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에 ‘오너의 딸’들이 전진 배치되고 있다. 한동안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았던 이들이 그룹내 주요 보직을 맡으며 경영일선에 나서거나, 계열사 입사를 통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한 사례가 속속 포착되고 있는 것. 

특히 이들 대부분이 해외 유학파로 글로벌 감각을 지닌 데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갖추고 있어 향후 식품업계 판도변화에 어떤 역할을 할 지 주목된다.

최근의 식품업계내 ‘여풍’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대상그룹. 대상 측은 얼마 전 임창욱 회장의 차녀인 상민(33)씨를 (주)대상의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부장)으로 임명, 그룹 경영에 본격 등장시켰다.
 


◆대상 상민씨, 유학생활 청산후 '본부장'으로 현업 복귀
 
지난 2년간의 영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상민씨는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프로젝트 업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대상 측은 ‘유학 후 현업 복귀’라는 단순한 복귀수순이라는 설명이지만 재계에서는 상민씨의 본부장 선임을 놓고 대상의 후계작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놓는 분위기다.

이는 실제 상민씨가 보유한 대상그룹의 지주사 대상홀딩스의 지분규모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그는 대상홀딩스 지분을 38.36% 보유해 2.88%를 보유한 임 회장과 20.41%를 보유한 언니 세령씨(35)보다 월등히 많은 지주사 지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재계에선 상민씨의 경영 승계는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임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가 비록 대상HS(옛 와이즈앤피)의 대표를 맡고 있긴 하지만 이 회사가 론칭했던 외식브랜드 ‘터치오브스파이스’의 사업실패 이후 경영활동을 일체 중단한 채 아이들의 양육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매일유업' 윤지씨-'CJ' 경후씨, 계열사에서 '담금질'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의 딸 윤지씨(28)가 향후 식품업계를 이끌어 나갈 대표적인 ‘여걸’로 통한다. 그 역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매일유업의 유아용품 계열사이자 김 회장의 막내 동생인 김정민씨가 대표로 있는 제로투세븐에서 대리로 마케팅 실무경험을 쌓고 있다.

제로투세븐은 매일유업이 지분 50%를 갖고 있는데다 내년 초 상장을 추진하고 있어 윤지씨가 경영수업을 받기엔 제격인 '현장'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대표 식품그룹인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의 장녀인 경후씨(29)가 올 초 CJ에듀케이션즈에 대리로 입사해 근무 중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현재 CJ에듀케이션즈에서 교육콘텐츠와 관련한 신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후씨의 경우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나 CJ의 지분 0.13%와 CJ E&M 지분 0.28%를 보유해 CJ그룹의 경영승계에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도 담철곤 회장의 장녀 경선씨(27)가 그룹 계열사에 정식 입사하지 않았음에도 오리온의 마켓오 사업 등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월만 해도 오리온이 프리미엄 과자 '마켓오' 브랜드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했을 당시 직접 현장에 나타나 경영진의 발표 내용을 면밀히 체크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을 끈 바 있다. 현재는 경영컨설팅 회사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경선씨가 현재 갖고 있는 오리온 지분은 0.53%다.
 
◆'아워홈' 지은씨-'농심' 혜성·혜정씨, '실무경험' 축적

특히 재계에선 오리온 그룹의 경우 창업주 고(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이자 경선씨의 어머니인 이화경 사장이 그룹 사업 다각화를 성공시킨 대표적 여성 경영인으로 꼽혀온 만큼, 다른 그룹에 비해 향후 경선씨의 그룹내 역할범위가 이른 시간 내 확장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식품업계에서는 LG그룹 방계인 아워홈에선 구자학 회장(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3남)의 셋째 딸인 구지은 전무가 아워홈의 급식과 외식 부문의 신규사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녀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의 두 딸 혜성씨와 혜정씨 역시 농심의 주요 계열사에 입사해 실무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 소비자들이 대세를 이루는 식품업계의 특성상 여성 경영자들의 섬세한 감각이 경영행보에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않다"고 말했다.  

■ 식품업계 ‘딸’은 모두 해외파

아버지의 후광 아래 서서히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들 식품업계 딸들은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해외파 출신이다. 
 
대상의 상민씨는 2003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거쳐 런던 비즈니스 스쿨 MBA 과정을 마쳤다. 매일유업의 윤지씨 역시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고 CJ그룹 경후씨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학위를 끝냈다. 오리온그룹의 경선씨마저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해외파 '오너 딸'이다. 

재계 관계자는 “유학파 일색인 식품업체 오너의 딸들이 향후 이들 회사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글로벌 식품회사로 성장하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다만 아직까지는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만큼 현장경험 등 경영수업을 받는 지금의 과정이 이들 ‘딸’에게는 중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