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3대'라는 말이 무색하다. 국내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그룹의 3세 형제경영 마지막 바통이 박용만 회장에게 넘어오면서 차기 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두산가의 '장자'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다.


마침 두산은 지난 5월22일 이사회 결정에 따라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두산의 지주부문 회장까지 겸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인 박용만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전체의 실무를 담당하는 역할이다. 국내 첫 4세 총수 명패를 올리기 직전 수순으로 보인다.
 
 
◆'왕의 수순' 밟는 황태자

지난해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박정원 회장은 ㈜두산의 최대지분보유자가 됐다. 보통주 30만주를 추가 확보한 박정원 회장의 지분율은 5.35%로 박용만 회장(3.47%)이나 박용현 전 회장(1.99%)보다도 많다. 4세 중 유일한 사내이사라는 점도 박정원 회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3월 말 열린 ㈜두산의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4세대 선두주자다. 1~3대 회장이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그룹 회장을 이어갔지만 3세대에 이르러 형제가 많아지면서 형제 승계가 그룹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1세대 박승직 창업주, 2세대 박두병 초대회장, 3세대 박용곤 명예회장까지는 장자 승계가, 고 박용오 회장, 박용성 회장, 박용현 회장, 박용만 회장은 형제 승계가 이뤄졌다. 막내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두산가를 나와 홀로 사업영역을 구축한 만큼 차기 그룹 리더 역할을 박정원 회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경영수업 착실…눈칫밥·은행 경험은 없어


재계의 수재 집안인 두산가 장손인 만큼 박정원 회장 역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와 보스턴대 MBA 과정을 거쳤다.

외형적으로 박정원 회장은 착실하게 단계별 경영수업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정원 회장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85년 두산산업에 사원으로 입사해 1988년 두산건설 대리, 1991년 과장, 1993년 오비맥주 차장 등을 거쳤다. 주로 뉴욕과 도쿄에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이 기간은 보스턴대 유학시기와 겹친다. 오너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경력이다. 이른 나이에 해외 유학과 근무 경험을 쌓은 것은 군 면제로 인해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면제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두산가에는 '남의 밥을 먹어봐야 한다'거나 '은행근무를 경험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있다. 하지만 박정원 회장은 그런 가풍과 거리가 있다. 3세인 박용곤 명예회장과 고 박용오 회장, 박용성 회장, 신임 박용만 회장 등이 은행근무 경험을 쌓은 것과 달리 박정원 회장은 금융기관에 근무한 적이 없다.


눈칫밥을 먹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유학 후 일본의 기린맥주 경력이 2년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린맥주는 두산그룹과 특수관계에 놓였던 회사다. 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는 기린맥주의 한국지사격인 쇼와기린맥주가 모태다.

그나마 미국과 일본에서 선진 문화를 접하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점은 두산가의 불문율을 벗어나지 않았다.
 

 
◆건설 과제 풀어야 입지 굳힌다

박정원 회장은 1999년 ㈜두산 상사BG 사장에 오르며 처음으로 4세 최고경영자 시대를 열었다. 그는 비수익성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취약한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만들어 그룹 내에서 차기 총수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진로의 아성이던 일본에서 소주 '산'으로 시장 1위를 쟁취한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였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는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2005년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산산업개발은 고 박용오 회장이 형제의 난 때 그룹에 지분 명목으로 소유를 원했던 회사다.

박정원 회장은 부채비율이 높았던 두산산업개발을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성장시킨 공로로 2년 뒤 ㈜두산 부회장을 겸직할 정도로 두산가에서 신임을 얻었다.

업무 부담이 가중된 탓일까. 이후 성적표가 신통치 않다. 2009년 두산건설 회장직에 오른 뒤 경영실적이 마이너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재무건전성 악화와 실적 둔화로 그룹의 자금흐름마저 불안할 정도다. 글로벌 시장 침체에다 국내 부동산 경기악화가 원인이지만 10대그룹의 주력 계열사 치고는 위기의 골이 깊다.

재벌 총수 일가의 후계 경영에는 항상 실력 검증 논란이 뒤따른다. 워런 버핏이 "기업인이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다는 것은 마치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2020년 올림픽에서 자신의 장남으로 국가대표 선수단을 꾸리겠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 것과 같은 이치다. 국내 10대기업 차기 총수로서의 경영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박정원 회장에게 두산건설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프로필>
▲1962년 서울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보스턴대 MBA ▲1985년 두산산업 입사 ▲1997년 오비맥주 상무 ▲1999년 ㈜두산 부사장 ▲2005년 두산건설 부회장 ▲2007년 ㈜두산 부회장 ▲2009년 두산건설 회장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