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업계 불황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과 이란 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며 제조 원가 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내 공장 모습. /사진제공=여수시청
석유화학 업계 경영상황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 우려가 고조되며 국제 유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지만 에틸렌 수요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부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통한 업황 회복 기대도 끝없는 지연 속에 흐려지고 있다.
24일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오는 26일(이하 현지 시각) 예정된 미국과의 핵 협상을 앞두고 합의안을 마련하면서도 미국의 우라늄 농축 활동 전면 중단 요구에 대해선 거절 의사를 밝혀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핵 프로그램 포기 여부를 15일 이내에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항공모함 2척을 포함한 대규모 군 자산을 중동에 배치해 압박을 최고 수위로 끌어올렸다.

석화 기업들은 현 국제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쟁 발발 시 국제 유가가 올라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쟁 가능성이 커지자 국제 유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 지표로 불리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과 브렌트유 선물은 각각 지난 20일(현지 시각) 기준 66.48달러, 71.30달러로 6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이란이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가 최고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5분에 1이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70%에 달하며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제 유가 상승은 물론 원유 수급 차질과 운임비 상승 등이 겹치며 원가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 가격도 함께 오른다. 국내 석화 기업들은 나프타를 NCC(나프타분해설비)에 투입해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나프타 가격 상승은 원가 부담으로 이어지기에 생산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하지만 여의치 않다. 중국발 저가 공세로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요 회복도 더디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들의 마진 축소로 이어진다.

수익성 지표로 불리는 에틸렌 스프레드는 5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으로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20일 에틸렌 스프레드는 5년 내 최저수준인 톤(t)당 64달러를 기록했다. 업계는 통상 에틸렌 스프레드의 손익분기점을 톤당 250달러로 보고 있는데 이를 큰 폭으로 하회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쟁 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이 커지며 국제유가도 오름 폭을 키우고 있다. 그림은 호르무즈 해협 위치도. /그래픽=뉴시스
정부 지원 제공 시기도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1월 발표 예정이었던 업계 1호 사업재편안인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 기업결합 심사 결과 발표를 이달 말로 미뤘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8월 장기 불황에 빠진 석화 업계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량 최대 370만t을 감축하고 고부가가치 사업 중심 포트폴리오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업들도 정부 방침에 맞춰 지난해 12월 19일까지 1차 사업재편안을 제출했다. 업계 1호 사업재편안 결과를 토대로 다른 기업들도 최종 사업재편안을 제출할 방침이었지만 정부 발표가 늦어지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관측된다.


1분기 내 제공될 예정이었던 금융·세제·연구개발(R&D)·규제 완화 등 맞춤형 지원책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재편안 심사 결과 발표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하는데 이달 말로 미뤄지며 시간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나프타 가격과 물류비 상승이 불가피해 마진 방어가 쉽진 않겠지만 당장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