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당신을 능멸하고 싶어하며 배우자 앞에서 망신시키려 합니다." '역발상 투자의 대가' 켄 피셔가 지난해 말 공식채널에 올린 인터뷰 영상에서 한 말이다.

그는 주식시장에 대해 능멸의 대가(The Great Humiliator)라는 평소 소신을 밝히며 "영적인 존재와 같다"고 했다. 경고도 잊지 않았다. "당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할수록 시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정교하게 짜여집니다"


자산 변동성은 필연적이지만 극복하기 말처럼 쉽지 않다. 최근 기자가 만난 주식투자자들은 미국과 이란의 확전 등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시장이 요동치자 "마침 어제 샀는데 급락하고 팔았는데 오른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약속이나 한 듯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를 조롱한다"는 한탄이다.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쓰는 제약·바이오 업종은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코스닥 시총 30위권 내에 절반 이상이 포진한 주도주들의 급박한 등락과 함께 시총 순위가 뒤바뀌는 대혼란을 겪고 있다. 올해 시총 1위 알테오젠에 이어 삼천당제약이 그 바통을 이어받는 듯하다.

지난달 3개월여 만에 5배 가까이 급등했던 환희도 잠시, 이후 수조원의 시총이 증발하며 장부상 수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여전히 냉담하다. 미래가치의 핵심인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과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등에 대한 기대감이 가격에 과도하게 선반영된 탓이다.


여기서 초보 투자자들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다. 주가는 호재나 악재 그 자체보다 그 재료가 가격에 얼마나 녹아 있느냐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눈부신 호재라도 이미 충분히 반영됐다면 발표와 동시에 투자심리는 얼어붙고 변동성만 키울 수 있다.

능멸의 대가는 무지한 자보다 자신의 지능을 과신하는 투자자를 먼저 사냥한다. 투자는 인내의 영역에서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군중심리를 거스르는 역발상 투자를 주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중동 사태 우려가 선반영돼 업종이나 종목별 차별화 흐름이 심화되고 특정 제약·바이오주가 요동칠 때 시장이 나를 유혹하는 건 아닌지 차갑게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자에게 달콤한 수익을 맛보게 해 깊숙이 유인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그 수익을 처참히 앗아가는 시장의 특성을 역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살아 움직이는 시장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깊이 있는 분석과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제약·바이오주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가격수준)이나 수익성, 건전성 심지어 R&D(연구·개발) 현황, 주요 경제지표 등을 전혀 모른 채 돈을 묻는 것은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확신을 얻었다면 그다음은 시간의 힘을 빌려보자. 시장은 투자자를 조롱하지만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고ROE(자기자본이익률), 낮은 부채비율을 갖춘 바이오주라면 일시적 풍파를 견뎌낼 수도 있다.

신약 등 기술개발에 통상 10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중장기 관점의 투자전략도 필요하다. 워런 버핏이 부의 비결로 꼽은 복리효과도 기대된다. 원금과 수익에 배당금까지 다시 투자해 투자금을 불리는 소위 복리의마법은 장기투자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쌈짓돈을 날릴 판인데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격언은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도 돈을 잃지 않으려면 시장을 이긴 대가들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씨앗을 심었다면 그 성장을 믿고 묻어둔 채 잠자리에 드는 배짱이 필요하다. 시장의 능멸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는 차가운 분석과 뜨거운 인내다.
송정훈 미래산업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