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목적에서다. 주요국의 양적완화 조치는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놨다. 이 덕분에 4월 이래 4개월에 걸쳐 침체일로를 걷던 코스피지수는 단숨에 2000을 회복했다.

 

막대한 유동성이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는 모습이지만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있다. 풍부한 자금이 위험자산에 쏠리면서 자산가격과 환율흐름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자산가격이나 환율동향은 기업의 원가 및 수익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유동성 장세라는 하나의 변수로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유동성효과 1> 원자재가격 상승

 

글로벌 유동성 증가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다. 유럽이 단기국채 무제한 매입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키로 하고 미국 역시 3차 양적완화를 단행하면서 글로벌 원자재·상품가격은 본격 급등했다. 

 

지난 9월19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 기준 1온스당 금 가격은 1769달러로, 지난 2월 말 연고점(1806.60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금 가격은 지난 5월 1536.20달러로 저점을 찍은 후 8월 들어 본격 상승랠리를 이어갔다. 7월31일 1610.50달러였던 금 가격은 이날까지 9.84% 올랐다. 은 1온스의 가격도 7월 말 27.90달러에서 9월19일 34.52달러로 23.73% 상승했다. 

 

금·은 등 귀금속 가격은 글로벌 유동성이 늘어날 때, 즉 화폐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시기에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화폐성격이 강한 이들 귀금속 외에도 산업용 수요를 대변하는 원자재 가격까지 오른다는 점이다.

 

구리 1톤 가격은 7월 말 7581.00달러에서 최근 8323달러로 9.79% 올랐다. 납(16.70%) 아연(13.81%) 니켈(11.13%) 주석(18.28%) 등 산업금속의 가격도 최근 2개월새 급등세를 이어갔다. 

 

최근 유가가 소폭 조정을 받고 있지만 역시 2개월 전에 비해 급등한 상태다. 두바이유 가격은 1배럴당 110.39달러로 7월 말 99.14달러에 비해 11.35% 올랐다. 미국 WTI(서부텍사스유)나 영국 북해 브렌트유의 경우도 두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상승은 기업의 원가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최근 원자재 가격상승은 경기반등에 대한 확신이 아닌 유동성 때문에 초래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선진시장은 물론 중국 등 주요 신흥국마저 성장세가 고꾸라지는 시점에서 원가상승은 기업에 달갑지 않은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들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수혜를 보는 기업들도 있다. 원자재 관련 재고자산 평가이익이 많거나 해당 원자재를 판매하는 기업이 수혜주에 속한다. 우리투자증권은 향후 귀금속과 구리, 아연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고려아연, 풍산, LS, 영풍 등을 수혜주로 꼽았다.

 

고려아연의 경우 아연제품 뿐 아니라 아연 제련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에서 금·은을 얻는다. 구리가격 상승 시에는 풍산·LS가, 아연가격 상승 시에는 영풍이 각각 수익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동성효과 2> 원화강세·엔화약세

 

글로벌 유동성 증가는 국가간 통화비율인 환율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유럽, 미국, 일본 등 글로벌 경제대국이 잇따라 양적완화를 실시키로 하면서 이들 통화의 약세가 예견돼 왔다.

 

전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약세가 단연 눈에 띈다. 달러화의 약세는 달러와 주요 6개국 통화간 비율을 의미하는 달러인덱스에서 확인된다. 달러인덱스가 높으면 달러화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달러인덱스가 낮으면 달러가치도 낮다는 뜻이다.

 

지난 7월24일 달러인덱스는 84.14로 연고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이달 19일에는 79.12로 5.97% 낮아졌다. 달러화의 약세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요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던 엔화의 강세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지난 3월 엔/달러 환율은 83.86엔에서 이달 13일 77.46엔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BOJ(일본중앙은행)의 양적완화 발표 후 다시 80엔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주요국 통화약세가 이어지며 원화는 상대적 강세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 1184.00원을 고점으로 지속 하락하다가 이달 중순 들어 연 저점 수준인 1115원대로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원화강세는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경제에 악재로 여겨진다. 글로벌 주요시장에서 달러로 환산된 제품가격이 상대적으로 오르는 등 원가부담이 커지기 때문. 특히 한국과 주요 수출시장에서 경합도가 높은 일본의 엔화약세는 한국기업에 비해 일본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010년 하반기에 삼성경제연구소는 한·일 수출경합도를 0.56으로 평가했다. 수출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양국 기업의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0에 가까울수록 경쟁정도가 약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동차 업종의 경우 수출경합도가 0.91에 달했고 조선이나 철강 등 업종의 수출경합도도 0.86, 0.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양적완화 조치가 발표된 지난 19일 주가흐름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현대차, 기아차의 주가는 각각 2%, 3% 하락하며 코스피200지수 편입종목 중 낙폭이 가장 큰 종목군에 꼽혔다. 조선업 주요 종목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도 약세로 반전했다.

 

하지만 원화강세·엔화약세로 모든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엔화부채가 많거나 대일(對日) 수입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환차익이 발생할 수 있어 수혜주로 꼽히기도 한다. 

 

이선엽 신한금융투자 시황팀장은 포스코, 한국가스공사, 롯데제과 등이 엔화부채가 많아 원화강세·엔화약세가 본격화될 때 영업외이익 부분에서 지표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한국정밀기계, 화천기공, 넥스턴,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위아 등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제품비중이 높은데 원화강세·엔화약세 시기에 매출원가를 낮춰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환율만 기준으로 삼았을 때의 얘기다. 현실에서는 환율로 인한 영향이 유동성 장세로 인한 영향과 뒤섞인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증시가 유동성 흐름에 좌우되는 만큼 환율효과는 유동성 효과에 가려질 것"이라며 "환율동향을 너무 의식하기보다 유동성 장세의 혜택이 쏠리는 종목에 주목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