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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비행기로 2시간도 채 안 걸린다. 1년에 왕래하는 사람이 600만명을 넘고, 교역량도 2000억달러를 초과했다. 5000년 역사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부터 1992년까지 국교가 단절돼 있던 44년 동안, 매우 멀어졌다. 아직도 생각과 체제에서는 좁혀야 할 게 많다. 차이나 리프트는 홍찬선 머니투데이 베이징 특파원이 2주에 한번씩, 먼 중국을 가깝게, 가까운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하지만 그냥 디자이너가 아니라 옷을 통해 중국의 미(美)를 표현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궈페이(郭培) '로즈 스튜디오(Rose Studio)' 창업자겸 CEO(최고경영자). 중국에서 궈페이는 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20대의 나이에 중국의 10대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선발될 정도로 패션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서른 살에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설립한 도전자이며 기업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시상식 복장을 디자인했고,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인 춘졔(설) 때 유명 아나운서와 가수들이 입는 의상 중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중국 5대 패션 디자이너'로 선정한 궈페이. 호주 박물관이 그가 디자인한 옷을 수장품하기로 결정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는 해외의 유명한 디자인학교에 유학한 적도 없는 순수 '중국산'이다.
오는 5월6일과 7일, 자신의 4번째 패션쇼를 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궈페이 사장을 만났다. 1967년생 양띠인 궈 사장은 올해 45세. 불혹의 나이이지만 디자인과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모습은 마치 꿈 많은 10대 소녀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1년 정도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1997년에 로즈 스튜디오를 설립했는데, 스스로 창업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나.
▶ 1980년과 90년대 중국에는 의상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자신만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옷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찾는 똑같은 옷이 더 잘 팔리는 상황이었다. 톈마나 밀라노 같은 유명한 의류회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잘 팔리는 옷을 만들수록,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고급 옷을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비싼 고급 옷을 디자인하면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가 있었지만 꿈을 펼치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아직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창업했으니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 처음 2년 동안엔 자유롭게 많을 것을 시도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동안 파리와 밀라노 등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거의 참석했다. 선진국의 앞선 디자인을 보고 배울 수 있었지만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2년째에 접어들면서 수입은 없고 지출만 생기다 보니 돈 버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분간 '디자인'을 잊고 친구들과 아는 회사들의 디자인을 하청 받으면서 버텼다. 그렇게 만든 옷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으며 로즈 스튜디오가 점차 알려지고 비즈니스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객에게 만족을 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매일이 즐겁다.
-로즈 스튜디오를 만든 지 15년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로즈 스튜디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 창업한 지 5년 만에 첫 패션쇼를 열었을 때 이제야 나의 디자인 철학을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다. 현재 45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연간 3000여건의 옷을 만들어 5000만~6000만위안(한화 90억~108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아직도 새로운 재료와 제품을 개발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이익은 그다지 내지 못하고 있다.
로즈 스튜디오를 창업한 목적이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통해 중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보겠다는 꿈을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 15년 정도 더하면 내 나이도 60이 되고, 그때쯤이면 정말 디자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면서 미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셈이다.
-로즈 스튜디오는 고급이면서 값이 비싼 의상을 주문받아서 만드는 까오지딩즈(高級定制)를 채택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회사들은 까오지딩즈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즈 스튜디오가 성공하게 된 이유는 뭔가.
▶ 고객의 주문을 받아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은 종합예술이다. 디자인 원료구입 재단 자수 등의 일련 작업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리더가 필수적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열정을 이끌어 내는 데 천부적 자질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필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문을 받아 옷을 디자인할 때 나를 완전히 잊는다. 나의 생각과 선입견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고객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면서, 디자인을 통해 고객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내는데 전념한다.
-의상 디자인을 하고 로즈 스튜디오를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 창업한 뒤 조직이나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몰라 힘들었다. 그래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등록해 공부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거래업체에서 하청 대금을 주지 않아 소송을 하게 됐다. 상대방에서는 쟁쟁한 변호사들이 팀을 이뤘지만 나는 남동생과 단둘이서 소송을 진행했다. 법률 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진정성을 갖고 성심성의껏 임해서 승소할 수 있었다.
경영도 진정성과 단순성으로 접근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MBA를 포기했다. 교과서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450여명의 임직원과 가족처럼 지내며, 옷을 주문받아 가격을 결정하는 것도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해외에 나가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성심성의껏 고민하다보면 저명한 외국 디자이너들도 놀라는 옷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궈페이 사장은 중국과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는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과 교류를 가질 계획이 있나.
▶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재료를 한국에서 구입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앙드레 김의 디자인에 감명을 받아 그를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었는데 돌아가시는 바람에 뵙지 못해 매우 애석하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관계자들과 접촉이 있었는데 비즈니스로는 연결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앞으로 5년 뒤에는 해외에 나가 패션쇼를 할 계획이다. 중국의 미를 구현하는데 한국의 전통도 매우 중요하므로 한국 의상 디자이너와 패션업계와도 관계를 맺어 나갈 예정이다.
-오는 5월에 여는 4번째 패션쇼의 주제는 무엇인가.
▶ 하나는 '중국의 신부'이고 다른 하나는 용이다. 결혼은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이며, 특히 신부에게 결혼 예복이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신부가 결혼식에서 돋보일 수 있는 예복을 중국 전통과 다른 나라의 요소를 가미해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의 한복도 디자인에 반영했다.
용은 중국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올해가 용의 해이기도 하니 비상하는 용의 모습도 디자인에 많이 담을 생각이다.
홍찬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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