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3사가 자율운항 선박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HD현대 아비커스가 하이나스 2.0을 탑재한 대형상선. /사진=HD현대
자율운항 선박이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 조선사들이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국은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출발이 늦어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선박 생산공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 조선사들은 자율운항 선박 실증은 물론 해킹에 대비한 보안 대책 마련에도 주력하며 초격차 확보에 나서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자율운항솔루션을 비롯해 자동 접안 시스템, 증강현실 기반 내비게이션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자율운항 선박은 기존 선박에 정보통신(ICT), 센서, 스마트기술 등을 융합해 시스템이 배를 제어하고 운항하도록 하는 선박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센서 등 모든 디지털 핵심기술을 융합해 선원 없이 스스로 최적 항로를 설정하고 항해할 수 있는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시스템은 ▲선원 의사결정 지원(1단계) ▲선원 승선 원격제어(2단계) ▲선원 미승선 원격제어와 기관 자동화(3단계) ▲완전 무인 자율운항(4단계) 등 4가지로 분류된다.

국내 시장은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율운행 전문 회사인 아비커스(Avikus)가 선두하고 있다. 아비커스는 이미 완전 자율운항 기술을 보유했으며 세계 최초로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중공업은 오는 8월부터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선 23척에 대형선박용 자율운항 솔루션인 '하이나스(HiNAS) 2.0'을 탑재할 예정이다.

하이나스 2.0은 딥러닝 기반의 상황 인지 및 판단을 통해 속도제어와 충돌 회피 등 다양한 돌발상황에 선박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축적된 운항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운항 경로를 생성하고 선박이 자율적으로 엔진 출력을 제어해 연료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실증을 통해 기술력 확충에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1월 자율운항 시험선 단비(DAN-V)를 건조하고 서해 제부도 인근 해역에서 해상시험을 진행했다. 삼성중공업도 같은 달 9200톤(t)급 대형선박에 자체 개발한 원격자율운항 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적용하고 서해에서 출발해 동해까지 이동하는 자율운항 연안 실증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자율운항 전용 테스트 선박인 단비. /사진=대우조선해양
자율운항 선박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위한 사이버 보안 솔루션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선박의 디지털·자동화가 가속화되면서 항해 정보, 연료 소모량, 기기 작동 상태 등 중요한 운항 정보가 노출될 위험도 증가하고 있어서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 미국선급(ABS)을 시작으로 영국(LR), 노르웨이(DNV), 한국(KR), 프랑스(BV) 등에서 사이버 보안 인증을 획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24년부터 적용될 국제선급연합회 IACS의 사이버 보안규정 의무 적용에 대비해 디에스랩컴퍼니와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조선업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사이버 보안솔루션을 개발했다.

문제는 자율운항선박 기술과 관련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자율운항선박의 정의와 임시항해기준 근거, 상용화 전제인 운항구역, 안전기준 등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이로 인해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목포 해안에서 실증을 진행하기 위해 안전운항 가이드 라인을 자체 수립하고 해양수산부로부터 인증받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자율운항 혁신과 운영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발의된 '자율운항선박개발및상용화촉진에관한 법률'(자율운항선박 촉진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자율운항선박 촉진법을 각각 발의했다. 발의안에는 자율운항선박과 자율운항시스템, 자율운항 지능화 시스템, 원격운항센터 및 원격운항자 등 자율운항선박에 관한 정의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임정빈 한국해양대 해사인공지능·보안학부장은 "국내 자율운항 선박 기술은 세계 평균과 동등하거나 앞서는 수준까지 발전했다"면서 "자율운항 선박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이버 보안 등이 융합된 최첨단 사업이고 한국이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경쟁력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자율운항선박 촉진법 발의에 대해선 "고가의 선박을 실험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어렵기 때문에 법령을 통해 실험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다"라며 "자율운항 선박 시장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달라 일관적인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