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홈플러스는 3년 연속 대형마트 지속가능성지수(KIS) 1위에 선정됐다. KSI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 정도를 평가하는 국제표준을 기준으로 각 업종별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측정하는 모델이다. 홈플러스 측은 성장과 기여의 가치가 조화를 이룬 ‘존경 받는 큰 바위 얼굴’ 경영 모델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앞선 지난 5월 홈플러스는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체면을 구겨야 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56개사의 2011년 동반지수 평가에서 ‘최하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홈플러스 측은 “평가 과정에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동반성장지수 꼴찌와 사회적 책임 수행 1등. 한 기업에게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평가가 내려진 것은 왜일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착한 기업’을 외치지만 시장에서는 ‘나쁜 기업’으로 단단히 낙인 찍힌 상황. 최근 상생 경영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들끓으며 '공공의 적'이 되고 있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경영 방식을 두고 업계의 뒷말이 무성한 이유다.
사진_머니투데이DB
◆ '상생 판' 깨는 ‘체인스토어협회장’
지난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20 기업지속가능성포럼’ 현장. UNGC(UN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장을 맞고 있는 이 회장이 강연을 가졌다. 주제는 ‘자본주의 4.0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델’. 기업 시장가치와 함께 사회가치가 경영 체계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주제였다. 이 회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현재 홈플러스에서 시행중인 환경사랑, 나눔사랑, 지역사랑, 가족사랑의 ‘4랑 운동’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이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대외 과시용 말잔치일 뿐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회가치에 준하는 책임을 방기한 채 시장가치에 몰입하고 있으면서도 CSR 모델을 운운했기 때문. 국내 대형마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체인스토어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가 오히려 중소상인들과의 상생 모델을 무너뜨린 '몸통'으로 지목되는 분위기다.
대형마트와 중소상인이 상생을 위해 유통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한 지난 11월15일. 이날 체인스토어협회장 자격으로 발족식에 참석한 이 회장은 “전세계적으로 대형마트와 중소상인들이 수평적 산업관을 갖고 갈등 관계를 해결한 사례가 없었다”면서 상생 협의체 탄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곤 대형마트 신규출점 자제를 선언했다. 하지만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홈플러스가 경기도 오산에 신규 점포를 등록한 사실이 드러나 출범 초기부터 존립기반이 흔들리며 협의회가 삐그덕대고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 측에서는 “협의 전 이미 투자를 진행 중이던 곳이어서 출점 자제 대상이 아니다”는 논리로 대응했지만 비판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상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신규 출점을 진행하겠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악화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업계와 지자체에선 홈플러스가 일부러 상생 방안이 구체화되기 전에 출점을 서두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하다. 실제로 홈플러스 세교점은 지난 5월 영업규제를 피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가 아니라 쇼핑센터 형태로 등록 신청을 했다가 불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후 수개월간 등록 신청을 하지 않다가 상생 논의가 시작되자 갑자기 대규모 점포로 바꿔 절차를 밟은 시점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져 '계획적인 상생 역주행 아니냐'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홈플러스는 서울 관악구 남현점과 마포구 합점정 등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홈플러스는 이에 대해서도 "출점 자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마이동풍식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업형슈퍼마켓(SSM)과 관련해 지역 상인과 가장 많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곳 역시 홈플러스다. 국회지식경제위원회 박완주 민주통합당 의원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온 392건 가운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총 점포수 268개)에 대한 신청은 176건.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는 수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4랑 운동'의 취지가 무색하기만 하다.
◆대대적 영업조직 개편…실적 압박 때문?
외부적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홈플러스는 내부적으로도 매출 감소 등 경영 악화가 두드러지는 눈치다. 최근에는 본사인 테스코그룹의 비용절감 요구 등 압박이 더해지고 있어 이 회장으로서는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홈플러스는 지난 11일 영업조직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전국 지역본부를 총괄하는 영업운영부문장을 교체하고 지역본부를 9개에서 8개로 줄인 대대적인 조직개편이었다. 홈플러스 측은 “테스코그룹의 비용절감 요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분위기 쇄신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본부장 9명 중 5명이 교체된 이번 인사를 두고 업계에서는 매출 부진의 책임을 물은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그도 그럴 것이 홈플러스는 최근 지역상인과의 갈등이 격화되고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영업부문을 비롯해 직접적인 타격이 적지 않았다. 올 2분기 6~8월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38.7% 급감했으며, 총매출액 역시 2조1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는 실적 악화의 원인을 대형마트 의무휴업 탓으로 돌린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최근의 매출 정체는 마이너스 성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특히 의무휴업이 강화된 이후로는 매출 감소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인사가 진행된 시점 또한 공교롭다. 지난 10월 이 회장이 영국 테스코그룹 본사 방문 이후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본사로부터 실적 부진에 대한 강한 질책을 받은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업계의 뒷말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사인 테스코그룹의 실적이 악화된 상황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필립 클라크 테스코그룹 회장이 그 주된 원인으로 홈플러스를 직접 거론한 것으로 들었다”고 귀띔했다. 테스코그룹의 올 상반기 매출은 1.4% 증가하는 데 그쳤고, 이익도 10.5% 하락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 회장 입장에서는 경영 압박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며 “최근에도 유독 홈플러스에서 신규 출점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는 등 무리수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 아니겠냐”고 우려를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