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경기도 용인시 과거 경찰대학 인근에서 독사진을 찍은 이무영 제9대 경찰청장(이 전 청장 제공) © 뉴스1

(성남=뉴스1) 이승환 기자,원태성 기자 = 이무영 제9대 경찰청장은 '역대 최고의 경찰청장'을 꼽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했다. 청장 취임 다음 해인 2000년 미국 권위의 시사경제지 '비즈니스 위크'는 '아시아 스타 50인'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역대 치안총수 65명 가운데 이 전 청장이 처음으로 선정된 것이다. '아시아스타 50인'에 오른 국내 인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선정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장하성 청와대 전 정책실장(선정 당시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등이 있다.

"경찰 개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이 전 청장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 전 청장은 1999년 11월 14일부터 2001년 11월 9일까지 약 2년간 청장으로 재직했다. 임기 동안 추진한 개혁 과제는 세부적인 것까지 포함하면 500여개에 달한다.


대표적인 개혁은 파출소 근무체제를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꾼 것이다. 일선경찰관의 격무 부담을 해소하자는 차원이었다. 당시 파출소 직원의 하루 근무시간은 14~15시간이었다.

"증원 없이 3교대 근무는 힘들다"는 수뇌부 이견을, "직원들 눈에 새겨진 실핏줄을 일단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며 물리치고 3교대 전환을 단행했다. 지금도 이 전 청장을 '우리 청장님'이라고 부르는 파출소·지구대 직원이 적지 않다.

주목할 점은 청장 시절에도 '수사권구조 개혁'을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임 후 20년 동안 인터뷰와 강연 때마다 "수사권구조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선진경찰로 거듭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수사권구조 개혁이란 검·경수사권 조정이다. 경찰의 '66년 숙원' 개혁이다. 핵심은 경찰의 수사권 강화, 그리고 검찰의 수사권 축소다. 궁극적으로 경찰이 수사를, 검찰이 기소만 맡자는 것이다. 수사권조정 조항을 담은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해 경찰은 66년 '숙원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은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법무부가 지난 7일 제시한 수사권조정 관련 대통령령을 놓고 실망감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법안 취지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대단히 안타깝다"며 "입법예고 기간에 대통령령이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일 오후 4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한 음식점에서 이 전 청장과 마주 앉았다.

- 대통령령 무엇이 문제인가.
▶수사준칙 주관부서가 법무부로 단독 지정된 것부터 문제다. 경찰과 공동주관으로 가야 했다. 검사의 자의적인 수사 허용도 수사권조정 입법 취지와 어긋난다.

'수기'(수사와 기소)분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다. 대선을 통해 선출되기 전인 2017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을 독대했고 그전에도 장시간 독대하거나 몇 차례 통화했다.

수사권조정 관련 여러 조언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대통령' 글자가 명시된 대통령령은 과거로 돌아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지난 1월에 통과된 원래 법안에는 수기분리 원칙이 살아 있었는데 약 7개월 뒤 나온 하위법령(대통령령)은 과거로 역행하고 있다. 대통령령 입법예고 기간에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

2017년 1월 여의도 모처에서 당시 여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무영 전 청장(이 전 청장 제공·)© 뉴스1

- 경찰은 수사권조정의 최종 목표로 검찰이 기소를, 경찰이 수사를 이원화해 맡는 것으로 잡았다. 그러나 경찰이 이를 감당할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경찰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자꾸 '수사권조정은 시기상조'라는 사람이 있는데 제대로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약 300년 전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1689~1755)가 무엇을 주창했는가. 그는 민주국가를 위한 '삼권분립론'을 제시했다. 입법·사법·행정으로 분립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입법은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고, 사법은 수사·기소·재판으로 나누자고 했다. 미국·영국·프랑스 모두 이런 식으로 입법과 사법을 나눴다. 사실상 대한민국만 이렇게 안 하고 있다. 수기분리로 법치중심의 민주국가를 실현해야 한다.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은 법치 민주주의도 하자는 것이다.

◇'정치 경찰' 우려…"그래서 수기분리 더 필요"

수사권조정 법안 핵심 내용은 Δ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Δ경찰에 1차수사 종결권 부여 Δ검사의 직접수사 범위 제한이다. 지난 1월 법안 통과 때만 해도 검찰과 경찰 관계가 '상하'에서 '대등'으로 재설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법무부는 법안 통과에 따라 개정된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담긴 대통령령을 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입법예고 기간은 보통 40일 이상이며, 해당 법령은 Δ규제 심사 Δ법제체 심사 Δ차관회의 심사 Δ국무회의 심사 등을 거쳐 국회 본회의 심의·의결 과정 등을 통과해야 공포될 수 있다.

이 전 청장이 언급한대로, 법무부의 이번 대통령령은 수사준칙 주관부서를 법무부로 단독 지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법무부의 독자적 유권해석과 개정을 허용했다는 게 경찰 측 입장이다. 법무부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법 개정 취지가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검찰청법 대통령령도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검찰청법은 검사의 직접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 6대 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마약수출입범죄를 경제범죄의 하나로, 주요 정보통신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범죄를 대형참사범죄의 하나로 대통령령에 적시했다는 것에 경찰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범털(재산 많고 지적 수준 높은 거물급 범죄자) 수사를 독점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거세다.

- 경찰이 아직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건 아닐까.
▶경찰을 더 믿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청장이던 20여년전부터 이미 대민 서비스를 시행해 국민 신뢰를 얻고자 노력했다. 경찰권이 비대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경찰은 자치경찰제를 통해 경찰권을 축소하려고 한다.

경찰위원회 감독권을 통한 민주적인 방식의 내부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정치 관여·기업 개입·시민사회 개입 의혹으로 논란이 되는) 정보경찰을 개혁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경찰도 국민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 갑작스럽게 수기분리하면 부작용이 따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갑자기'가 아니다. 20년 전부터 경찰은 수기분리를 주장하며 준비했다. 사법시험 출신 또는 변호사 출신 인사들,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수기분리를 반대하고 있다.

2000년 직무실에서 사진 촬영 자세를 취하는 이무영 전 청장(이 전 청장 제공) © 뉴스1

-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른바 '정치검찰' 논란이 불거진다. 검찰이 전 정권을 표적 수사한다는 것이다. 경찰의 수사 기능이 강화되면 '표적수사' '정치경찰'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
▶경찰이 표적수사했다고 해도 검찰이 기소 안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더 수기분리하자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되면 '표적''정치수사' 같은 무리한 수사를 자연스럽게 막을 수 있다.
◇반발하는 목소리에 "내가 책임진다" 호통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임은 이 전 청장 개혁의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이 전 청장은 임기 동안 경찰의 '박봉문제' 해결을 위해 김 대통령에게 3차례나 '직보'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전 청장의 직언에 공감하며 전윤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경찰 인건비 관련 예산을 7000억원까지 증액하라고 지시했다.

청장 취임 직전에 역임했던 서울지방경찰청장 때는 경찰의 최루탄 살포를 사실상 금지했다. '최루탄 없는 신시대'를 연 것도 이 전 청장의 성과다. 시위대 안전을 위해 여경기동대'를 경비선(폴리스라인)에 배치하는 파격적인 실험도 강행했다.

진보와 보수언론 모두 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아시아 스타 50인' 명단에 그를 포함시켰다.

이 전 청장의 카리스마는 경찰 내부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개혁추진 과정에서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을까. 질문을 던지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파출소 3교대 한다니까 '범죄 발생률이 높아지면 누가 책임지느냐' 이런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놈아, 내가 책임진다, 내가!'라고 호통쳤다. 반대하는 친구들 모조리 인사 조처하고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수사권조정 후속작업을 해야 하는 김창룡 현 경찰청장에게 꼭 전해주길 바란다. 개혁과제 추진 과정에서 행여 반발에 부딪히더라도 계획대로 강도 높게 추진하라고."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이 취임식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한 '개혁'이라는 열차에 얼른 탑승했다"며 "개혁에 동참하지 않으면 큰일 날 분위기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창룡 체제'에 기대감…"좌고우면 안 돼"

지난 4일 정부는 총 12명의 경찰 고위직 인사결과를 발표했다. 치안정감 5명과 치안감 7명에 대한 인사였다. 치안정감은 경찰조직 2위 계급, 치안감은 3위 계급이다. 김창룡 청장이 지난달 24일 취임한 지 약 10일 만에 수뇌부가 구성되며 '김창룡 체제'가 진용을 갖춘 셈이다.

김 청장은 직접수사 범위를 놓고 검찰과 힘겨루기를 해야 하고,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본부 설치라는 '후속 개혁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김창룡 신임 경철창청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제22대 경찰청장 취임식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2020.07.2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김 청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권 조정 대통령령을 겨냥해 "법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맞섰다. 그는 10일 열린 해당 간담회에서 "사회 각계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겠다"며 40일의 입법예고 기간 대통령령을 수정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전 청장은 김 청장에 남다른 기대감을 보였다.

"김 청장은 경찰대 4기로 전임 민갑룡 청장과 동기다. 두 사람이 경찰개혁이라는 역사적·시대적 요청을 잇달아 받았다. 민갑룡 전 청장은 임기 동안 '수기분리'라는 형사소송법 개정의 틀을 마련했다. 김 청장이 이제는 애초 취지를 고스란히 살려 수사권구조 개혁안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중책을 수행해야 한다. 김 청장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인터뷰 후 이 전 청장이 건넨 책 표제는 '경찰의 나아갈 길'이었다. 전·현직 경찰관 모임 무궁화클럽이 지난 2016년 1월 발간하는 이 책 머리말 최상단에, 이 전 청장은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고 적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그는 '수사 구조 개혁' 얘기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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