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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온 줄 알았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만드는 염전이 지평선을 이루는 곳. 바둑판같은 염전 사이로 난 길가에 흰 눈이 내린 것 같다. 소금이었다. 소금밭, 염전에서 피어나는 ‘소금꽃’은 주인의 사랑으로 큰다.
하사리 염전 염전에서 모아놓은 소금
◆염전, 색다른 풍경 속으로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라는 소금꽃이 소금밭에서 하얀 꽃동산을 만들었다. 좋은 햇빛과 좋은 바람이 보석처럼 빛나는 하얀 소금을 만들어 낸다. 주변에 산이 둘러있어 바람이 휘돌아 나온다든지 인공의 건물이 바람을 가로막고 있는 것에도 소금은 영향을 받는다. 그처럼 자연에 민감하다.
영광에서 염전 구경을 하려면 하사리와 두우리에 있는 염전을 찾으면 된다. 바닷물이 고인 고무바닥을 몇 번이고 돌며 써레질을 하는 동안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새하얀 알갱이들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트린다. 시커먼 고무장판 위에 하얀 것들이 안개꽃처럼 스르륵 일어나더니 이내 새하얀 꽃무리를 이룬다.
소금을 걷을 수 있는 날은 1년 평균 125일 정도다. 4월부터 10월까지 소금을 생산할 수 있다.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두는 일부터 1차, 2차 징발과 함께 생산으로 이어지는 작업 과정에서 염전 사람들은 매일 새벽 4~5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한창 때는 저녁 8~9시까지 일손을 놓지 못한다.
외발수레에 소금을 담아 소금창고로 향하는 아저씨의 얼굴에 석양이 비친다. 나이보다 깊은 ‘골주름’에 그늘이 더 짙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염전일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젊었을 때는 들끓는 혈기에 촌구석은 감옥 같았다.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 날품팔이 막노동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었지만 현실은 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세월에 빚을 지고 고향으로 내려온 아저씨는 그때부터 염전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염전은 돈이 되는 일이었기에 돈을 모아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한해 두해가 지났고,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염전에 터를 잡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공기마저 짠 느낌이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끈적거린다. 땀이 말라 서걱거리는 것처럼 바닷물 알갱이가 피부에서 말라 허연 소금기를 드러난다. 블록으로 대충 쌓은 창고 같은 집이 한 줄로 늘어섰고, 염전이 있는 길 가에 전신주가 가로수처럼 서있다. 예전처럼 호황을 누리지 못하는 소금밭의 사정을 대신 말해주듯 전신주 하나가 땅으로 기울어 있다.
염전이 있는 마을의 풍경은 낯설다. 바다를 일구어 소금을 만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바닷물을 퍼 올렸던 수차가 모터의 동력으로 바뀐 것과 소금밭이 맨흙에서 고무장판으로 바뀐 것 밖에 없다.
바다를 뭍으로 끌어들여 소금밭을 일구는 염전은 일꾼들의 거친 숨소리와 소금보다 더 짠 땀방울이 일구어낸 삶의 한복판이다.
동백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동백보다 붉은 사연
바다에 약간의 안개가 남아 있었고 흐린 구름은 장막처럼 하늘을 덮었다. 길은 바다를 끼고 도는 산허리에 있다. 해안선이 곧 산굽이가 되고 길은 그 굽이를 따라 구불거리거나 오르내린다. 길은 비탈이 심하고 좁아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눈앞에 절벽이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바다냄새 풀냄새 가득한 동백마을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담 없는 집, 문짝이 떨어져 나간 채 바다를 향해 있다. 사람이 살았던 냄새가 없다. 백구가 마루 밑에서 멀뚱하게 낯선 우리를 맞는다. 마당 곳곳에 닭들이 모이를 쪼거나 웅크리고 앉았다. 안개에 휩싸여 수평선을 잃어버린 바다가 마당에서 빤히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낯선 마을을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었다. 좀 더 깊숙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그 때서야 개가 짖기 시작한다. 이곳은 동백마을이다. 영화 <마파도>를 여기서 찍었다. 영화에서 마파도는 ‘할머니와 아줌마들만 살고 있는 섬’으로 그려지는데, 동백마을이 그랬다. 어느 해인가 당제를 지내는 ‘할아버지 당산나무’를 베어 낸 뒤로 동네 할아버지들이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할머니들이 말한다.
그렇게 남겨진 할머니 아줌마들은 이제는 땅이 있고 밭이 있어도 힘에 부쳐 큰 농사는 엄두도 못 낸다. 그저 집주변에 텃밭을 가꾸고 봄이면 마을 뒷산에서 ‘모싯잎송편’의 재료인 모싯잎을 따서 내다 판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없었고, 상수도시설도 없어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써야만 했다. 옛날에는 사는 게 그렇게 불편했지만 바다에는 고기들이 바글바글했고, 몇마지기나 되는 밭에서 마늘 농사도 지었다. “소, 돼지 키우며 시끌시끌하게 살던 때가 가끔 생각난다”며 울타리 옥수수대를 바라보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 할머니 주름진 얼굴에 그리움이 번진다.
혼자 산 지 십여년, 도시에 나가 사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찾아오면 그 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다시는 할머니는 손주들 오는 날을 기다리며 텃밭을 가꾸고 옥수수를 키운다. 잘 익은 옥수수가 손주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봐도 행복하시다는 할머니다.
흙벽 위에 걸어 놓은 액자에는 작은 사진들이 모자이크처럼 붙어 있었다. 그 안에는 자식들 결혼식 사진도 있고, 손주들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 옆에 빛바랜 사진 한장, 거기에는 앳된 얼굴의 색시와 새파란 총각이 얼굴을 맞대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는 사이 할머니는 슬쩍 자리를 비우시더니 밥상을 내오신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자꾸 손을 붙드신다. 내 손을 잡는 할머니 손등이 서걱거린다. 밥상을 물릴 수 없었다. 맛있게 한그릇 다 비우고 나서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하니까 할머니는 “다 늙은 사람 찍어서 뭣에 쓰냐”시며 쪽진 머리를 갈잎 같은 손으로 쓰다듬으신다. 새색시 같다고 하는 말에 할머니는 함박웃음을 웃으신다.
주안상 내력 간직한 대초미 마을
동백마을을 나와서 백수해안도로를 만나 좌회전. 차는 바다를 왼쪽에 두고 달린다. 그 길에서 만난 대초미마을. 이름 없는 백사장과 갯벌이 망망하게 펼쳐졌다. 마을 안쪽에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이 있으며 그 위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물이 차면 다리 밑으로 배가 드나들고 물 빠지면 강바닥이 드러난다.
강의 끝 바다의 시작, 그 지점에서 뻘에 구멍을 파 집을 짓고 사는 칠게의 군무를 볼 수 있었다. 수백마리의 칠게가 일제히 구멍으로 들락거리는 모양이 볼만 했다. 칠게들의 군무 뒤로 빈 배 한척이 강바닥에 배를 드러낸 채 기울어 있다.
하릴 없이 시간만 가는 바닷가 작은 마을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바닷가 횟집 주인아줌마가 나오기에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봤다. 그중 강 건너 산기슭에 있는 집 얘기가 이 곳 풍경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여년 전 일이다. 그 집은 술을 팔던 주막집이었단다. 물이 빠졌을 때는 돌다리를 건너갈 수 있었지만 물이 들어 올 때는 배를 타고 건너거나 다리를 건너야 했다. ‘배를 타고 가는 주막집’이라, 생각만 해도 술 맛이 절로 난다.
주인 떠난 빈집은 멀리서 바라보기에도 삐걱거리며 힘겹게 서있는 것 같다. 낯선 우리들이 궁금했던지 어르신들이 서너분 나오신다. 게 뭐 볼 거 있냐고 핀잔하시지만 눈초리에 실웃음이 핀다. 그냥 그곳에 앉아 어르신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누며 주막집 주안상의 내력이나 한번 들어나 볼까! 하루해가 저물고 있다.
다랑가지식당 굴비구이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마라난타, 그리고 법성포 굴비
영광굴비는 칠산 바다에서 잡힌 고기를 법성포에서 가공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영광의 염전에서 나는 소금으로 간을 한다.
칠산 앞바다, 법성포항의 굴비 호황은 옛날 같지 않지만 지금은 굴비를 말리고 냉동시켜 파는 집들과 굴비정식을 파는 식당 등이 그 거리에 즐비하다.
마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다랑가지’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굴비정식을 맛봤다. ‘다랑가지’라는 상호에 대해 주인에게 물었더니 한자로 ‘多浪佳地’란다. ‘물결이 많은 아름다운 곳’ 정도로 풀어 쓸 수 있을까. 아무튼 법성포 항구보다 더 깊숙이 들어간 곳에 ‘다랑곶’이 있는데 그 이름을 살짝 바꿔 ‘다랑가지’로 부른다는 것이다.
영광굴비 한상 차려먹고 마지막 여행지로 출발. 법성포 항구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가 있다. 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첫 발을 디딘 곳이 법성포였다. 그래서 항구 이름이 ‘법성’이 된 것이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호남고속도로-정읍인터체인지-고창-영광-법성포(백제불교최초도래지)-백수해안도로-대초미마을-동백마을-하사리 염전, 두우리 염전
서해안고속도로-영광인터체인지-법성포(백제불교최초도래지)-백수해안도로-대초미마을- 동백마을-하사리 염전, 두우리 염전
대중교통 고속버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센트럴시티)에서 영광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20분까지 15대 운행. 밤 10시에 심야버스 운행. 약 3시간 40분 정도 소요. 영광 도착 후 법성포 행 시내버스. 법성포에서 백수해안도로 및 동백마을, 하사리, 두우리로 이어지는 코스를 시내버스로 돌아보기 어렵다.
<숙박>
법성포 굴비거리 주변에 모텔이 몇곳 있다.
골든비치모텔 : 061-356-0101
해비치모텔 : 061-356-1717
<음식>
영광하면 굴비다. 굴비정식 푸짐한 한상 차려 먹는다. 주변 굴비상가에서 굴비와 고추장굴비 등을 사도 좋다. 법성포에 굴비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여러곳 있다.
다랑가지식당 : 061-356-5588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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