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금지에 대한 사법적 통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법무부는 출금 기간 장기화 방지를 포함해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 전경. /사진=뉴스1


2022년 12월8일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학술교류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백주선 변호사는 당황했다. 자신이 출국금지(이하 출금) 돼 있다는 걸 공항에서 처음 알았기 때문. 그것도 같은 해 9월 26일부터 출금 상태였으니 이 사실을 73일 만에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결국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국제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확인 결과 그해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성남FC 감사를 지낸 백 변호사를 출국 금지했다. 하지만 출금 이후 검찰은 두 달 넘게 백 변호사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출금 기간을 다시 연장해 그해 12월 24일까지 출금 조치가 이어졌다.

백 변호사는 곧바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백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백 변호사에 대한 법무부의 출금 결정과 연장 자체는 적법하지만,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은 통지 유예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지 유예로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없고, 예측하기 힘든 손해를 보는 만큼 수사상 중대한 장애를 주는 게 아니라면 출금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출금 사실도 모른다?…일반화된 통지 유예

현행법상 출금이 결정되거나 기간을 연장할 땐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게 돼 있다. 문제는 공익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거나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통지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예외가 오히려 표준이 됐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의 임의적 판단에 따라 피의자뿐 참고인에게까지 출금 사실을 통지하지 않는 것이다. 수사상 통지를 유예하더라도 출금 기간이 3개월을 넘으면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3개월 전 출금이 해지된다면 자신의 출금 사실을 영영 모를 수도 있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검찰과 경찰, 보호관찰기관, 국세청 등 각종 기관에서 신청한 출금 요청 건수는 ▲2021년 2만9293건 ▲2022년 3만1332건 ▲2023년 3만6277건 ▲2024년 3만9655건 ▲2025년 4만1737건으로 최근 5년 사이 42.5% 늘어났다. 출금 결정률은 매년 98% 안팎으로, 각종 기관의 요청을 법무부는 거의 그대로 수용한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반면 출금 이의신청 건수는 ▲2021년 56건(전체 출금 건수의 0.19%) ▲2022년 110건(0.36%) ▲2023년 239건(0.67%) ▲2024년 253건(0.65%) ▲2025년 250건(0.62%)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의신청이 적은 건 상당수 출금 당사자가 출금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행법상 출금에 대한 이의신청은 출금을 통지받은 날, 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열흘 이내에 법무부 장관에게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백 변호사처럼 그 기간 실제 출국에 나서지 않는 한 출금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 데다 법조인이 아니라면 국가를 상대로 이의신청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쉽지 않다.


백 변호사는 지난 5월 대법원에서도 승소했다. 대법원은 '도주나 증거 인멸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될 때만 통지를 유예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통지 유예를 남발하는 수사기관에 경종을 울린 최초의 판결이다. 백 변호사는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포함해 585만원을 받았다.

조사 않고 출금 먼저…'묻지마 출금' 빈번

출금 통지 유예를 엄격하게 제한하기에 앞서 출금 신청 단계부터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4조 2항에는 출금 대상자를 이렇게 규정한다.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하다. 그만큼 수사기관의 재량권은 커진다. 피의자뿐 아니라 피내사자, 참고인까지 출금 대상이 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출금의 '무제한 연장'이다. 통상 출금은 세부 기준에 따라 1개월, 3개월, 6개월 단위로 이뤄진다. 하지만 연장의 상한은 없다. 10번이고 20번이고 연장이 가능한 구조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법무부에 출금 승인 뒤 1인당 평균 출금 기간과 평균 연장 횟수를 문의했으나, 돌아온 답은 관련 통계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수사기관의 출금 요청이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얼마나 연장하는지, 언제 해제하는지에 대한 집계가 전무한 것이다. 출금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환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출금 기간만 연장하는 '묻지마 출금'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건희 특검은 지난해 7월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수사하면서 곧바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출금 조치했다. 원 전 장관에 대한 출금은 지난해 12월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은 수사를 종료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원 전 장관을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경기 과천 2차 종합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이에 앞선 김건희 특검은 지난해 7월부터 5개월간 원 전 장관에 대한 출금 조치를 내렸으나 수사를 종료할 때까지 한 차례로 부르지 않았다./사진=뉴시스


2차 종합특검도 지난 4월 13일 당시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한동훈 후보(현 무소속 의원)에 대해 '사건 수사'를 이유로 출금 조치를 내렸다. 이어 두 차례 출금을 연장해 3개월이 지난 이달 12일에야 출금을 풀었다. 이 기간 2차 종합특검 역시 한 후보를 불러 조사한 적이 없다. 한 의원은 장기간 출금 사유를 공개하라며 특검과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참고인 없으면 수사상 불편하니 출금?

백 변호사처럼 지난해 5월 공항에 가서야 출금 사실을 알게 된 김모 변호사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검찰 면담 때 주임검사가 '참고인이 없으면 (수사를 진행할 때) 불편하니까 일단 출금부터 하는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홈플러스 기업회생 절차를 담당하고 있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참고인 신분임에도 김 변호사를 출금 조치한 것이다. 검찰은 김 변호사에 대해 지난해 8월 말까지 세 차례나 출금을 연장했으나 그 기간 출석 요구는 없었다.

김 변호사는 "나는 법조인이라 소송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은 항의조차 하기 힘들 것"이라며 "특히 사업상 해외에 자주 나가야 하는 기업인들은 출금 조치 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지난해 11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피의자가 아닌 경우 출금을 요청하려면 범죄 수사에 중대하고 명백한 장애가 생길 수 있음을 수사기관이 구체적 자료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다만 주가 조작과 같은 대규모 금융 사건이나 부정부패 사건처럼 거래구조가 복잡하고 계좌 추적에만 1~2년씩 걸리는 사건이 있는 만큼 출금 규제를 일괄적으로 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손우창 변호사(법무법인 트리니티)는 "금융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많고, 불특정 다수 피해자가 지속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수한 수사를 고려해 출금 규제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데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현재 출금 기간의 장기화 방지, 이의신청 등 불복 절차의 개선을 중심으로 출금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 개선안 마련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