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주변 사물을 가져다 도구로 이용하고 때론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써 동물들을 앞설 수 있었다. 돌도끼부터 현재의 스마트폰까지, 도구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완수토록 돕는다. 한 개인의 이동(locomotion)을 돕는 도구인 개인이동수단(Personal Mobility Vehicle)의 역사는 '자전거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제 가볍고 에너지밀도가 높은 리튬이차전지의 활용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전기보조동력 시스템을 갖춘 다양한 모습으로 세분화 변모하는 중이다.
본 머니바이크 '메커니즘' 시리즈 안의 시리즈 '개인이동수단의 미래' 편에서는 총 3회에 걸쳐 앞으로 어떤 도구를 개발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이동하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개발자의 비전'을 하나 만들어 보기로 한다.
개인이동수단의 미래는 ▲ 이 길이 그 길인가? ▲ 석학들에게 길을 묻다 ▲ 이 길이 그 길이다 등으로 먼저 '이 길이 그 길인가?'를 다룬다.
<b>말(馬) 없이도 달리는 이동수단</b>
1815년 4월 인도네시아 탐보라(Tambora) 화산 대폭발은 수억 톤의 화산재를 대기 중으로 흩뿌렸고, 이것은 다시 기류를 타고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흡사 지구 전체에 차광막이 둘러쳐진 상태가 되었다. 이듬해 유럽에는 여름에도 눈과 서리가 내리는 등 극심한 추위가 이어졌고, 이에 따른 광범위한 흉년으로 사람들은 기근에 시달리고 가축이 굶어죽는 일이 속출했다.
▲ 탐보라 화산 분화구(2009년 3월, 출처: NASA) 이 시기에 독일의 카를 폰 드라이스(Karl Freiherr von Drais)는 '말 없이도 먼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개인용 이동수단'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817년 6월 드라이스가 공개적으로 14km 거리의 주행을 시연한 발명품인 드라이지네(Draisine)는 나무 프레임에 나무로 된 두 개의 바퀴가 일렬로 결합된 형상이었다. 당시의 마차 제작기술은 정밀도와는 거리가 멀어 조향장치가 차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대했고, 구동장치(페달)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사용자는 두 다리를 노처럼 저어 걷거나 뛰는 동작으로 주행이 가능했다.
▲ 드라이스가 제작한 드라이지네(1817년, 출처: 'Draisienne' 위키미디어) 드라이지네 이전에도 두 바퀴를 일렬로 장착한 '탈것'이 있었다. 다만 그것에는 조향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방향을 바꾸려면 앞바퀴를 들어서 옮겨야 했다는 큰 차이(단점)가 있었기에, 핸들 조작으로 균형을 잡아 나아가면서 방향전환도 가능한 드라이지네의 출현이 돋보이는 것이다. 즉, 드라이지네는 조향으로 균형을 잡는 기능을 갖추었기에 '최초의 자전거', '최초의 인간동력 이륜 개인이동수단'이 될 수 있었다.
추측컨대, 발명자 드라이스는 자신의 기계장치가 달리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참 달려 본 후에야 알아채고, 스스로도 매우 놀랐을 것이다. 바퀴 달린 이동수단이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발로 땅을 밀어 추진력을 얻을지라도 발동작보다 더 빠르게 멀리 주행할 수 있다.
<b>자동평형 기능을 갖춘 이동수단</b>
자전거의 탄생으로부터 200년이 흐른 지금, 개인이동수단 영역에서 최고의 화두는 '전기 보조동력의 사용'이다. 누구나 한번쯤 적어도 실물을 한번 구경은 했을 법한 전기자전거의 경우, 발전된 국가들은 성능에 법적 제한을 두는 것을 전제로 전기자전거를 자전거로 인정함으로써 보급을 촉진하고 있다(※ 2012년 현재, 한국에서 전기자전거는 법적으로 자전거가 아닌 원동기장치자전거(저출력 오토바이 개념)이다 - <a href="http://bike.mt.co.kr/articleView.html?no=2012030911332821776&sec=policy" target=_new>관련기사</a>).
그런데 최근, 전기자전거를 포함한 '전기동력 개인이동수단' 중에서 단연 새롭고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끄는 것은 자동평형(self-balancing) 기능을 갖추어 탑승자의 균형 잡는 수고를 덜어주는 개발품들이다. 혼다나 도요타 등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미래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듯 콘셉트 개발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중이다.
▲ 도요타 윙글렛(Winglet, 좌)과 혼다 유쓰리엑스(U3-X, 우). 윙글렛은 2008년 그리고 유쓰리엑스는 2009년에 각각 소개되었다. 두 모델 공히 이동속도는 약간 빠르게 걷는 수준인 6km/h를 제시했다. 개인이동수단 영역에서 '하이테크(high-tech)'로 지목받는 자동평형 기술, 이것은 과연 개인이동수단의 미래인가?
<b>자동평형 개인이동수단의 원조, '세그웨이'</b>
세그웨이(Segway)는 미국의 발명가 딘 카멘(Dean Kamen)이 1994년에 특허를 출원하고 그가 설립한 의료기기 전문 개발업체 데카 연구소(DEKA R&D Corporation)에서 개발되었으며, 2001년에 소개 및 2002년 세그웨이社(Segway Inc.)에서 출시하였다. 개발에는 총 10년의 기간 동안 1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 세그웨이 투어 모습. 최고속도는 20km/h로서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보행자와 함께 인도로 다니는 것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걷기’를 장려하는 단체와 장애인 단체는 세그웨이의 인도 진입을 반대하고 있다. (출처: ‘Segway tour DC’, 위키미디어) 출시 전 미국에서는 성공적인 입소문 마케팅(또는 스토리마케팅)에 의해 "반중력 장치로 이동한다" 또는 "스티브 잡스가 평가하길 인터넷보다 더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는 등 뜬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으나, 2001년 12월 ABC뉴스를 통해 실물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세그웨이의 '전기스쿠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후 드러난 스티브 잡스의 진짜 평가는 "형편없다(I think it sucks)"였다.
또한 발명자 딘 카멘은 "세그웨이가 '걷기'보다 안전하다"고 강조해왔으나, 2010년 초 세그웨이社를 인수한 영국의 억만장자 사업가 제임스 헤셀덴(James Heselden)은 같은 해 9월 자신의 별장에서 세그웨이 사고로 사망했다.
<b>자동평형 기술은 개인이동수단의 미래가 아니다</b>
적어도 전부는 아니다.
세그웨이의 1994년 원천특허는 권리범위가 매우 넓어 윙글렛과 유쓰리엑스를 포함한다. 등록된 청구항에 서술된 기술의 구성은 지극히 단순하여 첫째 사람이 딛고 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둘째 그 발판에는 구동장치가 구비되며, 셋째 그 구동장치가 사람의 균형을 잡아주도록 자동평형 기능을 갖추기만 하면 어떤 형태의 이동수단이든 세그웨이 특허기술에 포함된다.
짚어볼 부분은 이 기술이 '얼마나 돋보이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제공하는지'이다. 사람이 세그웨이에 올라 이동함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첫째 사람이 세그웨이에 올라 탈 때 세그웨이는 사람의 평형유지 능력을 빼앗는다(불필요하게 만든다). 둘째 세그웨이가 사람의 운동능력을 대신해 추진력을 제공한다. 셋째 세그웨이가 사람의 평형유지 능력을 대신해 내장된 자동평형 기능을 제공한다. 세그웨이의 탑승자는 자신의 평형유지 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세그웨이의 전기동력과 자동평형 기능을 얻는 것이다. 이는 '걷기(보행)'의 대체(전자동화)를 의미한다.
기실 이 세그웨이라는 이동수단은 역시 자동평형 기능을 갖춘 휠체어인 아이봇(iBot)의 변형 모델인데, 아이봇은 걷기가 불편한 장애인이 탑승할 경우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의 이동은 물론이거니와 균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차체를 세워 탑승자가 그 옆에 선 정상인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 아이봇(좌)과 세그웨이(우) 특허 도면. 1994년 이 세 개의 도면은 하나의 특허문서에 모아서 실렸으며, 전기휠체어인 아이봇과 전기스쿠터인 세그웨이는 사실상 동일한 특허기술이다. (출처: Dean Kamen, US5,701,965 Human Transporter, 1994.05.27출원) 위에서 아이봇에 올라앉은 탑승자가 장애인이 아니라면, 이것은 여전히 효과적인 이동수단인가? 이러한 시선으로 '걷기의 대체'를 시도한 세그웨이를 바라보면 자동평형 기술은 개인이동수단 구성 기술 중 일부 옵션으로서 전체적인 기능을 부분적으로 보조하는 데는 유용할 수 있어도 그것이 핵심기술이 되지는 못 할 것이다. 물론, 세그웨이를 타는 재미는 인정한다.
<b>석학들에게 길을 묻다</b>
다음 편에서는 개인이동수단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개발해 어떻게 세계시장을 주도해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관련된 기술개발과 디자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로부터 고견을 들어 공유하고자 한다.
[신병철의 메커니즘 관련기사]
<a href="http://bike.mt.co.kr/articleView.html?no=2012070909505791310&sec=bike" target=_new>1. 일본 자전거산업의 영웅, 오자키 노부오</a>
<a href="http://bike.mt.co.kr/articleView.html?no=2012070213543533204&sec=bike" target=_new>2. 최고의 자전거 변속장치 '디레일러'</a>
※ 본 연재물은 생산기술연구원 자전거종합연구센터(윤덕재 센터장)가 진행 중인 '자전거 특허기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