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투자한 자본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면 배당 확대는 당연하다"(주주)
"현재 성과에 취한 지나친 성과급과 배당 확대보다는 투자 재원 축적인 우선이다"(기업)
반도체를 필두로 조선, 방산 등 한국 제조업이 역대급 초호황을 구가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빈번하게 마주치는 충돌의 모습들이다. 기업과 노조뿐 아니라 노조와 주주, 심지어 노조와 노조가 극한의 대립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초호황기에 이처럼 터저나오는 갈등과 분열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법과 권력을 가진 정부에 앞서 시장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 시장을 넘어 싱크탱크, 학계, 언론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시장이 설득과 논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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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만 일등공신 아니다… 시장, 설득과 논리로 합리성 정당성 확보하는 구심점 역할━
삼성전자 노조의 오는 21일 총파업이 딱 일주일 남은 14일. 삼성전자는 노조에 성과급 갈등 해결을 위한 추가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노조는 "성과급 제도화와 투명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날 저녁 SNS를 통해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의 거의 유일한 핵심 전략자산이며, 대한민국의 이매를 끌고 갈 독보적인 성장동력"이라며 "산업부 장관으로서는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 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업에 따른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가진 법과 권력을 기꺼이 사용하겠다는 통첩이다.
삼성전자 노사가 계속 타협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앞으로 더욱 빈발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종하는 시장의 역할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삼성전자·현대차 등 여러 기업에서 발생한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을 단순히 노사 대립이나 배당 논쟁으로만 봐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초호황기에는 모두가 자신의 기여를 근거로 더 많은 몫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를 사회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시장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삼성전자 노사의 대립을 '감정싸움'으로 규정했다. 송 교수는 "대중적 시각에서 현재 삼성전자 노조 요구 규모는 지나치고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이라며 "반대로 왜 그런 요구가 나왔고 어느 수준이 적정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역시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어떤 기업도 이 정도 규모의 분기 영업이익을 낸 적이 없었다"며 "이 시기 노동의 기여와 적정 성과급 수준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하면 갈등도 완화될 수 있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시 "현재의 막대한 성과는 특정 집단 하나만의 공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진의 전략과 주주의 투자, 노동자의 노력, 시장의 감시 기능이 함께 작동한 결과"라며 "지나친 성과급 요구는 미래 투자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싱크탱크와 학계, 기관투자가, 연기금,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업계와 노동계, 정부가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때 사회 전체의 장기적 균형을 고민하고 설득 논리를 제시할 구심점으로 시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초호황기에는 성과 배분과 투자 방향, 산업 지원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단순한 이해 충돌을 넘어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설득과 논리로 합리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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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지 마라… 지나친 배당 요구 자제 등 지혜 필요━
45조원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에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본시장에서도 지나친 배당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기업이 주주의 투자를 받아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면 주주에게 합당한 배당금을 보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과급 논란이 일어나자 삼성전자 투자자들도 배당을 확대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결산 기준 삼성전자의 총 주주배당금은 역대 최대인 11조1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의 4분의1 수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업황이 항상 상승만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조선, 방산 모두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인 만큼 불황 국면을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투자재원과 현금확보가 중요하다. 초과이익을 단기 성과급과 배당에 모두 사용하기보다는 미래 기술 투자와 장기 경쟁력에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경기대응완충자본(CCyB·Countercyclical Capital Buffer) 개념을 제조업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기업이 미래 경쟁력을 명분으로 무리한 설비투자 경쟁에 나설 경우 시장이 주가를 통해 견제함으로써 공급과잉에 따른 조기 불황도 막아야 한다. 과거 글로벌 메모리 업계와 조선업 모두 공격적인 증설 이후 공급과잉과 장기 불황을 반복해왔다.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초호황은 단순한 경기 상승 국면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자본시장, 노동시장 전체가 동시에 재편되는 역사적 변화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이런 초호황을 지속시키는 힘은 결국 설득과 논리를 통한 합리성과 정당성으로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시장의 지혜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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