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변신의 귀재로 통한다. 
 
민간출신으로는 첫 금융당국 수장에 오를 때 은행과 보험 등 금융사에서 막강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아태지역위원회(APRC) 의장을 역임하는 등 국제경험도 풍부하다.
 
그런 그가 2009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회적 보험을 늘리는데 힘쓰고 있다. 국내·외 금융경험이 풍부해서일까. 만 2년 만에 그의 리더십이 시장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월급도둑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노후보장의 필수상품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이를 입증하듯 임의가입자들도 크게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달 기준 임의가입자가 20만명을 돌파했는데 3년새 7배나 늘었다.

사회적 보험이라는 브랜드에 맞춰 긴급노후자금을 지원하는 '국민연금 실버론'도 이슈다. 전 이사장의 아이디어로 나온 이 연금은 시행 2주 만에 신청자수가 3000명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실버론은 고령의 국민연금 수급자들에게 의료비, 배우자 장례비 등 긴급 생활자금을 저리로 최고 500만원까지 빌려주는 제도다. 자금지원 총액을 보면 5월18일 현재 총 3291명에게 130억원을 지급했다. 물론 지금도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전광우 이사장이 변신의 귀재라는 이유는 이처럼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시대와 트렌드에 맞춰 변화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머니투데이 유동일 기자
 
◆2020년 기금총자산 1000조 목표
 
글로벌 금융 CEO(최고경영자)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전광우 이사장이라고 한다. 막강한 자금력과 투자자금을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업계에서도 큰손으로 알려져서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총자산은 370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기금총자산을 올해 말까지 400조원으로 끌어 올리고 2020년까지 100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GPIF(일본), GPF-G(노르웨이), APG(네덜란드), CaLPERS(미국) 등에 이어 세계 4대 연금으로 급성장했다.
 
이처럼 국민연금 기금이 급성장한 이유는 주식·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고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다변화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중심에는 전 위원장의 단호한 결단이 있었다.
 
전 이사장이 국민연금공단에 선임된 초기만 해도 국민연금 기금은 채권수익률에만 의존해 있었다. 이율과 수익이 낮아 앞으로 연금을 받아야 하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그동안 고갈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당초 2060년에서 10년 이상 앞당겨진 2049년부터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됐다. 또한 물가상승률이 1% 상승하면 고갈 시기는 3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전 이사장은 이러한 국민의 불신을 없애기 위해 마케팅보다는 수익률을 높이는데 초점을 뒀다. 운용기금이 늘어나면 당연히 국민들의 불안도 해소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최근 재조명을 받는 이유는 노후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반 보험에 비해 수익률이 낫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이는 전광우 이사장의 성공적인 투자방식과 국민연금의 불신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력만 30여개… 친화력·국제감각 강점

전광우 이사장의 지난 약력을 보면 말 그대로 화려하다. 1972년 한국개발금융에 입사한 이래 미국 인디애나대 조교수, 세계은행 국제금융팀장, 파리클럽 세계은행 수석대표,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지주 총괄부회장, 재정경제부 장관 국제금융 담당 고문, 금융위원회 위원장 등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2009년 12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것까지 포함하면 현재 이력으로 나온 곳만 무려 30여개에 달한다.
 
그의 이력을 곱씹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교수와 사외이사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융분야만 고집한 것. 민간출신으로 금융위원장까지 오른 것도 그의 화려한 경력이 밑거름 됐다는 평가다. 특유의 친화력과 국제감각도 전 이사장의 장점 중 하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해외 기관투자가의 수장들과 만나고 네트워크 확대와 정보를 얻는데 남다른 강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화려한 이력에는 의외로 낙방이라는 경력도 숨어 있다. 경기중학교 입시 때 답을 밀려 쓰는 바람에 떨어진 것. 이후 그는 검정고시학원에 다니며 6개월만에 중학교 과정을 월반하고 고교입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듬해 서울사대부고에 들어갔다. 당시 최연소 고교입학생이었다.
 
전 이사장은 사석에서 "제 삶의 첫 위기는 중학교 시험에 떨어지면서 시작된 것 같다"면서 "그런데 검정고시를 통해 동기들보다 2년이나 일찍 최연소로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낙방이라는 위기를 월반이라는 기회로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도 어떤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번에는 또 어떤 기회가 오려고 이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면서 "위기 앞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나의 큰 자산이다"라고 강조했다.
 
☞ 프로필
▲1949년 서울생 ▲서울사대부고·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 석사·경영학 박사 ▲미시간주립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경제부총리 특보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국제금융대사 ▲초대 금융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