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불과 3~4년 전만 해도 회사에서 베스트 영업사원이었다. 동종업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아 언젠가부터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고 사내에서는 영업사원 가운데 연매출 1위를 달성해 베스트 영업상을 받은 경험도 있다.
사내 회장과 고위 임원들조차 그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회사에서 인정 받자 자연스럽게 여직원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됐고 그 결과 사내결혼에 성공했다.
서씨는 그러나 샐러리맨의 꿈같은 현실은 이제 과거형이 됐다고 푸념한다. 2009년 초 대리점 자영업을 시작해 지금 그의 명함에는 어엿한 '사장' 직함이 찍혀 있지만,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서면서 현실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는 지금 사업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아간다. 두명의 자녀와 아내를 위해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일을 한다. 하지만 매출은 점점 줄어든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희망이라는 불씨를 부여잡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 불씨마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롯데슈퍼 출범에 수익률 곤두박질 '울상'
서씨는 2009년 초부터 회사에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식품 대리점을 시작했다. 본사 직원이 영업 대리점 사업을 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기회가 많지 않을뿐더러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본사에서 대리점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일은 고추장과 된장, 당면과 초코바 등 20여 제품을 슈퍼에 납품하는 대리점 즉, 중간 유통업이다. 흔히 대리점 유통 영업을 '바닥 영업'이라고 표현한다. 동네 슈퍼와 마트, 음식점 등에 식품을 납품해야 하는데 여간해서는 뚫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해 인근에 롯데슈퍼가 들어서면서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본사가 중간 마진 없이 다이렉트로 제품을 공급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앞설 수밖에 없는 롯데슈퍼가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탓이다.
물론 서씨도 원칙적으로는 롯데슈퍼에 납품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네 슈퍼 등을 배신할 수 없고, 납품을 한다고 해도 마진이 없거나 손해를 보는 구조라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작년 초에는 월 매출이 4000만원대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3000만원도 안됩니다. 순수익도 200만~300만원 수준이었는데 (롯데슈퍼로 인해) 200만원을 가져가기도 힘들 지경이에요. 동네 슈퍼도 장사가 안 되니까 요즘에는 반품 처리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는 차라리 샐러리맨이었을 때가 더 나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의 답답한 하소연은 계속됐다.
"SSM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동네 슈퍼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 중간 마진을 없앤다는 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일부 품목은 아예 마진을 포기하거나 손해를 보면서까지 SSM에 제품을 납품합니다. 롯데마트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풍부한 자금력으로 전단지와 이벤트 등 홍보도 적극적이죠. 일반 슈퍼나 마트는 새로 개업을 해도 전단지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합니다. 그거 찍는데 수백만원이 들거든요."
서씨는 동네 매장이 죽으면 자신이 하고 있는 대리점도 같이 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도 대기업에서 영업을 했고 능력도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정말 답이 없어요. 정부가 나서서 SSM 규제를 강화하든지, 자영업자들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식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경제의 축은 허물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목숨 걸고 사업을 하고 있어요. 먹고 살만한 대기업들이 골목시장까지 진출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됩니다."
◆우린 죄인이 아니예요"
그가 겪는 어려움은 또 있다. 대기업들의 홍보 때문에 대리점에 대한 시선이 점차 따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요즘 들어 중간마진을 없애 가격을 낮췄다는 홍보를 자주 합니다. 그걸 보면 마치 우리가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주범이 된 기분이에요. 우리는 기업들이 상품을 만들면 그 상품을 슈퍼나 마트 등에 되파는 일을 하죠. 반품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이 있으면 알아서 교체해주고 새 영업점이 생기면 직접 찾아가 매장을 관리해줍니다. 기업과 매장 간의 허리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대기업들이 유통마진을 빼서 가격을 낮췄다고 자랑하듯이 말하더군요. 그들이 지금의 규모를 갖추고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정말 배신감이 들어요."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신용카드 수수료에 대한 일침도 빼놓지 않는다.
"대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2.8%가 수수료로 빠져나가요. 우리가 챙기는 순마진은 약 10% 수준이에요. 근데 이중 2.8%가 빠져나가면 실질적으로 남는 것은 7.2%에 그치죠. 1만원을 팔면 1000원은 남겨야 하는데 고작 720원 남는 겁니다. 솔직히 이제는 신용카드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생각 돼요. 만약 현금으로 결제하면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는데 신용카드는 반대거든요. 카드사가 수수료를 낮추든지, 카드결제를 금지하든지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서씨는 더 불안한 일은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인근에 이마트와 SSM이 또 진출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진출 반대를 위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고 여러 방면으로 의사 표현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삶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갓 4살, 2살인 아이들에게 무기력한 아빠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누군가가 해답을 주면 참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