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앞으로 4년간 더 미국을 이끌게 됐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은 것처럼 미국 의회 구성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6일(현지시간) 대선과 함께 상원의원의 3분의 1, 하원의원 전체를 다시 뽑는 총선이 치러졌지만 결과는 현재와 같이 상원은 민주당이,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양당 분열구도였다.
문제는 상·하원을 각각 여당과 야당이 나눠 차지하는 구도가 유지되면서 앞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필요한 의회와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오바마 정부, '재정절벽' 피할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의회가 별다른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내년 1월1일부터 자동적으로 세금이 인상되고 예산은 삭감되는 '재정절벽'이다. '재정절벽'은 각종 감세안이 연장이 되지 않으면서 일률적으로 세금이 인상되는 데다 기계적으로 목표한 금액 만큼 예산이 깎이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화될 경우 미국경제에 상당히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재정절벽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년에 미국경제가 0.5% 위축되고 실업률은 지난 10월 7.9%에서 내년 말에는 9.1%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CBO는 미국 의회가 설사 재정절벽을 피한다 해도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7%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 예상되는 올해 미국의 저조한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전직 이코노미스트였던 데이비드 스톡튼 피터슨 인스티튜트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이미 잃어버린 10년의 절반을 지났다"며 "우리가 재정절벽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최소한 잃어버린 10년과 추가적인 어려운 몇년이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용평가사 S&P는 의회가 올해 말까지 재정절벽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 해도 재정절벽의 실질적인 피해를 상당부분 피해갈 수 있을 만한 시기에 타협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P의 전망처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재정절벽을 걱정하지만 의회에서 협의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을 들어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재정절벽과 더불어 오바마 대통령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채무한도 증액이다. 현재 미국의 채무한도는 16조4000억달러. 하지만 미국의 누적부채는 이미 지난 10월 말 현재 16조2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현재 속도대로라면 오는 12월 중순이면 미국의 부채는 채무한도에 도달하게 된다. 채무한도를 늘리지 않는 한 미국 재무부는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릴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진다.
전문가들은 재무부가 예정된 국채 발행을 연기하는 방식으로 내년 2월까지는 채무한도를 늘리지 않아도 미국 재정이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정절벽은 내년 1월, 채무한도 증액은 내년 2월 무렵에 해결해야 미국경제와 글로벌경제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절벽과 채무한도 증액 모두 의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전세계는 지금부터 내년 2월까지는 계속 초조하게 미국 정치권의 협상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자 증세·재정지출 감축 등 해결능력 시험대
이 재정절벽과 채무한도 증액 협상이 맞물려 있는 사항이 세제 개편안과 예산 조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 증세와 재정지출 감축을 동시에 진행해야 미국의 재정적자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 증세와 관련,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일률적으로 인하해놓은 세율 가운데 최고소득 2개 구간만 3~4%씩 올리자고 제안해왔다.
공화당은 증세에 반대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공화당도 세수를 늘려야 한다는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세금 인상이 아니라 세금 탈루를 줄이고 경제성장을 통해 개인과 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벌어 세금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세수를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이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좀 더 초점을 두는 것은 재정지출 감축이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이 생각하는 재정지출 감축과 공화당이 고려하는 재정지출 감축은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 재정 가운데 앞으로 가장 적자가 심해질 항목은 고령자를 위한 공적의료보험인 메디케어다. 미국의 가장 큰 인구집단인 베이비부머가 퇴직하기 시작하면서 메디케어 비용은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야말로 메디케어는 미국 재정의 시한폭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메디케어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큰 이슈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메디케어에서 병원과 보험회사에 지불하는 비용을 낮춰 적자를 줄여나가자는 입장이다.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연간 일정금액 한도로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거나 일정금액 내에서만 메디케어를 이용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메디케어의 사례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복지혜택을 줄이는 재정지출 감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국방비를 대폭 줄여 재정지출을 줄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롬니 후보가 대선 때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공약한데서 알 수 있듯이 공화당은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과 안보에 관한 사안이니 국방비는 가능한 손대지 말자고 반박하고 있다. 대신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용 누수를 줄이고 좀 더 비용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고치자는 입장이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인 재정절벽 회피, 채무한도 증액, 증세 등은 모두 미국의 재정적자와 날로 누적되는 국가부채 문제의 해결과 직접 관계돼 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향후 4년간 미국의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가재정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체감되는 더욱 절실한 문제는 취약한 경제와 실업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미국 영토 내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체에는 더 큰 세금 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세제 개편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공화당도 찬성하는 내용이라 법 개정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지난해 제안했던 4억4700만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법안도 의회에 다시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안은 근로자와 기업에 대한 사회보장연금 급여세 인하와 도로 등 인프라와 학교 개보수에 대한 1750억달러 투자, 실업자 지원, 각 지방정부의 공무원 감원을 막기 위한 지방정부 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앞으로 4년간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는 재정 정상화와 일자리 창출, 이 두가지로 요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