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가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 담합의혹으로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ELW(주식워런트증권) 부정거래 관련의혹을 제기했다가 재판과정에서 참패한 검찰의 사례처럼 단순히 정부당국의 과잉대응 해프닝으로 끝날지, 혹은 그간 드러나지 않은 금융계의 어두운 모습이 확인될 수 있을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CD금리만 3개월 이상 그대로 유지
이달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유진투자증권, 대신증권, 리딩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부국증권, 한화증권, HMC증권, KB증권, KTB증권, LIG증권 등을 대상으로 CD금리 담합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18일에는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9개 시중은행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CD금리 담합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사실상 금융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실제로 시중금리 지표의 하락세에도 CD금리만 유독 일정기간 1bp(0.01%)도 변하지 않은 채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등 이상징후를 보인 바 있다.
CD는 신용등급 트리플A 이상의 시중은행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서다. 또 여타 금융상품처럼 자본시장에서 매매된다. CD거래 중개규모가 큰 10개 증권사들이 매일 당일의 매도·매수호가를 모아 금융투자협회에 보고하면 금투협은 이를 평균내 당일의 CD금리를 발표한다.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당일 거래상황에 따라 CD금리는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10개 증권사의 매매호가를 매일 접수해 평균내는 만큼 변동폭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유통된 CD 91일물의 금리는 지난 4월9일 3.54%를 기록한 후 이달 11일까지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3.54%로 고정돼 왔다. 지난 7월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나서야 CD금리는 3.2%대로 떨어졌다.
반면 다른 금리지표들은 시장상황에 따라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처럼 경기둔화 우려가 제기되는 반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인하 추세가 올 들어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통화안정증권 1년물의 금리는 지난 4월초 3.5% 수준에서 이달 중순 2.8%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 금리 역시 3.5%대에서 2.9%대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유독 1bp도 움직이지 않고 유지돼 온 CD금리에 대해 담합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과거 영국 리보금리(런던 은행간 금리) 조작사태가 적발된 점도 공정위의 조사를 초래한 원인이다. 영국 리보금리 역시 시중은행의 차입금리를 보고받아 평균내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은 차입금리를 실제보다 낮춰 보고토록 함으로써 자금조달 비용을 줄이려 했던 사실이 적발됐다. 이 때문에 영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금융당국은 자국 주요 은행의 금리조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사진_류승희 기자
◆증권업계 "외형만 보고 의혹 제기" 반발
국내에서 CD금리는 변동금리 조건으로 집행되는 각종 대출의 기준금리로 쓰인다. 지난 3월말을 기준으로 은행권 전체 대출(1080조원) 중 30%인 324조원이 CD금리에 연동된 변동금리 대출로 ▲은행 가계대출의 37%인 166조원 ▲주택담보대출의 38%인 117조원 ▲기업대출의 24%인 144조원이 CD금리와 연동돼 있다.
CD금리가 실제 시중금리에 비해 높은 상태로 유지된다면 은행이 차입자에게서 거두는 이자수익도 높게 유지된다. CD금리가 10bp(0.1%)만 떨어져도 시중은행의 이자수익은 3240억원이나 줄어든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여타 금리지표와는 달리 높은 수준에서 유지돼 온 CD금리의 배경에 은행이나 증권사의 담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공정위 조사가 진행되면서 한때 "모 금융사 한곳이 과징금을 감면받기 위해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했다"는 설이 돌아 증권업계가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다. 증권사들은 저마다 "우리는 자진신고한 사실이 없다", "사실무근이다"며 해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공정위가 CD의 발행·유통 현황을 무시하고 CD금리가 고정된 상태로 유지된 '외형'만 본 채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CD발행잔액과 유동성이 급감한 모습이 나타났다.
CD발행액은 2009년 12월 예대율 규제 도입 및 은행의 예금유입 증가 등의 이유로 급감하기 시작했다. CD금리 산정기준이 되는 시장성 CD 발행잔액은 2008년말 20조원에서 올 6월말 2조40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시장성 CD의 월 평균 발행금액 역시 2008년 7972억원에서 올해 1250억원으로 급감했다.
CD거래 자체가 부진한 지는 더 오래됐다. 한국거래소의 경우 1999년 옛 선물거래소가 상장시킨 CD금리선물을 2007년 말 상장폐지시킨 바 있다. CD금리선물은 CD금리의 변동성이 클 경우 이를 헤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품이다. 하지만 이미 2007년에도 CD유통규모가 적어 CD금리 현물의 변동폭은 작았고 CD금리선물에 대한 수요도 없었다.
특히 금융권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가 한창이던 7월19일의 경우 CD 총 거래규모는 100억원에 불과했다. 17~18일에는 CD거래 자체가 아예 없었다. 거래가 없는 경우는 채권딜러들이 가격을 문의하는 과정에서 파악되는 시장금리를 기준으로 CD금리가 정해진다. 하지만 그 문의조차도 없는 경우에는 전날의 금리수준이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서 한동안 거래 자체가 없었던 종목의 주가가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특정상태로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 구조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당국 관계자들과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CD금리 등 단기지표금리 제도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했다. 이 TFT는 지난 19일 첫 회의를 열고 최근 시중금리와 동떨어진 상태로 형성되는 CD금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기존 단기금리지표를 보완키로 결정했다. 또한 CD발행과 유통을 늘려 금리조작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는 방안도 향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