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다면, 각인 서비스를 해 드릴 수 있어요." 여성 점원 둘 중 한 명이 내게 안내를 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은 벌써 작업을 준비중이었다. 나름 비싼 노트에 새길 문구라니 돈을 주고 단어들을 사는 심정으로 잠시 고심했다.
'일단 이름이 들어가야 하겠고(내 이름은 소중하니까!), 그 다음엔……' '잠시'가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집중한 끝에 문구 하나를 더 생각해냈다. "이름 아래 'Joie de vivre(주아 드 비브흐)'도 함께 새겨 주세요. 이름 위엔 이 '별'이랑 '하트' 모양도 찍어주시고요." 점원 둘 중 한 명은 'Joie de vivre'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모를 수 있었다. 이건 프랑스어니까. 하지만 다른 점원이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Joy of living!"이라고 흐뭇하게 되받으면서. 그래, 영어로 바꾸면 그랬다. 삶의 기쁨. 환희!
내 프랑스어 실력은 아주 낮춰 말하면 단어를 조금 아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관용적인 이 표현을 알게 된 후로 늘 뿌듯했다. "주아 드 비브흐!" 라고 소리내어 읊조리면 마치 내 삶의 방향키를 '기쁨'과 '환희' 쪽으로 돌려 세우는 듯한 말. 그렇게 나는 런던의 한 노트 가게에서 낯선 영국인 둘에게 은연중에, 사실은 내 궁극의 꿈을 말해버렸다. 삶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느끼며 살고 싶고 언젠가는 별처럼 빛나고 싶고 오래도록 열정을 잃지 않는 뜨거운 심장을 원하고 있음을 말이다.
런던에서 돌아온 뒤 직장을 2년쯤 더 다닌 후 퇴사했다. 내 삶의 기쁨이,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를 새롭게 탐색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의 방향키를 천천히 주의 깊게 조종한 결과였다. 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만들고 말을 해서 영상을 만드는 걸로 새로운 열정에 살포시 불을 지폈다. 과감하게 '자기 계발의 여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194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가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얻은 해방감으로 써내려간 '지상의 양식'을 읽었다. "힘들게 일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그는 "일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곧 그 일이 제게 어울린다는 표적"이라고 말했다. 기쁨을 꿈으로 삼는다면 제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상의 나'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정의 힘듦까지도 기쁘게 느껴지는 길을 걸어보자. 여러분, Way to go!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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