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온 5·18은 피해자 명예회복, 전두환·노태우 등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일부분 이뤄졌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 미흡하다. 무엇보다 발포명령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아가 ‘어둠’의 틈을 타 운동의 참뜻을 훼손하는 세력들이 준동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5·18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전일빌딩 10층에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뉴시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5·18민주화운동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1980년 5월 광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증언자들과 진상조사위원회 등을 통해 아직도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당시 시민군을 향한 발포명령자를 밝히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특별조사위원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5·18 학살의 책임이 있는 전두환씨는 헬기사격을 부인하고 있다.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헬기사격이 실제로 있었느냐’다.

전일빌딩 내부 탄흔. /사진=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헬기, 광주천 향해 사격했다”
‘헬기사격’은 1988년 처음 언급됐다. 이후 국방부 특조위, 국과수 그리고 다수의 증인으로 진실이 밝혀졌다.
지난 2016년 12월13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 10층에서 총탄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날은 5월21일과 27일에 집중됐다. 21일은 계엄군이 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한 날이고 27일은 도청에 있는 시민군을 학살 진압한 날이다. 전일빌딩 근처와 주월동, 양림동을 중심으로 증언이 나왔다.


당시 탄피를 주운 사람도 있다. 현재 해당 탄피는 광주 5·18기념재단에 기증된 상태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증언센터 팀장은 “(기증자가) 논에서 (1980년) 5월에 주워서 집에 보관했던 것을 재단에 기증한 것”이라며 “주월동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MBC ‘스트레이트’에 설명했다.

국과수는 해당 탄피에 대해 “탄피 생산연도가 1977년으로 추정된다”며 “시기상으로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감정했다.


차 팀장은 “ (1980년) 그 이후 광주에서 군인들이 훈련이나 발칸포를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저희가 (5·18 당시 사용한 탄피로) 가정하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전두환씨 재판에 헬기사격 목격자로 출석한 최모씨는 “불로동 다리 상공에서 앞모양이 둥그런 헬기가 광주천을 향해서 ‘타타타’ 하는 총성과 함께 불빛을 내면서 사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1995년 처음으로 전두환씨 일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을 당시 미국인 피터슨 목사는 한국에 와서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그해 5월11일 기자회견에서 “1980년 5월21일 수요일 오후에 몇시간 동안 헬리콥터가 도시 위를 날고 있었다. 도로 위 사람들을 향해 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9월13일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80년 5월 헬기사격이 이뤄진 광주 동구 전일빌딩을 찾아 헬기 사격 총탄 흔적을 살폈다. /사진=뉴스1

국방부 특조위·국과수도 인정하는 그날의 ‘헬기사격’
지난 2016년 전일빌딩 10층에서 총탄 흔적에 대해 광주시는 국과수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헬기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국과수는 지난 2017년 1월12일 광주시에 낸 보고서에 전일빌딩 외벽에 탄흔 35개, 10층 기둥 바닥에 최소 150개의 탄환을 식별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에는 “호버링(일정한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은) 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추정되나 사용 총기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론이 담겼다.

문재인정부는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조사를 진행했다.

국방부 특조위는 조사를 통해 계엄군이 광주시민에게 헬기사격을 했으며 공군의 전투기도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했다는 점을 알아냈다.

당시 코브라 헬기 2대에 20㎜ 발칸 총 1500발, 500MD 헬기에 기관총탄 1000발이 실렸다는 기록도 나왔다.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광주 진압 부대 20사단의 1980년 5월23일 ‘20사단 탄약 지급 일지’에 따르면 20㎜ 발칸포 탄약 1500발이 지급됐다. 1500발은 코브라 공격헬기 1대당 750발씩 2대를 꽉 채운 양이다.

해당 헬기는 이미 5월21일 500발씩을 싣고 광주에 갔다. 이틀 후인 23일 다시 지급했다는 것은 헬기에 있던 총탄을 이미 사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은 “광주에 코브라 2대가 내려왔다. 내려올 때 대당 500발씩 발칸, 20㎜ 발칸을 가지고 내려왔다”며 “근데 23일 다시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에서 1500발을 수령해 갔다. 결론적으로 자기들이 가지고 내려왔던 20㎜ 발칸 500발씩 2대, 1000발은 소모했다는 것”이라고 ‘스트레이트’에 설명했다.

또 새로 싣고 간 1500발을 반납했다고 송진원 전 육군 제1항공여단장은 법정에서 주장했으나 이를 반납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탄약을 관리했던 최종호 전 육군 31항공단 탄약 관리 하사는 지난해 9월 법정에 출석해 “지켜봤는데 4통(약 3000발) 정도 내줬으니까 다 안다”며 “그때 업무일지와 탄약이 나갔던 기록을 다섯장 이상 썼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전두환씨가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섰다. /사진=장동규 기자

전두환과 그 일당, 여전히 “헬기사격 없었다”
이렇게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했다는 자료와 증언이 나오지만 전두환씨와 그 일당들은 아직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며 헬기사격을 부정했다.

이후 고 조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전씨를 고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전씨는 재판에서 “당시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만약 헬기에서 가격했더라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러한 무모한 짓을 대한민국의 헬기 사격수인 중위나 대위가… 난 그 사람들이 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전씨가 증인으로 채택한 당시 군 간부들도 헬기사격을 부인했다.

송진원 전 육군 제1항공여단장은 법정에서 “실제로 작전이 끝나고 나왔을 때 (실탄을) 한발도 소모한 상태가 없이 복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에서 그 많은 사람들 중 탄피를 주운 사람이 있냐”, “맞은 사람이 있냐”며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