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로 보면 평온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수도권 주택시장 얘기다. 지난 3월 수도권 주택가격은 전 달보다 0.2% 하락, 약보합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 지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거래가격은 예상보다 큰 폭으로 급락하면서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분당신도시의 한 중대형 아파트는 올해 들어 1억원 이상 하락, 7억원 선으로 주저앉았다. 2006년 말 13억원에 거래가 됐으니 6년 만에 40% 이상 하락한 것이다.
서민층 주거단지인 상계동 같은 곳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2분기 4억7000만원까지 거래됐던 상계동 한 아파트는 지금은 3억원까지 떨어졌다. 그동안 주로 수도권 주택가격은 박스권에서 움직이면서 거품이 해소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가격이 급락하면서 박스권에서 하향 이탈, 심리적인 지지선이 속속 붕괴되고 있다.
이처럼 주택시장이 패닉상태에 접어든 이유는 복합적인 요인이 일시에 악재로 작용한 듯하다.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이 심리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대출 규제에다 사실상 취득세 인상도 침체의 한 요인이다. 또 값싼 보금자리주택이 대거 공급되면서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최근 들어서는 세종시나 혁신도시로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 같은 파워엘리트(권력집단)가 수도권을 본격적으로 벗어나고 있는 점도 수요층을 얇게 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값이 장기간 정체하면서 아파트가 하나의 자산으로서 메리트를 상실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파트는 임대수익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보유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러다보니 그동안 초과수요 상태이던 수도권 주택시장은 요즘은 일시적으로 수요공백이라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집값 하락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미래의 장밋빛 주택전망만을 보고 빚을 많이 내 배팅을 했던 사람들이다. 연령별로는 50대 베이비부머들이 타격이 크다. 이들이 보유한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많이 떨어진 탓이다. 최근 주택가격 급락은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주택가격은 생각보다 많이 오르기도 하지만 떨어질 때에는 생각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집값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예컨대 외환위기 직후인 집값이 급락했지만 1998년 6월에 서서히 바닥설이 흘러나왔다. 집값 하락세가 멈칫하고 소폭 회복기미를 보이더니 9월부터 계속 떨어졌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게 아니라 바닥을 파고 지하실로 내려간 꼴이다. 대세하락기에도 집값은 계속 해서 곤두박질치지 않고 잠시 기술적 반등이나 소폭 등락을 거듭한 뒤 다시 급락하는 모양새를 띠는 경우가 많다.
결국 6월은 주식에서 이야기하는 가(假)바닥이었고 진(眞)바닥은 5개월 뒤인 그해 11월에서야 찍었다. 실제로 국민은행 전국주택가격지수는 2008년 6월(59.8, 2008년 12월=100)에 저점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11월(58.7)에 가서야 저점을 확인했다. 이처럼 주택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오르고 또는 많이 떨어지는 것은 시장 참가자들(대중)의 집단 심리적 요인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심리상태인 광기와 공포가 강하게 작용할 때 적정가치보다 훨씬 높거나 낮게 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불안 심리는 가격의 부침을 확대시킨다. 주택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연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당국의 세련된 활성화대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