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유용원 국민의힘 원내부대표는 최근 중앙선관위에 감사관을 두고 매년 감사보고서를 정기국회 개회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선관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선관위원장 추천위원회 구성과 추천 절차 제도화, 감사원 감사 제도 정비, 시·도 및 시·군·구 선관위 운영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여야가 선관위 개혁 입법에 나선 것은 이번 부실선거가 단순한 현장 실무 착오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투표지가 바구니나 쇼핑백 등에 담겨 옮겨지며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6·3 지방선거에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선관위의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관위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비상근 중심의 책임 체계다. 중앙선관위는 위원 9명 가운데 상임위원이 1명뿐이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관행적으로 현직 대법관이 맡아 왔다. 위원장이 대법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국 단위 선거관리 조직을 상시적으로 지휘·감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역 선관위도 비슷한 구조다. 시·도 및 구·시·군 선거관리위원장을 현직 법관이 비상근으로 맡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그러다보니 실제 선거관리 실무는 사무처 직원들이 담당하고 위원장은 선거 당일 보고를 받고 결과를 확인·공표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역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한 현직 부장판사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판사가 선관위원장을 맡더라도 실제 선거관리 실무를 직접 지휘하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40만원 정도의 수당을 받고 한 달에 한두 차례 회의에 참석해 사무처가 보고한 안건을 확인하고 서명하는 정도이고 선거 당일에도 결과를 확인·공표하는 역할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선관위 공무국외출장보고 내역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석 달 동안 19건의 국외 출장을 진행했다. 개표 투명성 강화와 사전투표 운영 방식 개선 등이 주된 출장 목적이었다. 이 가운데 스위스·스페인 등 유럽 출장이 11건으로 가장 많았다. 앞서 선관위 직원들이 총선을 앞두고 몰디브, 방콕, 코타키나발루 등으로 장기 출장을 다녀온 사실도 알려져 논란이 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태는 선관위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나태하게 운영돼 온 문제가 누적돼 터진 것"이라며 "인사·채용 비리와 선거철 휴직 문제 등을 막기 위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첫째, 중앙선관위의 상임위원 수를 늘려 선관위의 책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제도상 1명인 상임위원의 수를 늘리고 대법관이 겸임하는 중앙선관위원장 역시 상임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7명 등 11명 체제로 운영되는 것처럼 선관위도 상근 책임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지역 선관위원장을 맡는 현직 법관들이 상징적 책임자에 머무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직 부장판사는 시대에 "현직 법관을 계속 지역 선관위원장으로 활용하려면 단순 명예직처럼 둘 것이 아니라 선거 전후 일정 기간 선거관리 업무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도록 임기제 겸직이나 단기 파견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며 "그래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도 분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 사무처 조직의 폐쇄성을 완화하고 책임성을 높여 선관위의 도덕적 해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선거관리는 업무의 특수성이 강해 일반 행정기관처럼 순환보직이나 기관 간 인사 교류를 통해 폐쇄성을 낮추기 쉽지 않다. 따라서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 인선의 개방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사무총장 인선은 내부와 외부 모두에 열어둘 필요가 있다"며 "다만 사무총장 한 명을 외부에서 임명한다고 조직 문화가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닌 만큼 선관위 내부의 폐쇄성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해이와 제 식구 감싸기 문제를 막을 통제 시스템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 선관위에 대한 외부 감사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다만 이 방식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감사원의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직무감찰이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수행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 기관인 만큼 독립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직무감찰 대상으로 삼을 경우 선관위를 사실상 행정부 소속 기관처럼 다루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런 점에서 전면적인 선관위 개혁은 개헌 논의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이 헌재의 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상태인 만큼 보다 실질적인 외부 통제 장치를 마련하려면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국회 보고, 별도 감사기구 설치, 감사원의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분리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선관위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구체적 방식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민주당은 선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은 유지하되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의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관위 해체 수준의 개편까지 거론하며 보다 강한 외부 통제를 주장하고 있다. 개헌이 필요한 사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만큼 여야 합의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장 교수는 "단순히 헌법에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사할 수 있다고 적는 방식이 아니라 감사원 자체를 대통령 소속이 아닌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개편하는 방향의 개헌이 필요하다"며 "감사원이 독립기관이 된다면 선관위 직무감찰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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