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수출탑 세우고 아름다운 승계
 
지난 11월 ‘그룹출범’ 10년을 맞은 LS가(家)에선 사촌간의 ‘아름다운 경영승계’가 눈길을 끌었다.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사촌 형인 구자홍 현 회장의 뒤를 이어 내년부터 LS그룹 회장직을 수행키로 한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아버지와 아들, 혹은 친형제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사촌끼리도 별 잡음없이 경영승계를 이뤄낸 LS그룹을 보는 재계의 시선은 훈훈했다.  

그런데 최근 LS그룹과 마찬가지로 LG그룹에서 분가한 GS가 역시 경영권 ‘바통’을 사촌간에 넘겨준 장면이 연출돼 화제다. 사촌동생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퇴장’을 결심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주인공이다.
 


◆ 석유제품 ‘수출 1위’ 일군 ‘미스터 오일’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인데요, 뭐.”

허동수 회장은 지난 5일 ‘제49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국내 업체 중 최고인 ‘250억 달러 수출의 탑’ 수상을 자축했다. 하지만 그날은 GS칼텍스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마지막 수상 행보이자 실질적인 ‘은퇴’의 날이었다. 

전날 단행된 GS그룹 인사에서 허 회장은 CEO자리를 사촌동생인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내년 1월부터 지주사인 GS칼텍스 및 GS에너지의 이사회 의장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다. 서로 일을 나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자신의 ‘은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CEO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게 된 허 회장이지만 퇴장의 길은 그리 ‘섭섭지는’ 않다. GS칼텍스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254억 달러를 수출한 공로로 ‘250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면서 국내 수출 역사상 삼성전자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출규모의 회사로 기록된 덕분이다. 

'미스터 오일'로 불리는 허 회장은 연세대 화학공학과 60학번으로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에서 화학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에너지기업인 쉐브론 연구소에서 2년간 근무하고 지난 1973년 GS칼텍스의 전신인 호남정유에 입사해 40여년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 중질유→경질유 분해 ‘고도화 작업’ 큰 성과

생산·수급·기획 분야 등을 섭렵한 그는 1994년 대표이사 사장, 2003년에는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하며 올해까지 19년간을 GS칼텍스의 사령탑에 앉았다. 그동안 허 회장은 이론과 현장 실무를 겸비한 업계 최고의 '에너지 전문가'로 평가받으며 GS칼텍스를 국내 석유제품 수출 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GS칼텍스가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허 회장의 과감한 발상전환이 한몫했다.

1981년 GS칼텍스는 시설 확충을 통해 정제능력은 38만 배럴로 향상됐으나 곧 2차 석유파동이 밀어닥쳐 신설공장이 가동중단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허 회장은 오히려 원유 정제 후 남은 벙커C유, 아스팔트 등과 같은 중질유를 휘발유나 경유 등의 경질유로 분해해주는 고도화 시설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2004년부터 고도화 설비에만 5조원 가량을 투입했다.

그 결과 현재 GS칼텍스는 하루 21만5000배럴을 처리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중질유 분해시설을 갖추게 됐고,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뽑아낸 석유제품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공급하고 있다. 금액으로만 단순 비교해도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통관액 기준으로 306억 달러를 수입(원유)해 254억 달러를 수출(석유제품)했다. 약 83%의 외화를 회수한 셈이다.

이같은 허 회장의 집념으로 GS칼텍스는 1983년 2억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이래 2000년 100억 달러, 2008년 150억 달러, 2011년 200억 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다. 
 


◆ 의사회 의장 맡은 허동수, 향후 역할은?

GS칼텍스가 허동수 이사회 의장과 허진수 CEO의 ‘투톱 체제’로 재편되면서 이제 관심은 허동수 회장의 향후 역할범위에 쏠린다.

외형적으로 허창수 GS 회장의 친동생인 허 부회장은 GS칼텍스의 경영전반을 진두지휘하고, 허 회장은 이사회 의장을 맡아 최종적인 기업 내 의사 결정을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허 회장은 단순히 의사결정기구의 수장 역할 외에도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주주와의 협력관계, 해외사업 업무, 중장기 성장전략, 에너지사업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GS 관계자는 "이사회 의장과 CEO의 역할을 분리한 것은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조직의 전문성과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허 회장은 에너지 업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향후 이사회 의장으로서 GS칼텍스의 중장기 성장전략을 수립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GS칼텍스 신임 대표이사에 오르게 된 허진수 부회장은 지난 1986년 GS칼텍스에 입사한 이후 정유영업본부장·생산본부장·석유화학본부장·경영지원본부장 등을 지냈다. 회사 내에서 그는 생산·영업·재무 등 전 분야에 걸친 전문가로 통한다.


■ GS가 3·4세 전면 배치, 이유는? 

허동수 회장과 허진수 부회장의 ‘쌍두마차’ 체제에 시선이 쏠렸지만 GS그룹의 연말 인사에서 오너 3~4세 일가의 전면 배치 또한 주목을 끈다. 승진 등 인사대상 37명 중 6명이 오너 일가다.

4세 중 가장 먼저 임원을 단 허동수 회장의 장남 허세홍 GS칼텍스 전무는 지난 2009년 전무로 승진한 뒤 4년만에 GS칼텍스 부사장으로 승진,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경영혁신담당 상무보 역시 일년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창업주인 고 허만정씨의 다섯째 아들 허완구 승신 회장의 아들인 GS에너지 허용수 전무의 부사장 승진도 주목된다. 종합기획실장으로 GS플라텍의 대표이사까지 겸하게 됐다.

이밖에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의 차남인 허연수 GS리테일 부사장은 사장으로, 허동수 회장의 형인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 허준홍 GS칼텍스 부문장은 상무로 뛰어올랐다.

GS그룹 관계자는 “오너 일가를 위한 특별한 인사가 아닌, 오너 3~4세들의 승진 연한이 차서 취해진 인사”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