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직장 내 왕따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피해자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눈치가 없고 답답한 성격이라서’ 왕따를 시킨다고 답했다. 뒤를 이어 ‘조직에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업무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여기서 질문. 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왕따 피해자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걸까?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행동은 틀린 것이니까요.”
여기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판단(judgment)과 사실(fact)의 구분이다. 앞의 설문조사로 돌아가 보자. 앞에 나온 응답 중에 사실이 있는가? 사실은 말 그대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예를 들면 ‘30분 지각한 것’, ‘3개월 간 사전 보고 없이 회식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은 것’ 등이다. 이 사실들은 ‘업무능력이 떨어진다’, ‘조직에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이들은 모두 판단(judgment)이다. 자기 관점의 해석일 뿐이란 뜻이다. 심리학자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과 나의 해석이 개입된 판단을 혼동하면 ‘인지왜곡’이 생긴다고 말한다. 인지왜곡의 끝은 무섭다. 때로는 자기가 타인에 대해 갖는 미움, 즉 판단에 대해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히틀러도 그러지 않았을까? 유대인은 사라져야 할 민족이라는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 사실(진리)이라 굳게 믿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그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판단과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둘째는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의 구분이다. 임원들 간의 다른 스타일 때문에 갈등이 많아 고민에 빠져있던 한 중견기업의 CEO의 얘기를 해보려 한다. 어느 날 임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고 고민 상담을 해 왔다. 그때 제안한 것이 애니어그램과 MBTI진단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에서는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고, 특정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서로 말하게 했다. 결과는? 몇달 뒤 그 CEO는 필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 워크숍 이후 임원들 간의 갈등이 절반 이상 줄었다는 것. 비결은 간단했다. 워크숍을 통해 임원들이 서로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의 ‘성향’ 자체가 나와 달라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걸 알게 된 것. ‘서로 타고난 모양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임원들 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어떤 이에겐 즐거운 회식이 다른 이에겐 고문일 수도 있다. 작은 일 하나에 집착해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 게 그 직원에겐 ‘완벽함을 추구하는 노력’일 수도 있다. 이건 다름이지 틀림이 아니다. 타고난 성향의 차이뿐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 능력의 차이도 틀림이 아닌 다름이다. 많은 리더들이 부하의 무능력함을 비난하고 미워한다. 하지만 좋은 리더는 믿는다. 모든 인간은 ‘나름의’ 쓰임새가 있다고. 그래서 상대가 쓰임새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끊임없이 함께 고민한다.
똘레랑스(Tolerance). 우리말로 하면 ‘관용’ 또는 ‘너그러움’으로 해석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에서 프랑스를 지배하는 사회정신으로 소개됐다. 상대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그만큼 자신의 것도 인정받는 사회. 바로 똘레랑스가 넘치는 사회다. 반면 우리는 지금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주머니에 묵직한 돌 하나씩을 넣어 다니며 ‘언제든,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던질 태세다. 똘레랑스가 넘치는 사회? 작은 지혜면 된다. 판단을 사실로 착각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고 틀렸다고 결론내리지 않는 것. 이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