를 헤치고 겨우 빈자리를 찾아 앉은 뒤 칼국수를 주문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푸짐한 칼국수 한그릇이 탁자 위에 놓인다. 애호박, 부추, 유부, 김가루 등 다양한 고명과 함께 간장 베이스의 양념장이 기본으로 올려져 나온다.
구수하고 뜨끈한 멸치육수와 면을 입에 넣자 몸이 풀리는 기분이다. 날이 궂은 한겨울에 찾아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국수골목에서 다양한 메뉴를 맛보고 싶다면 보리밥이나 찰밥을 주문하면 된다. 비빔밥과 함께 칼국수 반그릇, 맛보기용 비빔냉면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광장시장. /사진=이한듬 기자
◆빈대떡에 한잔, 육회에 두잔
다만 위생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방문을 고심해야 한다. 워낙 많은 손님이 드나들다보니 테이블을 제대로 닦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칼국수를 먹는 와중에도 테이블 위에 놓인 수저통 등에 음식물 찌꺼기, 양념장 등이 묻어 말라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찾은 갈치조림골목의 경우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덕분에 번잡함이 덜했다. 대부분 2인분을 기준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혼자 방문할 경우 식당에 들어가기 전 1인분을 판매하는지 묻는 게 좋다. 이미 칼국수 한그릇을 비우고 온 후지만 짜고 맵고 자극적인 갈치조림을 반찬삼아 공깃밥 두그릇을 비웠다.
퇴근 무렵에는 동료기자와 함께 종로 광장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빈대떡과 마약김밥, 육회로 입소문이 난 전통시장이다. 날씨가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에도 별미를 맛보기 위해 찾아온 손님과 외국인관광객이 한 데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 길목을 따라 중앙에 늘어선 노점상에서 쉴 새 없이 빈대떡을 굽는 상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외국인관광객들은 이 모습이 신기한 듯 연신 사진을 찍어가며 난생 처음 접하는 ‘한국의 맛’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가격은 채소빈대떡 5000원, 해물이나 고기가 들어가면 8000원이다. 고기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을 걸쳤다. 누구나 다 아는, 특별할 게 없는 맛이지만 활기찬 시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육회를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 또 다른 명물인 마약김밥을 먹었다. 가격은 3000원. 유부, 당근, 단무지가 전부인 평범한 꼬마김밥이다. 그런데 왜 마약김밥인 걸까. 상인은 “함께 제공되는 겨자소스가 마약”이라며 “소스를 꼭 찍어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하루에 몇명이나 찾느냐는 질문에 이 상인은 “세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며 “경기가 안 좋은 탓인지 예전만큼은 사람이 많지 않아 저녁 8시30분이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육회집은 광장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 중 한곳이다. 인기가 높아 3호점까지 점포를 늘렸다. 맛 자체는 특별할 게 없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취해 동료와 함께 소주 한잔 기울이며 불콰해진 얼굴로 속마음을 터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맛은 추억으로 기억된다. 평범한 시장음식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사람냄새 나는 정겨운 시장골목에서 쌓은 추억 때문이 아닐까. 추석을 앞둔 늦여름, 전통시장을 찾아 나만의 특별한 추억의 맛을 쌓아보는 것은 어떨까.
☞ 본 기사는 <머니S> 제607호(2019년 8월27일~9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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