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중동산 원유 가격 지표인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전날 기준 배럴당 71.7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3월23일 169.75달러까지 치솟았던 기름값은 종전 협상 가시화로 하향 안정 흐름을 보이며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름값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6월 4주 기준 싱가포르 국제 휘발유(92RON) 가격은 배럴당 103.17달러로, 2월 4주(78.84달러)보다 24.33달러 높다. 초저유황경유 가격 역시 현재 배럴당 113.29달러로 전쟁 직전(92.47달러)보다 20.82달러 올랐다.
중동 지역 원유·석유제품 생산과 수출,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운항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게 국제유가와 국제 석유제품 가격 간의 괴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 가격뿐 아니라 정제설비 가동률과 제품별 수급, 재고 수준 등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에 전쟁 위험 보험료와 원유 확보 프리미엄, 유조선 운임 등 조달 부대비용도 평시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원유 도입 및 제품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평상시에는 배럴당 0.5달러 정도였던 리스크 프리미엄이 아직도 20달러를 넘어가고 있다"며 "국제유가가 75달러라고 하면 실제로 우리가 도입하는 가격은 95달러 정도로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해외 주요국 대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평가다. 산업부가 23일 국무회의에서 보고한 자료를 보면 지난 21일 기준 국내 휘발유 가격은 중동전쟁 발발 직전인 2월27일보다 18.7% 올랐고, 경유는 25.4%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휘발유 가격이 32.1%, 경유가 34.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적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국민 세금도 그렇고 관련 업계에서 많이 도와줘 위기 상황에 비해서는 국내 가격이 많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큰 부담인 만큼 추가로 더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기름값 상승폭이 제한된 배경에는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가 꼽힌다. 국제유가와 환율, 운송비 상승에 따라 일정 수준의 가격 인상은 불가피했지만 단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급격한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완충 작용을 했다는 진단이다.
국내 정유업계의 안정적 공급 노력도 가격 안정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중동전쟁으로 원유 도입 여건이 악화한 상황에서도 원유 조달처와 선박 운용 계획을 조정하고, 재고와 정제설비를 관리하며 국내 석유제품 공급을 이어왔다. 특히 해당 과정에서 뉴질랜드 정부가 한국 측에 석유제품의 안정적인 공급 협조를 요청하는 등 해외에서도 이른바 'K-정유'의 정제 능력과 수출 인프라가 주목받기도 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물가 안정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방침이다. 최근에는 최고가격 상한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을 고려해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가격 부담은 줄이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좀 더 과감하게 최고가격제를 유지하고 최고가격도 낮춰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문했다.
정유업계 역시 힘을 보태고 있다. 대표적으로 SK에너지는 SK주유소 대상 리터(ℓ)당 50원의 차량용 경유 가격 할인 지원 정책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사후정산 방식을 폐지하고, 주 단위 공급가격을 사전에 확정해 안내하는 제도도 추진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름값 상승 폭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건 정부의 최고가격제와 수급 안정 조치, 정유업계의 안정적인 공급과 정책 협조, 주유소의 자율적 가격 인하 노력 등이 맞물린 사례"라며 "일시적 위기 대응을 넘어 정유사와 주유소 간 거래구조 개선을 비롯해 국내 석유시장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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