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광주일고와 배재고 야구부원들이 함께 오월 영령에 묵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러분이 사는 지역, 학교, 혹은 가정에서 증오를 목격한 적이 있나요? 어떤 모습이었어요?"
"그 증오는 무엇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이 그 친구의 입장이라면, 증오를 예방하거나 증오에 맞서기 위해 이야기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미국 USC 쇼아 재단이 중·고교생들을 상대로 '우리는 왜 증오하는가'란 주제의 토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던지는 질문들이다. USC 쇼아 재단은 1994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설립한 국제 연구기관이다. 이곳에선 학생들을 상대로 '증오 극복 교육'을 한다. 내가 속한 집단은 옹호하고, 타인과 외부집단은 적대시하는 '부족주의(Tribalism)'를 극복하기 위해 '증오의 생물학(Biology of hate)', '증오의 기원(Origin of hate)'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 뒤 학생들 스스로 '우리의 이야기는 증오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를 도출하도록 교육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증오와 혐오가 넘쳐난다. 정치권은 그 증오와 혐오를 진영 결집의 자양분으로 활용한다. 그렇게 사회적 문제가 이념 갈등으로 증폭되면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또 다른 증오와 혐오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이 좌우 진영 갈등으로 격화되면서 배재고의 조롱성 응원 구호 사태 역시 일파만파 커졌다. 혐오와 조롱의 진원지로 극우 커뮤니티가 지목받자 한 아이돌의 '무섭노' 발언까지 정치적 검열 대상에 올랐다. 이런 공방과 대립 속에서 정작 놀이 문화처럼 일상화된 '혐오 표현'을 어떻게 바로 잡을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로 잡는 것으로부터 '갈등 증폭 사회'의 뫼비우스 띠를 끊어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학생은 원하는데 교사는 부담스런 '혐오 극복 교육', 그 대안은?

다시 미국 USC 쇼아 재단의 교육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선 '증언으로 가르치기(Teaching with testimony)'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홀로코스트와 난징대학살, 르완다대학살 등 각종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한 생존자나 목격자들의 증언을 학생들에게 직접 들려주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이 재단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언 5만9000여건이 채집돼 있다. 학생들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극우 인종주의자인 '스킨헤드' 집단과 어울리게 된 한 남성이 유대인과 흑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게 된 과정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USC 쇼아 재단이 디스커버리 에듀케이션과 공동으로 운영 중인 '증언으로 가르치기(Teaching with Testimony)' 교육 프로그램 홈페이지. 증언(Testimonies) 페이지에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영상이 담겨있다. 1994년 르완다 투치족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아 늪지에 숨어 지내다 먼 친척과 이름 모를 선의의 사람들의 도움으로 청소년기를 견뎌낸 엠마누엘 무힌다(1985년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를 떠나 가짜 신분으로 이탈리아에 피신해야 했던 에스더 벰(1930년생) 등의 증언이 담겼다. 재단은 5만9000여건이 넘는 집단 학살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 캡쳐=USC 쇼아 재단 홈페이지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강남진 박사(전남대 역사교육 전공)는 "'증언 교육'은 학생들의 역사적 사고를 촉진하고, 다원적 관점을 존중하는 시민성을 함양할 수 있어 교육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송현정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육 현장에서 '다름을 존중하자'는 식의 추상적 인권교육을 넘어 실제로 혐오 표현이 누구를 겨냥하고, 어떤 편견과 차별의 역사를 재생하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혐오 표현의 일상화' 문제를 극복하려면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2~6일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간 학생들의 발언이나 과제물, 발표 등에서 혐오·조롱·역사왜곡 표현을 접했다는 교사가 89.3%에 달했다. 하지만 대다수 교사가 교육 지도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 '학부모의 민원 우려', '온라인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의 반발'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반면 전교조가 같은 시기 청소년 1636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혐오·조롱·역사왜곡 표현 등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는 것', '실제 사례를 놓고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는 수업', '학교의 분명한 조치' 등을 꼽았다. 학생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배우고 싶은데, 정작 교사들은 해당 교육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2~6일 전국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중 '혐오 표현 등을 교육적으로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한 교사들의 답변(중복 응답) /그래픽 제공=전교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2~6일 전국 청소년 16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중 '혐오 표현 등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청소년들의 답변(중복 응답) /그래픽 제공=전교조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직접 역사적 사건이나 혐오 표현의 기원 등을 설명하기보다 다양한 증언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증언 교육'이 유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학생들이 사회적 참사의 생존자나 희생자 유가족, 혐오 표현의 타깃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증언을 듣거나 직접 인터뷰를 통해 타인을 향한 공감 능력뿐 아니라 증오나 혐오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까지 향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교육 현장에선 아직 증언 기반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5·18 민주화운동 역사 교육을 두고도 정치 성향을 오해받을 가능성이나 주위 시선을 우려해 생존자나 유가족의 증언 청취 교육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해외에선 '증언 교육'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평화기억박물관은 시민과 학생들에게 매일 5차례 원폭 생존자 증언을 청취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미국 9·11메모리얼박물관은 9·11 테러 희생자 가족이나 생존자, 구조대원 등 참사 관계자들의 증언 녹화본을 디지털 학습 자료로 배포하고 있다. 영국의 홀로코스트 교육 재단은 교사들이 생존자 증언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도록 교사를 위한 별도의 지침서와 학년별 교육자료를 제공한다.

교묘한 '혐오 표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혐오 표현의 일상화'를 막기 위해선 '체계적 교육'과 함께 '단계적 조치'가 필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선 혐오와 조롱, 차별 표현이 짧은 '밈' 형태로 대량 유포되고 있다. 특히 혐오와 조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하게 일상어로 바꿔 유통된다. 한 아이돌의 '무섭노'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일부 극우 커뮤니티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기 위해 모든 말끝에 '~노'를 붙이면서다. '무섭노' 자체는 그저 사투리지만, 극우 커뮤니티에선 조롱의 언어인 것이다. 교묘하게 일상어로 바꾼 혐오와 조롱의 표현은 유해성 콘텐츠로 걸러지지 않는다. 혐오와 조롱의 표현이 별다른 제약 없이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이유다. 그래서 필요한 게 '단계적 조치'다.

송현정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SNS에서는 혐오 표현 그 자체뿐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과 공유 구조가 해악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불법 표현은 법률에 따라 대응하되 형사처벌 수준에 이르지 않는 유해한 표현은 플랫폼 이용 규칙에 따라 경고, 추천 제한, 노출 축소, 반복 위반 계정 제재 등 단계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연구위원은 또 "플랫폼의 책임도 개별 게시물 삭제에 그치지 말고, 혐오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추천하거나 수익화하는 구조 자체를 바로 잡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다만 플랫폼이 사적 검열기관처럼 작동하지 않도록 삭제·제한 기준과 조치 이유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의신청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8월부터 EU 전역에서 시행 중인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법 콘텐츠 대응 의무뿐 아니라 알고리즘 위험 평가와 운영 투명성 의무를 함께 부과하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혐오 표현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것은 형사처벌을 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할 것인지 대립적 관점에서 논의가 진행됐기 때문"이라며 "혐오 표현의 해악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표현의 내용과 맥락 ▲대상 집단의 취약성 ▲발화자의 지위와 영향력 ▲반복성과 확산 범위 ▲실제 해악의 위험에 따라 면밀하게 대응 수단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