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규정 위반' 외에도 ▲피고인에 대한 재판권이 없을 때 ▲이미 공소를 제기한 사건을 다시 공소 제기할 때 ▲피해자 의사에 반해 공소 제기할 수 없는 사건(폭행, 명예훼손, 과실치상 등)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의사 표시할 때 법원은 공소 기각할 수 있다. 이런 4가지 사유는 사실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번 형소법에 2가지 사유를 추가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추가한 2가지 사유는 ▲중대한 위법 수사와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이다. '중대한', '현저한' 등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쟁점이다.
━
사법부도, 법무부도 부정적 의견 냈지만…━
개정 형소법의 국회 통과를 1주일 앞둔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기우종 법원행정처 차장은 공소 기각 사유를 추가하는 데 부정적 의견을 냈다. 기 차장은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남용해 피고인한테 불이익을 준 경우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이라는 표현으로 판례가 정립되어 있다"며 "현행 판례에 의해 계속 해석했기에 기본적으로 개정안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법에) 담으면 저희가 심리할 때마다 상당히 부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기 차장이 언급한 대법원 판례는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말한다. 검찰은 2010년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우성씨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를 수사한 뒤 가담 정도가 가볍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은 4년 뒤인 2014년 같은 혐의로 유씨를 기소했다. 그러자 대법원은 이미 기소유예 처분한 혐의를 검찰이 다시 기소한 것은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며 공소 기각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검사의 자의적 공소권 행사로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이 있을 때 공소를 기각할 수 있다는 법리가 세워졌다. 다만 기 차장은 이를 법률로 구체화하는 순간, 재판 때마다 피고인들이 검사의 자의적 공소권 행사를 주장하며 심리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도 같은 논리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이진수 법무부 차관은 지난달 15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에 나와 "개정안의 '중대한 위법 수사', '소추 재량권의 현저히 일탈'이라는 요건은 그 판단 기준과 범위가 법률상 제시되어 있지 않아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개정안의 불확정된 개념을 토대로 공소기각을 주장할 경우 실체적 진실에 관한 심리보다 절차적 공방을 과도하게 증가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
공소 기각 사유 두고 초기 혼란 불가피━
국회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중대한'과 '현저한'은 대법원 판례와 기존 법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법률 용어"라며 "표현이 추상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용할 수 없다면 기존의 수많은 법률 조항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중대한'과 '현저한'이 법률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맞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만 "공소권 남용 판례에선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 앞부분에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했다'는 내용이 붙어 있다"며 "이 부분이 빠지고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만 남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진수 차관은 지난달 28일 법안심사 소위에서 "판례에 비추어 '검사의 자의적 판단'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형소법 개정을 주도한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저희가 판례대로 법을 만드는 건 아니다. 이렇게만 기재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반영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로 인해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이 '검사의 자의적 공소권 행사'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넓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불명확해졌다는 점이다. 이창현 교수는 "향후 판사들이 판례보다 더 관대하게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을 해석해 적극적으로 공소를 기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대검찰청도 지난달 29일 설명자료에서 "공소 기각 여부가 재판부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31일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공소 제기의 경위, 검사의 의도, 피고인에게 발생한 불이익 및 기소 재량 일탈 정도를 전체적으로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공소 기각의 구체적) 판단 기준은 결국 대법원 판례를 통해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새로 추가된 '중대한 위법 수사'와 '소추 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이 어느 정도에 이를 때 공소를 기각할 수 있는지를 두고 대법원 판례가 만들어질 때까지 수년간은 혼란이 불가피한 것이다.
━
사법 절차 지연 사유만 차곡차곡 쌓는 형소법━
공소 기각 사유 추가에 사법부도, 행정부도 부정적 의견을 낸 것은 결국 그 피해가 힘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5일 법안심사 소위에서 "지금은 법정에서 증거 능력에 대해 동의·부동의 정도만 받고 바로 증명력에 대한 판단에 들어가는데, '위법 수사에 의한 것'이라며 공소 기각 사유에 대해 다투게 되면 그것부터 먼저 판단해야 하는 구조로 바뀐다"며 "굉장한 재판의 변화가 예상된다"고 했다.문제는 이런 변화가 좋은 현상이냐는 것이다. 김 의원 말대로 상당수 피고인은 앞으로 법정에서 수사기관의 위법 수사나 재량권 남용을 이유로 유무죄를 다투기에 앞서 공소의 정당성부터 따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유무죄만 다툴 때보다 재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중대한 위법 수사 여부를 확인하려면 다른 수사기관이 해당 수사기관의 위법성을 밝혀야 하는 만큼 재판 진행 자체가 어렵게 된다.
한 재경지법 현직 판사는 "중대한 위법 수사라는 건 피고인이 입증해서 공소 기각을 구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통해 경찰 수사가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아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텐데, 그 시간 동안 재판은 계속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없어지고 보완수사 '요구'만 할 수 있게 형소법이 바뀌면서 사건 처리가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데, 재판을 지연시킬 공소 기각 사유까지 추가되면서 '신속한 피해 구제'라는 형소법의 취지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공소 기각은 원칙적으로 극히 예외적인 절차인데, 이번 개정으로 불명확한 사유가 추가됐다"며 "피고인들은 거의 모든 중요 사건에서 공소 기각을 먼저 주장할 테고, 법원은 본안 심리에 앞서 절차적 쟁점을 먼저 심리함으로써 재판은 더 길어지고, 피해자는 유무죄 실체 판단을 받기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