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랑할 시간을 다시 주신다면 뜨거운 태양 아래 내 몸 다 녹아 흐른다 해도 당신을 향해 꽃피겠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하늘에 그대의 길과 나의 길이 오롯이 한 강물처럼 흐른다면 나 당신을 위해 꽃도 없이 뿌리로만 기어가겠습니다. 촛불 속 손가락이 견딜 수 있는 시간만큼만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신다면….
 
옛 것들의 도시, 부여. 부여에 가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진 옛 흔적이 있다. ‘마를 캐던 소년이 서동요를 불러 신라의 공주를 신부로 맞이했다’는 이야기로 더 잘 알려진 무왕. 우리는 지금 그가 만들어 놓은 궁남지, 낭만의 한가운데 서 있다.

‘서동요’에 얽힌 이야기에 의하면 백제 왕궁의 남쪽에 있던 한 연못에서 무왕의 어머니와 용이 서로 사랑을 한 뒤 무왕을 낳았다. 이야기에 나오는 ‘용’은 ‘왕’ 또는 ‘왕족’의 한 사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무왕은 왕족의 핏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족의 핏줄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마를 캐며 살아야 했다. 집은 물론이고 제 나라인 백제마저 떠나야 했다. 그런 그가 600년 백제의 30대 왕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역경과 고난은 그에게 독보다는 약이 됐다. 
 


◆궁남지, 다른 세상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무왕을 세상에 있게 한 장소가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었고, 사랑을 향한 무왕의 낭만적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곳도 궁남지다. 무왕은 집권 말기에 궁의 남쪽에 거대한 인공연못과 인공산을 만들고 그곳을 ‘궁남지’라 불렀다.

사랑하는 마음은 이름 없는 연못에 이름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었다. 지금도 궁남지를 걸으면 곳곳에서 사랑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궁남지의 당시 규모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연못 크기만 1만~3만평 정도다. 그러나 이것이 그 전체가 아니라 일부라는 것이다. 연못의 이름도 처음에는 큰 연못이라는 뜻의 ‘대지(大池)’였다. 얼마나 넓었기에 왕이 만든 연못에 다른 이름을 갖다 붙이지 못하고 그저 ‘대지’라 했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산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지 못할 뿐이다. 

어디 규모뿐이겠는가. 삼국사기에 보면 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연꽃의 바다, 그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그 옛날 무왕의 발걸음 위로 내 발걸음이 포개진다. 무왕은 아들인 의자왕에게 왕권을 넘겼고 의자왕 대에 백제의 역사가 단절된다.

시대의 끝에서 백제의 부활을 꿈꾸었던 무왕의 혼이 후세에 전해져 이곳에 저렇게 많은 연꽃을 피어나게 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한 여인을 향한 한 사내의 마음이 끝도 모를 인공의 연못과 그 연못 속 인공산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이 그의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타지마할’. 그 보다 천 년 전 이미 무왕은 한 여인을 위해 10km 밖에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들였고, 그 물로 끝 모를 넓이의 인공호수를 만들었으며, 그 호수 안에 인공으로 산을 쌓아 사랑의 부활을 꿈꾸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위대한 사랑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을 뿐이다.

처서가 지났다지만 한 낮 태양은 여름의 그것보다 더 작렬한다. 여린 꽃잎일지언정 무왕의 사랑이 전해지는 이곳이라면 한여름 혹독한 자연을 다 이겨내고 다시 만날 새로운 세상을 약속하듯 연꽃은 저렇게 피어야 한다.

하늘을 향해 꽃잎을 벌린 연꽃 위로 여름도 가을도 아닌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땀방울 솟은 여행자의 이마도 쓰다듬는다. 작게나마 옛날처럼 만들어 놓은 궁남지 연못으로 수양버들은 가지를 늘어뜨렸으며 건듯 불어가는 바람에 긴 가지가 흔들린다. 햇볕 아래로 그늘 사이로 오가며 호수와 연꽃밭을 기웃거리는 한 쌍의 남녀가 보인다. 호수의 분수가 물보라를 일으키고 그 옆으로 버드나무가 낭창거리는 풍경 앞에 멈춘 그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깔깔대는 웃음소리마저 사진에 인화될 것만 같다.

뒤돌아서 나오는 등 뒤에서 연인의 웃음소리가 여운으로 남는다. 혹시 연꽃과 함께 부활한 백제의 사랑이야기는 아닐까! 


익산 왕궁리 5층석탑

◆미륵사지, 무왕의 꿈

무왕은 집권 이전부터 수도를 익산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무왕이 왕위에 오른 그 이듬해부터 시작됐다.

익산 금마면에 가면 미륵사지가 있다. 절터가 여의도공원보다 넓다. 아직도 그 규모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절의 세부적인 아름다움 또한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무왕이 수도 부여가 아닌 익산에 당시로서는 어느 나라 어떤 시대에도 없었던 규모의 절을 세운 것은 천도 계획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현재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다. 백제의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면서 정림사라는 절을 세웠다. 천도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발판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천도에 따른 견제세력의 입김을 잠재우고 백성들의 걱정을 없애며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에 적절한 것이 종교였으며 불교가 널리 퍼진 백제에서 큰 절을 세우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의 사상적 구심으로 충분했다. 익산의 미륵사 또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여겨졌다.

익산 금마면 미륵사지에서 동쪽으로 5km 정도 되는 거리에 왕궁면 왕궁리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 이름이 왕궁리였다는 것이다. 우연치 않게 지금 왕궁리 일대는 왕궁 터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이 어느 시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지에 대한 설은 분분하지만 그 가운데 백제의 왕궁터라는 이야기도 있다. 역사적 상상력으로 옛 이야기를 편집한다면 미륵사와 새로운 왕궁이 불과 5km 안팎의 거리에 있었다는 말이고 그것이 백제 말기 무왕 대에 진행되던 국가적인 사업이었다면 무왕의 익산 천도는 백제 부흥의 새로운 꿈을 담고 추진했던 일임에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도 이전 계획은 이룩되지 못했다. 익산 천도가 성공했다면 백제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미륵사지 드넓은 뜰을 걷고 있는 여행자의 상상이 끝을 잡을 수가 없다.

무왕이 집권 말기에 건설한 부여의 궁남지가 그의 낭만적 카리스마가 넘치는 곳이라면, 익산의 미륵사지는 국가를 통솔하는 권력의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옛 미륵사지 앞에 서있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이 거대한 탑 같다. 그 하늘 그 구름탑을 이고 드넓은 초원 같은 미륵사 절터 안으로 들어간다. 머릿속에서는 옛 절의 건물과 석탑, 석등 등이 원래의 모습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이 연못은 속세와 비속을 나누는 극락강 쯤 되겠지. 연못을 지나면 물의 정화력으로 속세의 죄가 씻기고 불토의 세계로 새로운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좌우로 유명한 미륵사탑이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그 가운에 신라의 황룡사9층탑 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탑이 미륵사탑을 거느리고 서 있다. 그곳에서는 계단 하나 오를 때마다 깨달음 하나 얻을 것이며 탑 한 번 돌아 합장하고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꿈꾸던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갔을 것이다.

상상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이미 마음 속에는 미륵사 옛 절의 모든 것이 그대로 지어졌으며 현세에 평등의 세상을 이룩하고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미륵이 깃들었다.

왕족의 핏줄임에도 마를 캐며 살아야 했던 무왕은 미륵부처의 힘으로 평등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평등과 사랑의 진리를 무왕은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여행정보]

<길안내>

*익산 미륵사지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천안JC에서 천안․논산 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익산IC - 720번 도로 금마면 방향 - 금마사거리에서 우회전 - 금마면 소재지 지나 722번 도로 - 미륵사지

대중교통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센트럴시티)에서 익산 행 버스가 자주 있다. 서울남부버스터미널과 동서울버스터미널에도 익산 행 버스가 있다. 기차는 용산역에서 타면 된다. 기차도 자주 있다.

현지교통
익산역 버스정류장에서 41. 41-1. 60. 60-1번 버스를 타고 미륵사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부여 궁남지

자가용 
서해안 고속도로 당진JC에서 당진․상주 고속도로로 진입 - 서공주JC에서 서천·공주 고속도로로 진입 - 부여I.C - 궁남지
천안~논산 고속도로 서논산 IC에서 나와 4번 국도를 따라 부여로 진입 - 궁남지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부여 행 버스가 자주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 8회 운행. 기차는 용산역에서 타고 논산역에 내려서 논산~부여 간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부여버스터미널에서 궁남지는 약 1.3km 정도 거리다. 걸어갈 만하다.

<음식>
부여 시내 방울이네숨두부(041-833-7772)는 두부 요리로 유명하다. 부소산성입구에서 500m 정도 떨어졌다. 직접 만든 두부로 끓이는 숨두부찌개가 맛있다.

<숙박>
*백제관광호텔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041-835-0870
*롯데부여리조트 :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041-939-1000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 부여 기와마을 내 민박집이 몇 곳 있다. 
*미륵사지와 가까운 익산 금마면소재지에 모텔이 몇 곳 있다.
*익산 고속버스터미널 옆 그랜드관광호텔 : 063-843-7777

<관광 문의>
*궁남지 : 입장료 및 주차료 없음. 문의 : 041-830-2330. 
*익산 미륵사지 : 입장료 및 주차료 없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 휴관. 문의 : 063-290-6784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