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전북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밤목마을의 주민 임기택씨(58)가 마을을 찾아온 기자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다. 마지막 잔을 비울 때쯤 해가 지자 임씨는 가지고 있던 랜턴을 비춰 술을 따랐다. 2021.8.4/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완주=뉴스1) 박동해 기자 = "전기만 들어오면 여기 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어"
"진짜 일등이여 일등"
오랜만에 외지에서 사람이 찾아온 것이 반가웠는지 밤목마을 주민 국승구씨(65)는 마을 바깥에서 사 온 삼겹살을 구웠다. 집 옆에 새로 만든 평상에서 처음으로 고기를 굽는 날이었다. 저녁상에는 불판과 함께 도시에 사는 승구씨의 아내가 챙겨준 싱싱한 김치가 올랐다. "삼겹살 좀 궈먹게 넘어와"라는 승구씨의 초대 전화를 받고 찾아온 이웃 주민 임기택씨(58)도 자리를 함께했다.

삼겹살을 안주 삼아 한두 차례 술잔이 오가자 두 주민의 마을 자랑이 이어졌다.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로 눈을 돌려도 푸른 배경의 마을은 도인들이 도를 닦으러 찾아올 만큼 맑고 깨끗했다.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고 싶어 전국을 누비다가 이곳을 알게 돼 정착했다는 기택씨는 "처음 본 그 순간 내가 꿈꾸던 곳이었어"라고 5여년 전 마을을 처음 발견한 때를 회상했다.


마을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다가도 두 주민은 '전기' 이야기가 나오면 혀를 찼다. 두 남성을 포함해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 전북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밤목마을은 외부로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마을 뒤편에 있는 성봉을 오르다 바라본 밤목마을 국승구씨의 집. 마을에는 현재 5가구가 살고 있지만 다른 가옥들은 산에 가려져 국씨의 집만 외롭게 보인다. 2021.8.5/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 한대도 없이 여름 나기
뉴스1은 지난 3일과 4일 이틀간 '전기없는 마을'로 알려진 밤목마을을 찾았다. 3일 오후 기자와 처음 만나서부터 전기 없는 삶의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승구씨는 줄곧 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문화 혜택을 누릴 수가 없어. 사람이 편히 살다가 죽어야 할 거 아니여. 이렇게 더운데 여기다 선풍기 하나만 틀어도 좋찮혀. 그런데 선풍기 하나도 틀지를 모뎌."(관련기사:'오지중에 오지'…5G시대에 전기없는 마을이 있다고?)

승구씨의 말처럼 그의 집에는 전자기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2009년 전기 없이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사정을 알게 된 지역 발전사에서 당시 마을에 사람이 살던 3개 가구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제공해줬지만 전력량이 적어 전구 몇개만 간신히 켜고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마저도 비가 오면 전기가 나가버렸다.


전기 없는 삶을 마을 밖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낭만'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승구씨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다. 특히 요즘과 같은 폭염에도 냉방장치를 쓸 수 없으니 쏟아지는 더위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기자가 처음 마을에 도착한 시점은 3일 오후 4시쯤이라 하루 중 가장 더울 때는 지났지만 승구씨 집 외벽에 설치된 온도계는 여전히 30도를 훌쩍 넘는 온도를 가리켰다. 따로 더위를 달랠 방법이 없으니 승구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마당 한쪽에 물을 모아둔 대야로 가서 샤워를 했다. 사방이 다 뚫린 마당이었지만 누구 하나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냇가에서 퍼 올린 물을 모아둔 이곳이 승구씨에게는 세면장이자 샤워장이고 개수대였다.

지난 4일 오후 국승구씨가 마당에서 물을 떠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국씨는 이곳에서 샤워를 했다. © 뉴스1

샤워를 하고난 직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승구씨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삼겹살과 김치를 제외한 반찬은 별다를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냉장고가 없으니 음식도 하루 이틀을 못 가고 쉬어버렸다. 반찬은 짜고 맵게 조리한 것들만 몇일 정도 먹을 수 있었고 국이나 찌개도 하루에 몇번씩 다시 끓여야 했다. 예전에는 동네 냇가에 반찬을 담가두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비가 잘 오지 않아 냇가도 종종 말라버리는 바람에 이것마저 힘들어졌다.
그나마 외부에서 손님이 온다고 도시에서 사는 승구씨의 아내가 작은 아이스박스에 이것저것 반찬들을 보내줘 평소보다 상에 오른 찬이 많았다. 식사 전 더위를 식히고 싶은 마음에 찬물 한잔이 간절했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승구씨가 주방 찬장에서 꺼내온 소주는 미지근했다. 소주 한병을 비우자 승구씨가 "맥주도 있어"라고 했지만 냉장고가 아닌 찬장에 놓여있는 맥주가 끌리지는 않았다.

첫날의 저녁 자리는 오후 8시30분쯤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평상에 앉은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끝났다. 승구씨는 기자와 함께 마을에 왔을 때처럼 땀에 젖은 옷을 훌렁 벗어버리고 샤워를 했다. 덩달아 기자도 옷을 벗어 던지고 마당 한가운데서 몸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적이 없는 산골에는 지켜보는 이도 없고 풀벌레 소리만 요란했다.

지난 4일 오전 밤목마을 국승구씨의 집으로 산을 넘어온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2021.8.5/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고향 지키고 싶어 불편해도 견뎌
열대야의 잠못이루는 밤을 예상하고 충전식 미니선풍기를 한대 가지고 갔지만 산속의 밤은 그리 덥지는 않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냉기에 오히려 새벽에는 조금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침이 되고 동네 뒷산으로 해가 떠오르자 피부가 아플 정도의 햇살이 쏟아졌다.

승구씨는 아침 식사를 일찍 마치고 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집에서 마을 뒤편에 있는 787m 높이의 '성봉'까지 승구씨는 낫 하나를 손에 들고 길을 나섰다. 밤목마을을 둘러싼 성봉과 장군봉은 주화산에서 대둔산과 계룡산을 거처 부소산까지 이어지는 '금남정맥'에 포함돼 봄·가을이면 등산객이 많이 찾았다.

종종 등산객들이 길을 잃고 조난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해서 승구씨는 직접 등산로를 정비했다. 여름에는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 주민들이 아니면 등산로를 정비할 사람이 없었다. 등산로 중간에는 승구씨의 남동생이 '전기없는 밤목마을'이라고 써붙인 팻말이 나무에 붙어 있었다. 승구씨는 어렸을 적 마을 주민들이 등산로 주변에서 화전을 일구며 수확한 작물을 산 너머까지 짊어지고 가 팔곤 했다며 끈질기게 삶을 이어온 가족의 역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완주군에는 폭염특보가 내려졌지만 산속은 오히려 시원했다. 3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마을로 내려오니 달아오는 열기에 겁이 났다. 온도계의 빨간 선의 끝은 36도를 넘겼다.

지난 4일 오후 국승구씨의 집에 설치된 온도계. 기온이 36도까지 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2021.8.5/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승구씨가 이런 오지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유는 이곳이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외지에서 살았던 승구씨는 5년 전에 퇴직한 이후 전주 시내에 있는 집과 밤목마을의 고향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그는 "나 아니었으면 동네가 없어졌다고 봐야지. 수구초심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향해 죽는다고, 내 고향이 없어지는 것은 안 되것더라고. '고향을 지켜야 겠다' 생각을 했지. 특별한 이유는 없어도 그래도 고향이 좋지, 고향이 없어졌다고 하면 가고 싶어도 못 가잔혀"라고 말했다.

"내가 없었으면 진즉이 마을이 없어져 버렸을겨"라는 말처럼 승구씨는 지난 세월 동안 고향 마을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도로와 전기, 상수도 설치를 위해 꾸준히 민원을 넣었다. 이런 노력에 마을 상황이 조금은 개선되기는 했지만 그의 숙원 사업인 전기는 아직도 도입이 요원하다.

마을 인근의 땅을 한 사업가가 사들였는데 마을 개발에 동의를 얻지 못해 전기 도입을 위한 전제 조건인 도로 건설이 되지 못했다는 게 승구씨의 주장이다. 도로가 생기지 못하니 전신주를 세울 수 없었고 전기를 끌어 올 수 없게됐다.

주민들은 전기를 놓을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해 달라고 여러차례 민원을 넣었으나 번번히 실패하면서 밤목마을은 4차산업혁명의 시기에도 '전기없는 마을'로 남았다. 승구씨는 "지자체가 나서면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고 예산도 얼마 들지 않는 일인데 관심들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오후 밤목마을 뒤편 등산로에 '전기없는 마을 밤목리'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2021.8.5/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작은 에어컨 하나 놓고 싶은 바람…지속적으로 관심 가져 주길

그래도 승구씨는 마을에 전기를 들여놓기 위해 올해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직접 보도자료를 만들어 도청 기자실을 찾아가기도 했고 내년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민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승구씨의 이런 노력이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앞서 두세훈 전북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라북도 에너지 미공급 주민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지난 5월 도의회를 통과하면서 밤목마을 같이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에 대해 지자체가 지원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됐다. 조례가 시행되면 에너지 미공급 지역에 태양광발전기 및 가솔린 자가발전기가 지원될 예정이다.

또 승구씨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고 연락해온 기자들을 통해 마을과 관련한 보도가 전국적으로 송출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승구씨는 이런 관심이 계속되야지 현실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며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의지를 전했다.

전기가 들어온다면 무엇을 먼저 하고 싶냐는 질문에 승구씨는 "조례가 있으니까 5kw급 태양광이라도 들어오면 방안에 작은 에어컨이라도 둬야지"라고 말했다. 에어컨을 둘 수 있으면 집을 리모델링해서 두칸인 방도 하나로 합치고 주방도 현대식으로 바꿔서 도시에 사는 아내와 같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싶다는 것이 승구씨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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