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건 경희대 정외과 교수
쿠팡이라는 기업 하나를 위해 미국 의회 공화당을 중심으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비판과 항의가 반복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트럼프 백악관 일부도 가세하는 모양새다. 3천7백만 명이 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고 그 책임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한 일종의 사건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애초의 탈팡 움직임도 조금씩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작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국이 매출의 90퍼센트 이상을 한국에서 올리는 기업을 위해 이토록 따지고 드는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한국의 통상 정책에 관해 미국 의회는 오래된 불신을 가지고 있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경선에 출마했던 게파트 하원 의원은 경선 초반에 "현대"라는 제목의 선거 동영상을 뿌렸다. 한 대당 1만 달러면 사는 크라이슬러 자동차가 한국으로 수출되면 4만 8천 달러짜리로 둔갑하고 이는 한국 정부의 규제와 세금 탓이라는 과장된 주장이었다. 미국 노동자들은 무죄요, 한국 정부만 유죄라는 1980년대식 미국 우선주의였다. 2024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이 12월에 NBC 방송과 가졌던 첫 인터뷰 초반에 갑자기 한국이 화제로 등장한다. 조던(Jordan) 의원으로부터 오하이오주 소재 월풀 세탁기 공장이 한국 기업의 덤핑 탓에 문을 닫게 생겼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산 세탁기에 최대 50퍼센트 관세를 부과해 미국 제조업을 살렸다는 전형적인 자기 자랑이 뒤따랐다. 한국 정부가 쿠팡에 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최근에 발간한 하원 법사위원회의 위원장이 조던 의원이다.

둘째, 미국 의회의 대중국 견제 분위기에 쿠팡이 올라탄 형국이다.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낸 공화당 연구위원회의 공개 서한을 보면 먼저 개인정보 유출을 민감도가 낮은 데이터 문제 정도로 규정한다. 쿠팡을 위협하면 한국 내 온라인 유통시장의 공백이 생길 것이고 결국 중국 기업들만 이득을 보게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중국 기업들은 중국 공산당과 가깝고 이는 역내 안보 위협까지 불러온다는 해석도 담고 있다. 쿠팡 사태는 대중국 견제 경쟁에 나선 미국 의원들이 활용하기 좋은 정치적 스토리인 셈이다. 레이건 시대 이후부터 자유무역 성향이 강했던 공화당은 트럼프 임기 중에 급속히 변하고 있다. 중국과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전면 폐기하자는 의원들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일 정도다. 보호무역을 선호하는 민주당과 보호무역으로 변신 중인 공화당의 묵인을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비교적 손쉽게 국제 통상 규범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셋째, 미국은 로비와 선거의 나라다. 잘 알려진 대로 합법적인 로비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쿠팡은 올해 상반기에만 237만 달러를 로비 비용으로 사용했다. 쿠팡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의원 중 하나는 아이사(Issa)라는 공화당 중진 의원이다. 과거에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법사위원회 등에 소속되어 있는 아이사 의원은 쿠팡의 기업 정치활동위원회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았다. 핵심 보좌관이 쿠팡 로비스트가 되었고 이미 선언한 대로 올해를 끝으로 의회에서 은퇴한다.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방문해서 면담한 후 의원실을 나서자마자 아이사 의원이 쿠팡을 차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곧바로 발표했던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 관료의 설명보다 미국 정치의 로비 자금과 인적 네트워크가 아이사 의원의 판단에 더 강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넷째, 현재까지 쿠팡 사태는 주로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이슈다. 개인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아이사 의원과 제도 차원에서 지원하는 조던 위원장 둘 다 공화당 소속이다. 공화당 연구위원회 명의의 항의 서한도 전부 54명 공화당 의원의 서명만 담고 있다. 민주당 의원으로 쿠팡을 거론한 경우는 워싱턴 주 출신 델베니(DelBene) 의원 정도다. 그나마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합의를 비판하면서 쿠팡을 다른 기업들과 함께 다룬 정도였다. 심지어 쿠팡 본사가 위치한 지역구를 대표하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 자야팔(Jayapal) 의원도 쿠팡을 공개적으로 적극 옹호한 사례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중국을 배척하고 기업에 친화적인 공화당에 주로 쿠팡의 로비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만약 민주당이 하원을 되찾아온다면 내년 1월 새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모든 위원장직과 의사일정을 장악하게 된다. 조직적인 의회 내 쿠팡 옹호가 계속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쿠팡 사태의 해결을 위한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 언론 등을 상대로 당당하고 차분하게 쿠팡 사태의 본질을 알리는 것이다. 누구를 상대로, 어떤 논리로, 언제 어떻게 설명할지는 한국의 대미 의회외교와 통상외교, 공공외교가 풀어야 할 과제다. 다만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정답이 곧 해법은 아닐 수도 있는 시대가 트럼프 시대다. 따라서 우선 쿠팡과 관련된 미국 내 작동방식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호들갑을 떨 일도 위축될 일도 아니다. 로비의 나라 미국에서는 그들만의 정치적 셈법과 생태계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상대해야 할 미국은 이제 하나가 아니다. 조선업과 반도체 협력을 원하는 동맹국 미국이 있는가 하면 의회 정치와 로비 자금, 선거와 양극화가 맞물려 돌아가는 미국만의 미국도 있다. 오히려 쿠팡 사태를 우리 초당파 외교의 계기로 삼아서 두 개의 미국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새로운 차원의 대미 전략을 짜야할 때다.
서정건 경희대 정외과 교수는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미국 의회와 외교정책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대표적인 미국 정치 전문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윌밍턴) 교수와 윌슨센터 풀브라이트 펠로우를 거쳤고, 한국정당학회 회장과 미국정치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