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0개 자산운용사 CEO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염윤경 기자
자산운용업계가 수탁자책임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려면 전담 조직과 전문인력 확충은 물론 우수 운용사에 대한 인센티브 등 제도적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율은 90%를 넘어섰지만 공시 내용과 주주권 행사 체계는 여전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
금융감독원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20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고 올해 의결권 행사 현황과 주주권 행사 체계 점검 결과를 공유했다. 현장에서는 의결권 공시 개선과 내부통제 강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질서 확립, 모험자본 공급 확대 등이 주요 화두로 올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투자자를 대신해 자산을 운용하는 청지기로서 신인 의무에 충실한 것이 운용사의 기본 책무"라며 "자산운용사 CEO들이 의결권 행사와 주주권 행사 체계를 직접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점검 결과 공·사모펀드 의결권 행사율은 2024년 79.6%에서 지난해 91.6%, 올해 91.8%로 상승했다.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도 같은 기간 5.2%에서 6.8%, 8.2%로 높아졌다.

다만 의결권 행사 양적 확대와 달리 공시 내용은 여전히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점검 대상 자산운용사 285개사 가운데 121개사(42.4%)는 전체 의결권 행사의 절반 이상에서 '주주총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거나 '주주권 침해가 없다'는 형식적인 사유를 반복해 기재했다.

이 원장은 이를 '복사·붙여넣기식 공시'라고 지적하며 "의결권 행사와 공시는 운용사가 피투자회사의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과 이행 결과를 투자자에게 보고하는 중요한 창구"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단순히 의결권 행사율과 반대율 등 수치만 평가하기보다 실제 의사결정 과정과 주주 활동의 질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운용사별 인력과 조직 규모에 차이가 있는 만큼 수탁자책임 이행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운용업계에서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위해 전담조직과 수탁자책임위원회, 전문인력 등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수탁자책임 활동이 우수한 운용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관련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은 "전담조직과 수탁자책임위원회 등 관련 체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내부 기준과 절차를 점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수탁자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회사는 그 노력에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의결권 행사율과 반대율뿐 아니라 운용사의 실질적인 주주권 행사 노력도 평가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금감원 점검에서는 삼성자산운용과 NH아문디자산운용, VIP자산운용이 모범 사례로 선정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교보악사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신영자산운용은 지난해에 이어 양호 평가를 받았고 한국투자신탁운용과 KB자산운용은 전년 대비 뚜렷한 개선을 이룬 운용사로 평가됐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 ETF 시장 경쟁 과열, 모험자본 공급 의무 등을 강조했다. /사진=염윤경 기자
이날 간담회에서는 ETF 시장 경쟁 관행도 언급됐다. 간담회에서는 경쟁사의 인기 상품과 유사한 상품을 잇달아 내놓는 운용사 간 무분별한 '상품 베끼기'를 업계 스스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유사한 ETF가 단기간에 쏟아질 경우 상품 차별성이 떨어지고 광고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투자자가 ETF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운용사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광고 제작과 자체 심의 단계에서 수익률과 위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원장은 "업계에 모범이 돼야 할 대형 운용사에서 거짓·과장광고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 점은 매우 아쉽다"며 운용업계에 자정 노력을 주문했다.

ETF 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 간 괴리율 관리 필요성도 논의됐다. 운용사와 유동성공급자(LP)인 증권사가 협력해 거래량이 적거나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적정 가격이 형성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특정 대형주와 레버리지 상품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황 회장은 "시장의 활력이 일시적인 열기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며 공모펀드와 ETF를 통해 형성되는 기관 자금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험자본 공급과 관련해서는 자산운용사의 기업 분석과 투자 역량을 활용해 유망기업과 산업에 자금을 적시에 공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국민성장펀드 등과 연계해 국내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자금을 공급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과 점검 결과를 토대로 7~8월 중 공·사모운용사의 의결권 행사·공시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설명회에서는 점검 기준과 미흡 사례, 모범 사례 등을 공유하고 운용사별 공시 및 주주권 행사 체계 개선을 유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