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산업 관련 노조들이 정부의 업계 지원 대책 수정을 요구하는 가운데 수익성 악화를 겪던 석화 기업들은 총파업 위험부담도 안게 됐다. 사진은 김선종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단상 앞)과 노조 관계자들 모습. /사진=최성원 기자
"석유화학 산업 불황이 장기화되며 여수·대산·울산 산단이 멈추고 있다. 산단 내 노동자들은 실직과 소득 절벽 두려움에 떨고 있고 화물 노동자들의 삶은 적자로 돌아섰다. 플랜트 건설 발주는 1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된 '석유화학산업 위기 극복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공동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민수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플랜트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업황 부진으로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석화 산업 위기는 중국발 저가 공세와 글로벌 경기 악화로 이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라며 "지금 와서 단기 이익만 바라본 기업과 이를 방관한 정부를 탓하진 않겠으나 지원책에 노동자와 지역 상인들이 포함돼 있지 않은 건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선종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부위원장은 "석화 산업단지가 멈추자 화물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며 "산단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매출은 54%에서 최대 80%까지 줄었고 중동 전쟁으로 기름값은 올라 당장 파산을 걱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책은 기업의 부담만 덜어주며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실질적인 고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화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들의 반발은 지난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이하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 감축 목표인 최대 370만톤(t)의 나프타를 감축하려면 설비 통폐합이 동반돼야 하고 인력 조정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조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총파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조 개편 등 경영상 판단은 단체교섭에 해당되지 않았으나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등의 사안도 노동쟁의 대상이 됐다.


석화 업계는 원재료 값 상승과 수급 불안으로 설비 가동률을 낮춘 상황에서 총파업 리스크까지 겹쳤다. 업계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자 제조원가 상승 압박을 받고 있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미터톤(MT)당 1009달러로 전쟁 직전인 지난달 27일(640달러)보다 57.7% 상승했다.

핵심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t당 -149달러를 기록했다. 석화 기업들의 주력 상품인 에틸렌도 MT당 860달러로 지난달 27일(680달러) 대비 26.5% 올랐지만 나프타 가격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결국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값으로 업계에선 손익분기점을 t당 250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원료 수급도 문제다. 석화 업체들은 국내 정유사 공급 나프타와 수입 나프타를 절반가량씩 사용하는데 수입 물량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석화 기업들은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에틸렌 생산능력 국내 1, 2위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일부 고객사에 '불가항력' 발생 가능성을 고지했고 앞서 여천NCC도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사실상 공급 중단에 들어갔다. 불가항력은 기업이나 계약 당사자가 전쟁·천재지변·파업 등 통제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알리는 것을 말한다.

한편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등 3개 노조는 공동 입장문을 통해 ▲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 고용 유지 의무화 ▲지하 배관 교체 등 노후 산단 정비사업으로 일자리 창출 ▲석화 산단이 위치한 곳에 특별재난지역 선포 및 노동자와 지역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 ▲석화 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 훈련센터 설치 등을 제안했다. 오는 5월 16일부턴 전국 단위 시위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