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7일 전분당 4사에 총 7475억78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등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 5개월 동안 전분·전분당 제품의 판매가격 인상·인하 폭과 시기 등을 사전에 합의하고 이를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징금은 지난 5월 제분업체 7개사의 밀가루 담합 사건(6710억원)을 넘어선 공정위 담합 사건 사상 최대 규모다. 업체별로는 대상이 2341억41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양사 2103억4000만원 ▲사조CPK 2001억3200만원 ▲CJ제일제당 1029억6500만원 순이다.
전분당은 물엿과 액상과당, 포도당 등의 원료로 음료, 제과·제빵, 제면, 빙과, 맥주, 소스 등 식품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제지와 철강 등 일부 제조업에서도 원재료로 사용되는 만큼 가격 변동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공정위에 따르면 국내 B2B 시장에서 이들 4개사의 점유율은 전분 95.7%, 전분당 86.4%에 달한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총 13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과 인하 시기, 폭 등을 공동으로 결정했다. 원재료인 옥수수 가격이 상승할 때는 원가 부담을 거래처에 신속하게 전가하기 위해 공동으로 가격 인상을 추진했고, 반대로 옥수수 가격이 하락할 때는 가격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이익을 확보했다.
공정위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진 시기에도 담합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2021년부터 가공용 옥수수에 0% 할당관세를 적용했음에도 업체들은 경쟁 대신 공동으로 가격을 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쟁 여파로 국제 옥수수 가격이 급등하자 이들 업체는 판매가격을 담합 개시 시점인 2018년 5월 대비 최대 73%까지 인상했다.
담합은 가격 결정에 그치지 않고 실행과 이행 점검까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업체들은 가격 변경 시 거래처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상 근거와 공문 발송 시기까지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일부 사례에서 경쟁사 직원들이 상대 회사의 공문 발송 내용을 직접 확인하거나 우체국까지 동행하며 담합 이행 여부를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거래처별로는 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업체가 가격 협상을 주도하고 다른 업체들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목표가격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매출 규모는 막대하다. 공정위가 산정한 관련 매출은 약 6조2000억원에 달한다. 검찰이 기소 과정에서 적용한 규모는 10조1520억원으로, 검찰 기준 국내 식료품 담합 사건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과징금과 함께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전분사들은 담합 이전 경쟁 상태를 회복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재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은 밀가루 담합 사건과 인쇄용지 담합 사건 등에 이어 4번째다.
행정제재와 별도로 형사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오전 삼양사를 제외한 3개 법인과 임직원, 전분당협회장 등 총 25명에 대한 첫 공판 절차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앞서 검찰의 고발 요청에 따라 관련 법인과 임직원들을 고발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단순한 기업 제재를 넘어 식품 원재료 카르텔에 대한 공정위의 정면 대응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밀가루 담합 제재에 이어 전분당 담합까지 적발되면서 원재료 시장 전반에 대한 감시와 조사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하며 담합 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담합 이득을 훨씬 넘어서는 무거운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며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 담합 행위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라고 지적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장기간 지속된 가격담합을 엄중히 제재한 사건"이라며 "앞으로도 생활물가와 직결되는 분야의 담합행위에 대해 예외 없이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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