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이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과거 조선·기계·철강·정유·화학이 누리던 영광이 이제 방위산업을 비추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걸림돌도 함께 놓여있다. 정부 주도 하에 징벌적 제재가 따라붙는 현재 사업모델 탈피가 불가피하다. 내수를 키우고 수출 길도 열어줘야 한다. 주도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K-방산의 미래도 없다. 기로에 놓인 방위산업의 현주소와 한계를 짚어본다.
전력화사업이 성공적으로 종결된 K9자주포/사진=뉴스1 DB

율곡 비리, 린다 김 사건… 방산은 비리? 

1993년 율곡 비리 사건, 1996년 린다 김 로비 사건, 2014년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사건. 방산 하면 늘 뒤에 따라 붙는 '비리', 방산에 비리 프레임을 씌운 대표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방위사업 과정에서 군 관계자와 무기 중개상 등이 얽혀 뇌물이 오간 일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국민의 손가락질을 넘어 국방 연구와 방산의 발전을 적잖게 억눌러 왔다. 전문가들은 국내 방산기업들과 이러한 방산 비리를 다른 프레임에서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기존 방산 비리들은 무기 중개상의 해외 무기 도입이나 에이전트 등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국내 방산 기업들의 전체 비리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국가에서 지정한 방산업체들은 관련 법규나 제도 하에 관리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업체들은 오히려 규제가 지나치게 많고, 세계적인 트렌드와 역행하고 있어 산업 자체의 성장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방위산업을 더이상 규제 없인 비리를 낳는 부패의 온상으로 바라봐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판 록히드 마틴'.. 장밋빛 꿈일까?

# KDDX(한국형 차기구축함)와 KF-X(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국내 방위산업 국산화의 화룡점정으로 꼽힌다. KDDX는 선체설계(현대중공업)부터 핵심 무기체계(한화시스템) 및 각종 무장(LIG넥스원)까지 모두 국내기술로 만들어진다. 총 사업규모 7조8000억원에 달하는 최초의 국산 구축함. 향후 10년간 6척이 건조될 예정이다. KF-X는 한화시스템이 핵심장비인 AESA 레이더 시제기를 담당하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시제기 조립에 착수했다. 2025년부터 40대 초도 양산이 시작된다. 최소 F-4와 F-5 200대를 교체한다. 이 사업 덕분에 2030년 중반까지 국내 방위산업 국내 매출은 견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 국내 물량만 확보한 것이 아니다. 국내 함정과 잠수함 수출은 이제 빈번한 일이 됐고 T-50 초음속 고등 훈련기도 7개국에 2조원 이상 납품된 효자 수출품이 됐다. K-9 자주포는 최근 호주 수출길을 뚫었다. 호주 육군 현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자주포 획득사업’ 우선협상대상에 K-9이 선정된 것. 이 사업은 약 1조원 규모다. 세계 시장에서 절찬리 판매 중인 명품 K-9이 다시 한 번 이름값을 한 순간이다. 호주뿐 아니라 터키·폴란드·인도 등도 K-9 자주포로 자국 영토를 지키고 있다. K-방산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도 싹을 틔우는 중이다.

그래픽=김영찬 기자/사진=뉴스1 DB_사진제공=한화디펜스
방위산업 후발주자인 ‘K-방산’이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국내 납품물량 증가로 방산기업 3분기 매출이 호조세를 보이는가 하면 항공기·미사일·자주포 등 수주 낭보도 잇따라 전해진다. 덩달아 세계 순위도 올랐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의 2019년 무기수출은 세계 8위. 2015년 20위에서 불과 4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세계 방산시장 점유율 또한 2.1%로 7년 전보다 1.3% 포인트 증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K-방산의 제2의 도약이라는 평가를 내놨지만 정작 속사정은 달랐다. 오히려 도약보단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 예산 느는데… 매출·이익 뒷걸음

성과는 단기적일 뿐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는 게 방산업계가 공통적으로 짚는 문제다. 왜 그럴까. ‘2020년도 방위사업 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10대 방산업체의 매출액·수출액은 2016년 이후 뒷걸음질과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2015년 14조원을 돌파했던 매출은 2016년 14조8163억원까지 올랐으나 2018년 13조6493억원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13조9431억원으로 올랐지만 2.2% 소폭 증가에 그쳤다.

수출도 마찬가지. 지난해 10대 방산업체 해외 매출액은 1조7698억원으로 전년 1조9991억원보다 11.5% 줄었다. 해외 매출액은 2015년 2조6357억원에서 2016년 2조7358억원으로 증가했지만 2017년 1조원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은 12.7%에 머물렀다. 선진국(25~30%)의 절반 수준이다.

신속시범획득사업을 수주한 현대로템의 다목적무인차량/사진제공=뉴스1 DB
영업이익은 더 심각하다. 10대 방산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0년 7.4%에서 2015년 5.1%로 줄었고 지난해 3.7% 수준으로 떨어졌다. 5년간 방산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로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 6%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현 정부 들어 국방 예산이 ‘역대급’으로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국방 예산은 국내 방산업체의 매출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도 읽힌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7년 40조3347억원이던 국방비는 올해 50조1527억원으로 늘었다. 3년 만에 10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이 중 국내 방위산업과 관련되는 방위력 개선비는 올해 16조6804억원으로 전년 대비 8.5% 증가했다. 지난 3년간 방위력 개선비 평균 증가율은 11%로 앞서 9년(2009년~2017년) 간 평균 증가율 5.3%의 2배를 넘어선다.

문제는 늘어난 국방 예산이 국내 방산업체의 낙수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되레 미국산 무기 구매가 증가했다. 2014∼2018년 국외 무기구매는 전체 방위력개선비 약 55조원 중 38%(22조2000억원)에 달했다. 국외구매 무기는 2016년 약 1조원에서 2018년 4조30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뛰었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한정된 방위 예산을 바탕으로 국내 업체가 경쟁하는 구조다 보니 영업이익률이 일반제조업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며 “국방비가 늘어난다고 해도 사실상 수혜는 해외 방산업체가 누리고 있는 셈이라 국내 업체가 고전하는 그림은 사실상 똑같다”고 말했다.

◆유일한 활로 ‘고마진 수출길’도… “쉽지 않네”

업계는 유일한 활로를 수출로 보고 있다. 내수의 경우 방위사업청의 방산원가 산정 기준에 따라 매출 총이익률이 9~16%로 제한되는 반면 수출은 이러한 제한이 없어서다. 수출의 경우 해당 국가와의 협상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내수와 달리 고마진을 노려볼 수 있다.

종종 성과도 나오고 있다. K-방산의 ‘눈’으로 통하는 한화는 최근 호주군의 ‘주력 장갑차 선정 사업’에서 최종 관문을 앞두고 있다. 선정만 되면 방산 수출 최대 규모인 5조원대 납품이 예상된다.

하지만 업계 전반으로 눈을 돌리면 수출 역시 장애물이 많다. 특히 올해는 전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더 어려워졌다는 게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출 협상 진행이 기약 없이 미뤄지는가 하면 각종 무기·방산 박람회 등 수출 관련 협상이 이뤄지는 자리가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설상가상 주요 수출 대상국도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자국 업체 살리기에 나서면서 수출 장벽은 더 높아지고 있다.

장기화될 경우 세계 방산업계에서 K-방산 기업 입지도 갈수록 좁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방산 매출 1위이자 세계 32위인 한화의 지난해 방산부문 매출은 39억달러(4조3100억원)다. 세계 1위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 560억달러(65조원)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국내 방위산업 내수 규모는 약 10조원. 록히드마틴 연간 매출 15% 규모에 불과한 내수 시장을 두고 기업들이 경쟁하다 보니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글로벌 덩치를 키우기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정부가 무기체계 수요 계획을 짜고 이에 맞춰 방산업체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돼 방산업체 주도로 무기체계를 연구·개발하거나 선제적으로 투자하기 힘들다”며 “결국 내수 중심이 되다 보니 업체가 해외맞춤형 무기를 개발하는데도 주저하고 수출도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mt.co.kr
국가대표 방위산업의 '족쇄'.. 아날로그 '규제'와 '갑질'


#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기획한다. 수량을 정하고 생산 원가도 직접 정해 공지한다. 이 고객사 주문을 서로 따내겠다며 제조사는 경쟁을 벌인다. 제조사는 고객사가 정한 원가보다 더 낮춰 적자를 보더라도 무조건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물건을 팔 곳은 이 고객사 한 곳뿐. 어렵게 주문을 따냈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중에서도 마감시간은 곧 돈이다. 고객사가 정한 날짜에 납기하지 못하면 하루 단위로 벌금이 쌓인다. 1년 정도 늦어졌다면 약 300억원의 벌금이 물린다. 억울함은 법정을 통해야만 일부 소명이 가능하다. 고객사의 다른 주문을 받았지만 1년 영업이익의 수십배에 달하는 벌금도 함께 쌓인 아이러니한 상황. 그런데도 고객사 눈치보기에 바쁘다. 찍히기라도 하면 앞으로 모든 입찰이 막힐 수 있다. 그야말로 ‘슈퍼갑’과 ‘슈퍼을’. 정부(고객사)와 방산업체(제조사) 이야기다.
“삼성도 포기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방산업체 한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은 2015년 7월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를 한화에 매각하면서 방위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업계에선 삼성그룹이 방위산업을 포기한 이유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방위산업은 툭하면 비리 의혹, 걸핏하면 소송이었다”며 “삼성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빠른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방산기업 87개로 줄어… 기형적 문제 만연

삼성만 철수한 게 아니다. 2016년 두산도 보병전투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두산 DST를 한화에 넘겼다. 그렇게 하나 둘 방산에 발을 담고 있던 기업이 사라지다 보니 2016년 100곳이던 정부 지정 방산업체는 올해 기준 87개(코오롱데크·풍산·현대로템·S&T모티브·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한화시스템·한국항공우주산업(KAI)·LIG넥스원 등)로 줄었다. ▲대기업 20개 ▲중견기업 14개 ▲중소기업 53개 회사다.

매출액은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매출 77%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77개사는 방산업으로 큰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매출 상위 업체들 역시 웃을 수만은 없다. 방위산업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다.

방산계약은 통상 방위사업청(정부)이 필요한 무기를 대기업(방산업체)에 요구하면 방산업체가 여러 중소기업과 협력해 개발하고 이를 정부나 군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고객이 정부와 군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이들은 고객사임과 동시에 방산업체의 1차 감독기관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금전적 손해와 기술탈취 등 기형적 문제가 만연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방산 생태계 재단하는… 규제 또 규제

방산업체들은 정부의 아날로그적 규제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산업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정부 상용품과 같은 규제를 받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체상금(납품 지연 배상금)이 대표적이다. 지체상금은 납품이 지연되면 방산업체가 정부에 지체 일수만큼 물어야 하는 벌금이다. 하루에 계약액의 0.075%가 부과된다. 연구개발(R&D) 또는 생산 차질 등의 이유로 늦어졌거나 심지어 정부의 지시로 납품이 지연된 경우에도 예외 없이 부과된다.

방사청이 지난 10년간 방산업체에 부과해 온 지체상금은 1조원대에 이른다. K2전차 체계개발업체인 현대로템은 2016년 방사청이 파워팩 국산화를 위해 선택한 지정업체의 변속기 문제로 납품이 지연되면서 1100억원의 지체상금을 떠안았다. LIG넥스원은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사고로 인한 납품 차질 문제로 80억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았고 총기제작업체인 S&T모티브는 정부의 설계 변경 탓에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30억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았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개발되지 않은 무기체계의 개발은 특성상 요구조건과 규격 등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는 프로세스가 요구돼 일정·비용이 계속해서 변경될 수 있다”면서 “현 방식 하에서는 업체가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무기 개발에 나섰다가 자칫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도전적 개발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납품이 늦어져도 지체상금이 사업비 10%에 그치는 수입 무기와의 역차별 논란도 거세게 일고 있다.

◆방사청 ‘법정행’… 매년 100건 넘어

‘부정당업자 제재’도 방위산업 특성과 맞지 않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특정 부정행위 업체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로 이 처분을 받으면 ▲입찰 제한 ▲부당이득·가산금 환수 ▲이윤 감액 ▲입찰 감점 등 중복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제재 사유를 뚜렷한 귀책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사청이 2012년~2020년 부정당업자를 제재한 총 876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3건은 ▲담합 ▲허위서류 제출 ▲뇌물공여 등 단순 계약 불이행 건이었다. 일례로 이오시스템은 2016년 방사청의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3개월간 입찰이 제한됐는데 당시 제재 사유였던 원가부정이 착오에 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법원으로부터 제재 취소 판결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사청의 법정행은 날로 증가 추세다. 방위사업청의 최근 5년간 소송 현황에 따르면 2015년 84건에서 2018년 128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116건으로 줄었지만 올해는 벌써 8월 기준으로 114건을 넘어섰다. 방산업체와 방사청의 유례없는 소송으로 “방산업이 로펌 먹여 살리다 날 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중소업체 영업률 1%… 갑질에 휘둘려

방산업체가 발주처인 정부 규제로 신음한다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은 심각한 경영난과 기술탈취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소 방산업체의 영업이익률은 대기업보다 낮은 1%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배경으론 불합리한 계약구조가 꼽힌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정해진 계약조건 없이 불합리한 거래가 횡행한다는 것이다. 한 중소 방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 개발업체를 선정할 때 개발에 필요한 일체의 막대한 비용을 중소기업에게 자체적으로 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련의 계약이 대부분 구두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개발에서 양산, 납품 과정까지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비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다”고 귀띔했다.

막대한 빚을 떠안고 사업을 접는 중소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한 중소 방산업체는 대기업에게 원가산정 공개를 빌미로 회사 정보를 제공했다 결국 사업을 접었다. 원가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영업정보와 협력업체 정보 일체가 고스란히 노출된 게 화근이었다. 이를 악용한 대기업이 다른 중소기업 협력사와 직접 거래를 진행했고 해당 업체는 개발한 기술만 협력사에 넘긴 채 계약에서 배제됐다.

이 업체 대표는 “4년에 걸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킨 뒤 회사는 무너졌다”며 “방산업계에선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가 종종 일어나는데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고해도 계약서 등 증거될 만한 자료를 입증하는 게 쉽지않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대표는 “당장 생계걱정을 해야하는 데 소송비용과 기약없는 시간 싸움을 버틸 재간이 없어 제 풀어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이러한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울러 현 방위산업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김용환 박사(KIST 자문위원)는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이 주관한 국방정책토론회에서 “미국·이스라엘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시제품 개발 권한을 주고 예산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시제품 개발을 경쟁시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이디어를 도둑맞는 경우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계약법에 모든 계약은 경쟁 입찰을 하도록 돼 있어서 생기는 문제”라면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국가계약법에 ‘국방 연구개발의 경우 시제품 개발은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개발 우선권을 줄 수 있다’는 단서조항만 넣으면 해결된다”고 조언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mt.co.kr
거꾸로 가는 국가 보안.. 멀고 먼 '방산 왕국'


# 국내 방산시장과 환경이 가장 비슷한 나라 터키. 이곳에선 사업규모와 상관없이 계약금액 대비 70% 이상 절충교역 의무를 부과한다. 전체 방산 수출의 40% 이상을 절충교역으로 진행하는 셈이다. 터키뿐 아니라 네덜란드도 매년 30% 이상을 절충교역으로 확보한다. 이 중 20%는 중소기업에 의무할당제로 넘긴다.

# 세계 방산시장 점유율 1위. 미국은 자국 업체가 방산 물자를 수출할 경우 기술료를 면제해 준다. 영국도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기술이나 제품에 대해선 기술료를 받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정부 소유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제품이 수출되면 기술료를 면제한다. 방산 선진국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기술료 면제 방식을 도입 중이다.

‘방산 강국’이 되기 위해선 세계적인 방산기업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한다. 국내 방산산업이 내수를 넘어 수출형으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수요 위축과 같은 능동적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선진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K 방산… 톱10 브랜드 만드는 게 중요

업계에선 K-방산의 첫발로 글로벌 톱10 수준의 방산기업을 키워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산업 특성상 소규모 업체의 과당 경쟁보다는 대형화된 기업을 키워내는 게 내수 시장 발전에도, K-방산 브랜드를 알리는 데도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세계 방산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대표적인 방산 대형화 모델 국가다. 미국은 최근 5년간 방산기업의 대형 인수합병(M&A)을 잇따라 진행했다. 올해도 대형 방산업체 ‘레이시온’과 항공기 부품·자재 생산기업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의 합병으로 세계 2위의 방산 공룡이 탄생했다. 영국 역시 항공기·방산전자·함정 등 국방 획득 전 분야 업체를 ‘BAE 시스템’으로 통합하면서 단숨에 글로벌 톱7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흐름은 이와 정반대다. 정부는 2008년 방위산업의 전문화·계열화 정책을 폐지하면서 신규 업체의 진입 길을 열어주고 기존 업체에게 주어진 독점적 지위도 없앴다. 이를 통해 모든 기업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지만 업계에선 오히려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신규 업체가 많아지면서 저가 과당경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술과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방위산업진흥회 한 관계자는 “방산업은 오히려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어야 하는 특수성이 있는데도 정부 흐름이나 규제는 거꾸로 가는 모양새”라며 “내수시장 경쟁에 밀려 수출로 눈을 돌리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것 역시 소형화·분산화돼 있는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형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내수 시장이 제한된 방산의 미래는 수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를 중심으로 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가 차원의 방산 몸집을 키우고 역량을 결집해야 K-방산의 수출길이 넓어지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 확대도 중요하다. 이미 방산 선진국은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둔 지원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은 방산 수출 컨트롤 타워가 주축이 돼 수출금융지원이나 기술료 면제와 산업협력 등을 돕는다. 국내 방위사업청도 최근 수출 기술료를 기존 2%에서 1%로 인하하고 2021년까지 한시 면제하기로 했지만 선진국 지원에 비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절충교역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절충교역은 우리나라가 비싼 무기를 살 때 기술이전이나 국산무기 수출 등 대가를 보장받는 제도다. 무기 수입을 많이 하는 입장에선 쏠쏠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지만 국내 방사청은 자발적으로 절충교역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ROC의 높은 장벽… 자승자박 꼴


모든 것의 전제는 제품력이다. 세계 무대에서 뛰려면 잘 만들어 보증된 제품이 필요하다. K-방산 인지도를 위해 무기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무기는 아직까지 세계 시장에서 ‘명품 기술’이라는 평가보단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가 더 많다. 수출 품목도 T-50 훈련기와 K-9 자주포 외 추가될 제품이 없는 실정이다.

업계에선 정부의 ROC(작전요구성능)가 발목을 잡는다고 하소연한다. 국내는 세계 방산국가에 비해 ROC 수준이 높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기준을 100% 충족해야 하는 완성형 방식으로 무기 개발이 진행된다. 방산 업체가 자율적으로 새로운 무기 개발이나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없는 구조. 일단 70~80% 수준의 성능으로 무기를 완성한 뒤 전력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선진국의 방식과도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방산 강국도 실전배치와 운용단계를 거치는데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완벽한 성능을 요구해 놓고 안 되면 지체상금(납품 지연 배상금)까지 물어야 하는 구조”라며 “업계나 정부 모두 자승자박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방산 강국으로 통하는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국가 주도 무기 개발로 해결했다. 이스라엘은 국방부 산하 획득생산국(PPD)에서 무기 개발과 제작에서 감독까지 모든 걸 수행한다. 국가 주도지만 개발 계약 체결 시엔 민간 수출까지 염두에 둔다. 민간이 주도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이스라엘 명품 무기 개발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전문가들도 K-방산의 미래는 정부의 생태계 조성에 달렸다고 말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박성준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중구성동구을)은 “현재 프로세스는 방위산업 진흥과 거리가 먼 게 사실”이라며 “국방 연구개발 및 무기체계 개발에서 체결·이행·제재 등 전 과정에 특수성이 반영돼야 하고 규제보다는 진흥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