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어렵사리 수사를 시작했지만 곳곳에서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예상못한 바는 아니지만 '험로' 수준을 벗어나 보인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1호 수사'는 공교롭게도 공수처가 처한 빈곤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국민이 기대하는 고위공직자의 거대 부패 범죄를 다루자니 수사팀 역량에 한계가 분명했음을 자인한 셈이 됐다. '쉬운 선택'의 배경에는 1호 수사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가 장고 끝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전교조 해직 교사 특별 채용 의혹 사건을 택하자 여야에서 동시에 비판이 터져나왔다. 고위공직자 부패범죄 처단이라는 공수처 설립취지가 무색한 사건이란 게 비판의 요지다.
이미 감사원이 감사결과보고서를 낸 사안으로 비교적 손쉬운 사건인데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형 사건을 피해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어서다. 또한 조 교육감 사건은 공수처에 기소 권한이 없어 기소권을 가진 검찰과 갈등도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이 "이러려고 공수처 만들었나 자괴감이…"라고 한탄할 정도로 상황은 연일 악화됐다. 여권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도 공수처를 향해 "공수처가 엉뚱한 사건을 선정했다"며 직격했다. 여당에선 "우리가 어떻게 만든 공수처인데 대체 왜 저러냐"는 장탄식이 흘렀다. 야당에선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이 "복잡하고 거대한 다른 사건들은 다룰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인가"라고 일갈했다.
2호 수사인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보고서 왜곡·유출' 의혹 사건도 '늑장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 이첩 두 달을 넘긴 25일에야 겨우 첫 피의자 소환조사를 했다. 이 사건은 '청와대발 기획사정' 의혹과도 연결돼 있어 공수처의 수사 의지와 능력을 판단할 가늠자로 여겨진다.
이어 3호 수사로 택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은 수사 기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다. 고발 일주일 만에 수사에 착수하는 등 시점이 이례적으로 빨랐다. 이번엔 조 교육감 사건으로 공수처에 각을 세운 여권의 눈치를 본 사건 선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처럼 여야가 공통적으로 드러낸 '불신'은 그 누구도 아닌 공수처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로부터 독립된 수사·기소권을 가진 공수처가 탄생했지만 첫 발도 떼기 전에 '이성윤 특혜 조사'로 국민에 큰 실망을 안겼다. '정권 수호처', '수사방해처' 등 조롱이 뒤따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공수처 흔들기가 과하다'는 하소연도 내부에서 나오지만,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오롯이 공수처 몫이다. 공수처 스스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원칙과 기준을 정립하고 정치적 고려 없이 한땀한땀 수사를 해나가야만 지난 4개월 간의 논란들이 출범 초기 '성장통'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공수처는 심각하게 존폐를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1월 취임 일성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함으로써 공정한 수사를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닌 오로지 국민 편만 들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수사·기소라야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임기 3년의 초대 공수처장인 그가 다시 초심을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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