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뎅(Auguste Rodin)의 '생각하는 사람'만큼 유명한 미술작품도 없다.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패러디 광고에도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로뎅이 만든 '지옥의 문'이란 작품 중 일부다. 원래작품보다 크게 제작해 독립적으로 전시되는 에디션도 있다.
'지옥의 문'은 로뎅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지옥을 헤매는 인간군상을 묘사했고 이들의 처절한 최후를 내려다보며 고뇌하는 단테의 모습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880년 프랑스 정부는 새로 지을 미술관에 쓰일 정문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고 로뎅에게 부탁했다. 로뎅은 석고를 이용, 지옥의 문을 구상했고 청동주물로 완성본을 만들 채비를 했다. 하지만 프랑스정부가 1885년 미술관 건립 계획을 취소했고 로뎅은 개인적으로 지옥의 문을 완성했다. 로뎅은 지옥의 문 청동주물 완성본까진 만들지 못했고 석고로 만든 미완성본만 공개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석고본 지옥의 문은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프랑스 로뎅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지옥의 문'(위부터)
프랑스 정부는 로뎅 사후 그의 작품을 관리하면서 지옥의 문 청동주물 작품을 만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8곳에 로뎅 갤러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삼성생명 본관에 위치한 플라토(옛 로뎅갤러리)에 마련돼 있다. 플라토는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 최대부호인 카를로스 슬림 회장이 부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카를로스 회장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대부호로 멕시코 텔맥스텔레콤 회장이다. 삼성 등 한국기업과 협력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많은 시간을 플라토와 리움미술관을 찾는데 할애했다.
카를로스 회장은 로뎅 작품만 380여개를 소장하고 있는 로뎅 애호가다. 카를로스 회장은 1999년 작고한 부인의 이름을 딴 소우마야미술관을 멕시코시티에 개관했다. 소우마야미술관엔 로뎅작품을 비롯해 유럽에서 건너온 6만4000점의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 그럼에도 자신에겐 없는 '지옥의 문'을 한국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심 부러워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2010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1184만달러(약 130억원)에 낙찰됐다. 그밖에 로뎅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이브, 그랜드 모델'로 1896만9000달러(약 200억원)의 경매가를 기록한 바 있다. '지옥의 문'을 값으로 따지면 수백억원은 족히 된다.
유명세는 로뎅이 앞서지만 조각작품 중 가장 비싼 것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작품들이다. 스위스 조각가인 자코메티는 인체의 모습을 가늘고 길게 묘사한 조각품으로 유명하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2010년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무려 1억393만달러(약 1100억원)에 낙찰됐다. 삼성 리움미술관에도 자코메티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권진규 전시 전경
한국에도 로뎅이나 자코메티에 필적할 만한 천재 조각가가 있다. 한국의 로뎅이라 평가받는 권진규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 5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조각가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부유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난 권진규는 징용돼 일본 히다치철공소에 끌려갔다가 일본에서 미술을 접하게 된다. 사설 아틀리에에서 미술 수업을 받다가 1944년 한국으로 밀입국해 서울에 정착한다. 광복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다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1959년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한국에선 몇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나 화랑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추상조각이 대세였던 한국 조각계는 사실적 묘사에 치중한 권진규 작품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권진규도 비타협적인 태도로 화랑계와 갈등을 빚으며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권진규는 말년에 수전증까지 찾아오자 1973년 5월4일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진규의 작품세계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조명받기 시작했다. 자살로 생을 마친 드라마틱한 삶도 회자됐고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의 힘이 그를 한국 최고의 조각가로 평가받게 했다. 후에 일본 무사시노대학 조각과는 최고의 출신작가로 권진규를 선정하기도 했다.
권진규는 흙을 빚어 구워내는 테라코타 작품과 한국전통의 건칠기법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건칠은 전통가구에 이용되는 옻칠기법을 조각작품에 접목한 것이다. 권진규는 다양한 형태의 말 조각과 사람의 두상을 많이 만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자소상이나 지원, 영희, 홍자 등 실명을 가진 여인의 흉상이 유명하다. 종교적 느낌을 물씬 풍기는 그의 조각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지원의 얼굴'이란 작품은 미술교과서에도 실렸다.
권진규의 작품은 경매시장에 자주 등장하진 않지만 나올 때마다 고가에 낙찰된다. 지난 2010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권진규의 '춘엽니'가 1억9500만원, '경자'가 2억500만원에 각각 낙찰됐다.
권진규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하이트맥주다. 권진규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하이트맥주 본사를 찾으면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시간에 개방된다.
하이트문화재단은 2010년 청담동 본사에 전시관을 열었다. 본사 로비바닥을 철거하고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을 수직으로 연결해 1499.57㎡의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하이트가 꾸준히 사 모았던 권진규 작품 120여점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다. 40여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서있는 말'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남자흉상' 등 천재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흔히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 벌어들인 돈으로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에 나서는 것만 사회적 책임이 아니다. 고용을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높이고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게 진정한 사회적 책임이다.
척박한 미술시장에서도 기업들이 할 역할이 있다. 로뎅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해도 좋고 권진규와 같은 숨겨진 천재작가를 발굴해도 좋다. 미술시장과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데 대기업들이 앞장선다면 그들의 탐욕을 조금은 눈감아줄 용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