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결혼식을 올린 양모씨(30). 양씨는 웨딩촬영을 위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옷이 한가득 들어있는 여행용 가방과 반짝반짝 광을 낸 구두 한켤레를 들고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집에서 나온 양씨는 지금은 부인이 된 예비신부와 대학교 후배 한명을 태우고 촬영 장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두시간 후 이들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허브농장이다.
 
양씨 부부는 결혼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에 웨딩촬영을 스튜디오에 맡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평소 사진에 취미가 있는 후배에게 부탁했다. 수고비는 축의금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이들은 첫번째 목적지에서 서둘러 사진을 찍은 뒤 프랑스 마을을 연상케하는 청소년 수련원과 박물관 등을 돌며 촬영을 계속했다. 긴 하루를 마친 이들은 자정이 다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양씨는 "햇빛이 뜨거운 무더운 날씨에 좁은 차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직접 코디에 연기, 연출까지 하느라 무척 고단했지만 그 이상으로 의미가 있었다"고 얘기했다.
 
경기불황이 소비풍속도를 바꿔 놓고 있다. 얇아진 지갑 만큼 알뜰한 지출을 하려는 '新자린고비'들이 늘었다. 저가형 제품으로 실속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저렴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몇십분씩 줄을 서거나 발품을 파는 것도 예삿일이 됐다. 또 대형마트에서 크게 망설이지 않고 카트 한가득 쇼핑을 하는 대신 진열대 앞에서 물건을 몇번씩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이 더 익숙해졌다.
 
 
◆결혼식도 실속이 먼저
 
불황이 지속되면서 결혼식 풍경도 변하고 있다. '그래도 평생에 한번인데…'라는 생각에 당장은 버겁더라도 '비싸고 좋은 것'을 찾아 헤매던 예비 신랑신부의 모습은 줄어들었고 그 자리는 알뜰하고 실속 있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채우고 있다.
 
결혼의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스튜디오 촬영'은 최근 들어 선택사항이 됐다. 그동안 웨딩업계에서는 스튜디오 촬영은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의 줄임말)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필수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에는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하고 결혼식 촬영만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웨딩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스튜디오 촬영을 안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는 10쌍 중 3~4쌍은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한다"고 말했다.
 
예물도 간소화되는 추세다. 이번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장모씨(31)는 예비신부와 서로 반지 하나씩만 나눠 끼기로 했다. 귀금속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세트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커플링만 맞추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그나마도 고가보다는 중저가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결혼식장 비용을 아끼기 위해 '예식장 역경매'를 이용하는 커플도 늘고 있다.  예식장 역경매란 예비부부가 예식장 형태와 하객수, 피로연 가격 및 메뉴 등 원하는 조건을 인터넷사이트에 올려놓으면 웨딩홀 업체들이 입찰하는 방식이다.
 
 
 
◆"리터당 140원 싼데 20분쯤이야"
 
"리터당 100원 넘게 싼데 10~20분쯤 기다리는 거야 문제될 게 없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는 기름값 때문에 주유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는 차량들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주유소. 이곳은 서울시내에서 '제일 싼 주유소'란 소문이 나면서 언제나 차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특히 주말이 되면 차선 하나를 가득 메우고 늘어선 수십대의 차량이 명절 고속도로를 연상케 할 정도다. 이 주유소 관계자는 "평일 낮 시간에도 자동차들이 줄을 선다"며 "최근에는 기름값이 계속 올라서인지 줄이 더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주유소의 휘발유값은 리터당 1959원(9월19일 기준)으로 서울시내 주유소 평균 2099.41원보다 140원 이상 저렴했다.
 
직장인 김모씨(33)는 "일산 쪽에 살고 있는데 집 주변보다 리터당 100원 이상 싸게 기름을 넣을 수 있어서 평일에 한번 정도는 회사(마포지역)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이곳에서 주유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배달 일을 하는 40대 택배기사 조모씨도 항상 이곳에서 기름을 넣는다고 했다.
 
 
◆추석선물도 저가형에 몰려
 
추석선물도 실속형 제품에 소비자들이 몰렸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의 추석선물세트 매출은 지난해보다 221% 증가했다. 이중 3만원 이하 저가제품을 구매한 고객은 57.9%로 작년(46%)보다 크게 늘었다. 
 
2만~3만원짜리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39.1%로 가장 많았고 3만~5만원(38.5%), 2만원 이하(18.8%)가 뒤를 이었다. 5만~10만원, 10만원 이상은 2.7%, 0.9%에 불과했다. 홈플러스도 2만5000원 이하 저가제품 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백화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판매실적은 늘었지만 고객 1인당 매출(객단가)은 떨어졌다. 롯데백화점의 추석 선물세트 판매는 지난해보다 10% 증가했고 같은 기간 객단가는 25만원에서 20만원으로 내려왔다. 저렴한 물건을 산 고객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현대백화점에서는 '실속세트'로 기획한 15만원·11만원짜리 한우세트가 가장 많이 팔린 제품 1∼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신세계백화점에서는 건강식품 중 5만원 이하 실속상품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320%나 증가했다.
 
 
◆비싼 걸 왜 사?…렌털 수요↑
 
'신 자린고비'들은 구매부담을 줄일 수 있는 렌털 상품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롯데홈쇼핑이 지난달 판매한 전기레인지 렌털상품은 한시간 만에 37억원이나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분당 주문금액이 6200만원에 달한다. 이 상품은 독일 가전전문회사 '틸만'의 전기레인지를 월 4만9900원을 내고 36개월간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렌털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자 홈쇼핑업체는 편성 비중과 상품군을 확대했으며 오픈마켓도 렌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11번가는 디지털 TV, 노트북, 데스크톱 PC, 냉장고, 세탁기 등 렌털상품을 월정액으로 이용할 수 있는 '렌털의 품격'을 운영 중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